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앞에 앉아 딴 생각을 하며 채널을 돌리고 있던 참이었다. 무심코 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이끌려 채널을 고정시키게 되었는데, 연세가 지긋한 디자이너 한 분이 친절한 목소리로 디자인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분은 아이들의 시선에 맞게 디자인의 기초에 대해 알기 쉬운 단어들로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디자인 어린이인 나 역시 푹 빠져들어 듣고 있노라니 유독 깊이 와닿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의 하나로 사물을 확대하고 확대하여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입자의 모양을 관찰하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나뭇잎이건 돌이건 어떤 것을 최대한 확대해서 보면 육안으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고유한 패턴이 보이는데, 그 패턴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대략 그런 이야기였다.
요컨대 '확대해 보라, 그곳에 보물들이 숨어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아이디어는 태초에 창의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특출한 머리에서 그저 펑!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비범한 재능을 지닌 크리에이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꼼꼼하게 관찰함으로써 창의력의 발현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작은 충격을 주었다. 소재는 이미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고 그것을 헤짚어 '무언가 그럴듯한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크리에이터와 비 크리에이터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때때로 나는 일상의 무한 도돌이표 행진곡에 실려 행군을 하다 지쳐가는 와중에 잠시 멈춰 서서 눈앞의 사물들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색무취의 시간들에 돋보기를, 필요하다면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한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줌인에 줌인을 거듭해 확대하며 사물을 이루는 입자들 안에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웅크리고 잠들어있지는 않은지, 바쁜 삶 속에서 놓쳐버린 기막힌 소중함은 없었는지 오래오래 바라보곤 한다.
반복되는 출퇴근, 스쳐가는 주말과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 월요일의 무한반복, 먹고 치우고 다시 어질러지는 집안일 루틴의 한가운데에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삶의 조각과 조각 사이에 확대경을 들이대 보는 것이다. 거기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
그러다 보면 주변의 사물들과 상황들을 확대하는 것이 실은 내 안의 것들을 확대하고 확장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의 가장 깊이 감추어진 곳에 짐작도 하지 못했던 낯선 것이 숨어있는 것처럼 나의 내면에서도 눈에 보이는 풍경과는 조금은 다른, 비일상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이라 할 수 있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확대된 내 안의 세계를 구석구석 살피는 일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을 탐험하며 영역을 확장해가는 것 못지않게 의미 있는 자신만의 우주를 탐험하는 일이 된다. 익숙함 속에 파묻힌 '새로운 것'이 우주 저 너머에서 우리에게 손짓을 할지도 모른다. 뻔한 하루하루가 마법 가루라도 뿌린 것처럼 저마다 다른 색채와 형체를 하고서 다가와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그 장소를, 그 순간을 그리고 궁극으로는 나를 확장하고 확장하기. 그것이 곧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삶을 그럴듯하게 디자인하게 만드는 하나의 힌트가 되어주지 않을까. 바로 그 시점부터 우리는 삶의 디자이너이자 내 인생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이 글들은 너무 엇비슷하여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의 모레인지 헷갈릴 정도의 단조로운 일상에 확대경을 들이댄 줌인 프로젝트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