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창문하기'에는 이유가 있다

by 해처럼

지인이 물었다.

'창문하다'라는 말 아세요?


네? '창문'도 알고 '하다'도 아는데 '창문하다'는 대체 무엇인가, 신조어인가?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라면 신조어 아니면 외국어 중 하나일 터. 그랬다, 포르투갈에는 명사 '창문(janela)'에서 파생한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가 있다고 한다.



명사에 '하다'가 붙어 동사가 되는 경우들이라면 사랑하다, 청소하다, 재채기하다 등등 떠올릴 수 있는 말이 무척 많은데, '창문하다'라는 말에서는 얼핏 연상되는 행위가 없었다. '창문을 닦는다' 정도만 어설프게 떠올렸을 뿐. 내용을 알고 보니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는 뜻이라고. 아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감탄하고 말았다. 포르투갈이라는 터프한 어감의 국가명을 가진,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던 나라가 좋아질 정도였다. 왠지 다들 하루에도 여러 번 '창문하기'를 하며 느긋하게 살아갈 것만 같다.



단어를 알게 되니 그간 내가 ‘창문하기’를 얼마나 좋아해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단어를 알고 난 후 이전보다 배 이상 ‘창문하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무심코 하던 행동에 이름이 부여되자 그것은 삶의 루틴이 되었다. 비록 나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깜짝 놀랄 만한 미적 감성을 자아낸다거나, 파란 바다 혹은 시원한 강줄기가 보인다거나, 우거진 녹음이 시야를 가득 채우지는 않을지라도 내가 모르는, 그러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건 '창문하기'의 이유로 충분하다.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과, 사이좋게 친구와 손잡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 유치원에 등원하는 어린아이들과 엄마들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며 한 번도 이야기 나눠 본 적 없는 이들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류장에 끊임없이 도착하고 떠나는 버스의 차창으로 보이는 성실한 운전기사들의 피로를 짐작해 보거나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리는 택배 기사들을 바라보며 싣고 내리는 물건들의 많고 적음을, 거기 실리는 삶의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창문하기의 묘미는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는 하늘과 구름에 있다. 신비롭게도 오늘의 하늘은 어제의 그것과 다르고, 오늘의 구름도 어제의 구름과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이 모두 같은 바람이 아닌 것처럼 하늘도 구름도 마찬가지다. 변화무쌍한 하늘의 표정을 '창문하기'를 통해 읽어낸다. 때때로 드리워진 전깃줄에 쉬러 온 이름 모를 새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그들과 나는 창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잠시 마주 본다. 같은 고도에서, 다른 종으로서. 그러다 내 쪽에서 조금의 움직임이 있다 싶으면 그것들은 겁을 먹고 달아난다. 내가 저들보다 몸집이 커서 무섭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이쪽에서 더 무서워하고 있음에도, 창문이 있어 너무 다행이다 싶은데도.



'창문하기'가 좋아 자주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은 어째서 그렇게 자주 더러워지는 건지. 흐려진 마음도 이렇게 물을 뿌려 닦아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깨끗해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쩐지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 여름의 바다를 닮았다. 하루하루 엇비슷한 창 밖의 풍경 속에서 나는 언제나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분명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는, 지금도 확실하게, 돌고 있으니까.






©2021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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