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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불만

by 주원

퇴근하고 온 남편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반가운 목소리로 받는 것을 보니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같았다. 무슨 통화를 하는지 잠깐 주의를 기울이다가 이내 관심이 사라졌다. 뻔한 회사 얘기, 일 얘기였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막내가 다가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어떻게 해요. 아빠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왜? 무슨 일이야?"

"아니. 아빠가 이미 아내가 있는데도 소개팅을 할 건가 봐요."

"그래?"

"네. 지금 제가 들었어요."


'60초 후에 우승자를 발표하는 프로그램보다 흥미진진하다. 뭐라고 하는지 더 들어보자.'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할지 몰랐어요. 그런데 엄마 다행인 건요. 아빠가 양심은 있나 봐요. 본인 얼굴 못생긴 걸 아는지 소개받는 게 민폐라고 하네요."


정말 미치겠다. 업무 관련 소개받을 사람이 있었나 본데, 이 아이의 상상력은 아마 치정 쪽으로 흐른 모양이다. 한참을 웃다 생각하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봐도 아빠를 붕어빵틀로 딱 찍어 놓은 딸들이고만 왜 이렇게 아빠 못생겼다고 타박을 하냐 말이다. 결혼 전 7년을 만나면서 그의 얼굴에 불만이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10년 넘게 산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딸들은 나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얼굴 보는 눈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야 가능한 모양이지? 어릴 때는 그렇게 아빠 품에 안겨 아빠 최고라고 하더니 유치원 갈 나이만 되면 아빠 얼굴에 불만을 가졌다. 처음엔 장난이려니 했다. 아빠가 편하니까 아빠를 놀리려나 보라고. 그런데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아빠 닮았다고 하면 집에 들어와서 불같이 화를 냈다. 진심인 모양이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너희는 아빠 닮은 게 대체 왜 불만인 거야?

"아빠 닮아서 눈 나쁘니까 안경 쓰고요. 아빠 닮아서 코 낮잖아요. 비염도 아빠한테 물려받은 거잖아요. 손톱 뭉툭하게 못생긴 것도 닮았어요."


세상에나,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 불만이 있을 법도 했다. 생각해 보니 유전자를 많이도 물려줬네? 이러니 내 유전자가 힘을 쓸 도리가 없었던 거다. 애를 셋 낳고도 셋다 아빠 닮았다는 소리만 들은 그동안의 설움이 다시금 차올랐다. 맨날 남편 이기적이라고 흉봤는데 이 사람은 유전자까지 이기적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빠는 진짜 못생겼단 말이에요!"


아빠를 비방하는 애들을 그냥 둘 수도 없고, 자꾸 내 남편 못생겼다고 하니 발끈하는 마음도 들었다.


"엄마 눈에는 아빠 충분히 멋져. 지금 엄마 안목 무시하는 거야? 너희 나중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 데려오려고 그래?" 하고 말하니 남편이 저쪽에서 크게 외쳤다.


"아빠보다 인물 떨어지는 사람 데려오면 초인종 아무리 눌러도 문 안 열어 줄 거야!"


애들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특히 막내는 울분을 토하며 아빠보다 못생긴 사람은 세상에 없다며 난리를 치는 게 아닌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말했다.


"엄마는 아빠보다 못생긴 사람 아는데 보여줄까?"

"네? 진짜 그런 사람이 있어요?"


조용히 거울 앞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여기 있네. 못생긴 붕어빵."


알듯 말듯 묘한 표정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재빨리 안아 올렸다. 남편을 위한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 남편 정말 못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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