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Apr 14. 2020

광야의 삶

그때 그 광야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 뒤에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 있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의 시에 표현된 광야는 웅장하기 그지없다.
이십 대의 그 시절엔 이육사 못지않게 웅대한 기상이 있었고 포부도 컸다.

삼십 대에 들어서니,
여행길이나 인생길에서 지나거나 경험하는 광야는 황무지, 사막, 또는 빈들이다.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광야의 고난을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거나, 물과 음식이 부족하거나, 너무 덥거나 혹은 너무 춥거나,

쉴 만한 곳이 없거나, 들짐승의 위협을 받거나,

고지대일 경우엔 부족한 산소로 인한 호흡 곤란까지 겹치는 끔찍한 경험이 여행자가 광야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이런 류의 고난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경험이다.

여행이 끝나면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의 추억이 된다.


인생길에서 경험하는 광야는 그 고난의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고난의 강도도 더 크다.
주로 낙심, 좌절, 포기를 불러오는 고난이다.

때론 아주 오랜 기간 마음의 감기를 앓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별 또는 이별, 직장에서의 좌천 또는 퇴출,

불편한 대인 관계의 지속, 육체적 혹은 정신적 테러,

주요 재산의 손실, 죄책감, 배신감, 상실감, 강박감 등으로 인한 심신의 피폐로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는 것이 인생길에서의 광야 경험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가장 성공적인 성취감과 환희의 순간을 만끽하면

곧이어 광야의 인생길을 걷게 되곤 했다.

최고의 순간이 잠깐 스쳐 지나가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자신감, 자만심, 그리고 오만함의 천정에서

무력감, 자괴감, 그리고 중압감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그땐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사십 대에 힘겹게 지나온 그 길, 광야같이 느껴졌던 그 길은 내 삶의 흔적이다.
그때 그 광야는 지금 이 평안한 삶의 길로 들어서도록 인도하신 그분의 은총을 알게 한 곳이다.

때론 그때 그 광야가 그립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모든 욕망을 비웠던,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광야에 가고 싶다.
그때 그 광야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그분의 은총만을 기다리던 그 광야의 길로 돌아가고 싶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던 그때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이전 02화 세대를 넘어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