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저녁시간은 6시. 밥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면 애들이 홀린 듯 식탁에 앉아 밥을 기다린다. 밥을 내어주면 20분 안에 식판은 말끔히 비워진다. 다 먹었으면 운동하고 오라고 아이들을 쫓아냈다. 성장 운동 겸 과체중이 나온 첫째 다이어트 겸 시작한 저녁 운동이다. 명분이 있어 나가기는 하는데 쌍둥이는 억지춘향이라 보통 10분도 안되어 들어온다. 막내만 더 놀고 싶어 울면서 들어온다.
오늘은 웬일로 1시간이 넘도록 안 온다. 찾으러 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둥이가 냅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저희가 밖에서 무슨 사고를 치더라도 수습해 주신다고 하셨죠?"
"그랬지. 왜?"
"어머니. 진짜로 저희가 전봇대 부수는 것만 빼고 뭐든지 책임져 주신다고 하신 거 맞죠?"
맞다. 진짜로 내가 한 말이다. 우리는 신도시에 살고 있어 전봇대가 없다. 부수려야 부술 수 없는 것이기에 약속한 적이 있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하니 놀다가 사고를 친 것 같은데 비죽비죽 웃는 표정을 보니 큰 사고는 아닌 것 같았다.
'호들갑 떨기는.'
"어머니. 저희가 놀이터에서 신발 던지기 놀이를 하다 그만......"
"나무에 걸렸어?"
신발 던지기 하다 신발이 나무에 걸리거나 놀이터 조형물에 걸려 관리사무소에서 내려주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게 아니고 다른 집에 들어가 버렸어요."
우리 아파트는 특이한 구조가 많다. 그중 1층과 지하 1층 복층으로 된 구조의 집이 있는데, 지하 1층 외부 구조를 선큰이라고 부른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바로 앞에 있는 선큰에 신발을 던진 모양이었다. 신발을 찾네 마네 하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 줄도 몰랐나 보다.
경비실을 통해 전해달라고 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 그럼 그 집이 경비실과 우리 집 두 번 통화를 해야 해 더 번거로울 것 같았다. 거실 월패드로 세대 통화를 걸어보았다.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정을 말씀드리니 신발을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잠시 뒤 신발 찾아서 현관 앞에 두었으니 가지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문제의 그 신발
그 집 현관에 덩그러니 놓인 아이 신발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들은 딸 키운다고 하면 얌전히 앉아서 색칠공부하고 책이나 읽는 줄 아는데 우리 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아들만 키우는 언니들도 우리 애들이 더 유난스럽다고 했다.
커튼에 매달려 타잔 놀이를 해서 커튼 박스가 뜯겨 나간 적이 있다. 붙박이장 문에 하도 매달려서 경첩도 다 떨어졌다. 새로 산 베개에 자기 것 표시해 놓으라고 했더니 매직으로 커다랗게 이름을 쓰고 그림도 그려놓았다. (새 베개가 10분 만에 누가 줘도 안 가져갈 헌 베개가 되는 매직이라니!) 우산은 일회용이었다. 잃어버리거나 메리 포핀스 놀이를 한다고 뛰면서 우산을 뒤집는 바람에 금방 고장 났다. 비싸게 산 이태리 토분에 연필로 죄다 낙서를 해 놓았다. (이때 생명 귀한 줄을 알려줬어야 했다.) 친한 언니네 집에 있는 희귀 식물을 뽑아버려 내가 석고대죄를 한 적도 있다. 한 번은 애지중지 키우던 몬스테라 잎을 손톱으로 얼마나 찍어댔던지 결국 말라죽어버렸다. 이파리 하나를 얻어 뿌리를 내리고 화원에 가서 화분까지 정성껏 골라 삽목해 온 거였다. 너희도 손톱으로 한 번 찍혀봐야 정신 차리겠냐며 이성을 잃고 달려가는 나를 남편이 말렸다. 하... 내가 오냐오냐 다 받아주는 엄마도 아니었는데 우리 애들은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사고를 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일처럼 웃기다. 밖에서는 입도 벙긋 못하고 집에 돌아와 야생마처럼 뛰어노는 우리 아이들의 은밀한 사생활이었다. 혼날 미래보다 지금의 호기심에 굴복하는 순수한 영혼들. 아무리 호되게 혼나도 그다음 날이면 모여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던 둥그런 이마 셋. 추억이라면 추억이고, 이제는 많이 커서 예전보다야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딸 키우기 쉽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아직도 수시로 이성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