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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Oct 03. 2023

넌 누구냐.

티와 에프의 경계

엠비티아이를 모르고서는 동료들과의 스몰톡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테스트를 해본 것이 몇 해 전 일이다. 타인 앞에 나서길 꺼리는 나는 혈액형으로 사람을 나누던 시절-정확히는 에이형은 소심하다는 명제가 참이라 여겨지던 인식-이 싫었다. 그러나 엠비티아이 테스트가 내놓은 나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세밀하여, 은연중에 이 대유행인 성격 테스트를 신뢰하게 되었다. 특히 에프와 티의 분류는 우위랄 것 없이 어느 쪽이어도 명랑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라, 나는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 복동이가 둘 중 어떤 유형인가를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눈물샘이 항상 찰랑찰랑한 에프로, 쉽게 기뻐하고 감격하고 뭉클해하며 잘 운다. 마흔이 되었지만 어이없는 일에 꽂혀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이런 엄마에게서 난 복동이는 차에서 조용한 음악을 듣다가 이런 말을 한다.

“음악이 정말 좋네. 근데 좀 외롭게 들리기도 해.”

그러면 역시 내 딸이다 싶어 어쩐지 흐뭇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다. 가을날, 이르게 잎을 떨군 벚나무 아래서 낙엽을 밟다가 산책 중인 강아지를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낙엽이 바삭바삭 소리가 나니까 강아지도 혀를 내밀고 좋아하네. “

하늘의 구름, 나무, 꽃, 열매들을 보며 워! 감탄을 아끼지 않는 우리 복동이는 역시 날 닮은 감성덩어리에프가 아닐지.


그런데 아직 단정하긴 이르다. 아시안게임 여자탁구 복식 준결승을 보던 날이었다. 그다지 스포츠 관전을 즐기지 않아, 밥을 먹으며 흘끗 흘끗 경기를 구경하다가는 울컥 눈물이 났다. 매번 넘어질 것처럼 스매싱을 날리는 전지희 선수의 동작이 너무 처절했기 때문이다. 탁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자기의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뻐근해지는 그런 감동이었다.


눈물을 쓱 훔치던 나에게 복동이가 우물우물 밥을 씹으며 말했다.  

“핑퐁은 그냥 핑퐁이야.”

그리고 나의 감성덩어리는 덧붙였다.

“저 사람은 선수니까, 열심히 하는 거지. “

핑퐁은 핑퐁일 뿐, 울 것 없다는 복동이의 일갈. 맞는

말이지만 어쩐지 서운하다.


너 이 녀석, 혹시 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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