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상은 존귀한 것이다

by 해처럼

오래된 잡지를 뒤적이다 카피 한 줄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일상은 존귀한 것입니다."


어머어머. 나는 '존귀'라는 말이 일상을 형용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여태 한 번도 일상을 존귀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특별함, 구별됨, 대단함, 눈부신 업적…… 이러한 번쩍번쩍한 것들만이 '존귀함'으로 형용할 가치가 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저 매일 눈을 뜨고 밀려든 일상이 존귀할 수 있다면, 무언가 손에 잡힐 만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한 인생이라도 단지 하루하루 버텨내고 꾸려가는 것만으로 존귀할 수 있다는 말인 걸까. 정말 그럴까?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날들의 수가 인생 전반에 걸쳐 과반 이상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특별한 오늘과 특별한 인생에 대한 갈구는 잊어버릴만하면 찾아와 때때로 우리를 들쑤신다. 어릴 적에는 역사 교과서에 '수많은 민초들이 끝까지 성을 사수하다 목숨을 잃었다' 같은 문장이 나오면 화가 났고 이어 두려워졌다. 역사에 그들의 이름은 '수많은 민초들'로 뭉뚱그려져 있고 대단하신 장군들의 이름만 남아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나 역시 결국 '수많은 민초들' 중의 하나가 될까 봐 두려웠다.



아기가 태어나면 내 아이가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며 모든 부모가 착각에 빠져있다가 꿈을 깨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구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굳게 믿다가 과학 지식의 눈을 떠 보니 나는 그저 우주의 한 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어떻게든 역사라는 나무줄기에 작은 생채기라도 파 넣고 싶은 마음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돌담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고 돌아서는 비굴함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래야만 안심하고 다시 고분고분 일상을 수긍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은 결국 '여봐란듯이'와 '이렇다 할 것 없이'의 치열한 투쟁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렇다 할 것 없이'의 날들은 '여봐란듯이' 앞에 무릎을 꿇고 패배의 소주잔을 기울인다. 적어도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것 없이'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을 정말 루저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작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렇다 할 것 없이 건강해

-이렇다 할 것 없이 그럭저럭

-이렇다 할 것 없이 이만하면 됐지 뭐


뒤따르는 말들이 마치 힘을 빼고 편안하게 누워 뒹굴거리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아무런 눈치 볼 것도 없고 흐르는 대로 평지를 걸어가는 느낌 말이다. 반면 '여봐란듯이'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누군가 '봐줄' 관객들도 필요하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당장 파워워킹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매일 그런 날들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2021 해처럼



보다 더 어려운 건 평범한 오늘이며 평범한 인생이다. 평범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끝까지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가능하면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에게 건 '특별한 오늘'이란 흔치 않다. 다만 '오늘의 특별함'을 찾아가는 것일 뿐. 동시에 '특별한 인생' 역시도 흔치 않다. 그저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발견해가는 것일 뿐. By


우리의 오늘들이 매일 어김없이 태어난다. 나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오늘의 특별함을 소중히 접어 마음 한켠에 보관하려 한다. '오늘의 특별'은 그것을 찾고자 하는 이의 오늘 안에 분명히 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건 나의 오늘에 '좋아요'를 누르기로 하자. 갓 태어난 오늘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존귀하게 여겨질 가치가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므로.



©2021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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