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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Feb 28. 2022

펫스타그램의 기쁨과 슬픔

놀이터에 놀러간 슈렉이. 애견카페 못가본 슈렉이는 놀이터로~


슈렉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강아지 친구가 348 마리나 생겼다. 11년 견생 동안 사귄 친구라고는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하다가 만난 강아지 한 두 마리가 전부인데, 348마리라니! 매일매일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장면투성이이다.


사람들은 슈렉이를 상팔자 강아지라고 말한다. 하루에 네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나가고, 엄마, 할머니가 신선한 재료로 매일 밥을 차려주니 말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의 강아지들이 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각종 뼈다귀, 간식 등으로 차려진 생일상과 강아지 얼굴이 그려져 있는 맞춤 케이크, 풍선과 갈란드로 생일 축하를 받는 강아지들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우리 슈렉이는 한 번도 생일파티 못해봤는데......아니, 슈렉이는 자기 생일이 있는지도 모를 텐데……


강아지를 위한 케익들 (출처 인스타그램)


어디 그뿐인가. 주말마다 애견카페(일명 ‘애카’)에서 신나게 뛰어놀면서(일명 ‘뛰뛰’) 에너지 발산도 하고 친구를 사귀며 사회생활을 하는 강아지들의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유치원에 가서 ‘지능발달놀이’ 수업을 받는 강아지들과 도그 피트니스 센터에서 어질리티 훈련을 하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만 하다. 엥? 강아지 지능을 발달시킨다고? 개가 피트니스를 한다고? 그 귀엽고 우스운 발상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쓸모없음의 쓸모라고나 할까.


슈렉이는 도그 파트니스 센터 대신 엄마랑 홈요가 해요.


인스타그램에, 실은 이 세상에 그렇게 블링블링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넘기다 보면 유기견, 동물학대, 식용견 사육, 동물구조에 관한 피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볼 때마다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고, 가슴이 미어지게 아픈 내용들인데, 또 그게 너무 괴로워서 못 본채 하고 꺼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볼 때마다 무력감밖에 안 드는데, 보면 기분만 상하는데, 나 그냥 이런 것 안 보면 안 될까? 내 삶 하나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녹록지 않은데, 내가 개 문제까지 짊어지고 싸워야 하는 걸까?


손서영 수의사의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 그녀는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강아지들을 한 마리씩 구조해서 아무런 고민 없이 식구로 받아들인다. 고민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녀는 응당 그것이 본인의 소명인 듯 받아들인다. 감탄과 감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수의사님 존경합니다.’와 같은 답글을 달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구조를 도와달라는 내용의 피드를 올리거나, 리그램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많다. 산책을 하다가 발견해서 보호소로 인계했다거나, 임시보호처를 찾는다거나 하는 내용들 말이다. 최근에 본 충격적인 장면은 강아지들이 빈 집에 버려져있었고, 번식이 일어나 10마리가량의 강아지들이 쓰러져가는 주택 곳곳, 그러니까 마루 아래나 창고같은 곳 구석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말이 주택이지, 그건 야외나 다름없었고 먹을 것뿐 아니라 마실 물조차 없는 곳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더 절망적인 사실은 그 개들도 엄연히 주인이 있는 소유물들이기에(=집주인) 구조를 할수도 없다는 것이다.


미끄럼도 타봤지~


슈렉이가 아주 어릴 때, 슈렉이와 함께 아파트 뒤편 산책로에 나갔다. 주말 아침이었고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주 큰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울음소리 앞에는 ‘퍽퍽’하는 폭력의 소리가 전주처럼 붙어있었다. 내가 걷고 있는 둘레길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저 담벼락 뒤에서 나는 소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인이라고 부르는 미친 인간이 개를 학대, 폭력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고, 그 타격의 묵직한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의 성량으로 봐서 그 개는 덩치가 매우 큰 것이 분명했다. 큰 덩치로 그 주인이라는 작자를 물고 도망갈 수 있음에도 그 개는 그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도망갈 수 없게 묶어 놨겠지. 그때 나는 얼른 그 현장을 찾아서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라며 그 개를 구조해냈어야 하나,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의젓하지 않은 천방지축 아기 슈나우저 슈렉이를 데리고 산책 중이었고, 오히려 슈렉이가 그 미친놈 눈에 띄어서 내동댕이쳐질까 봐 두려워서 빨리 그 둘레길을, 그 산을 빠져나왔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것만 넘으면 그 개를 구할 수 있었겠으나, 나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몹시 비겁한 행동이었지만, 정말로 무서웠었다.


일요일 아침의 그 트라우마는 몇 주간이나 지속되었다. 당연히 그 후 몇 주간은 그곳에 산책을 가지도 못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나의 불편한 마음과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개는 이미 죽었을 거야. 앞으로 더 많은 동물이 그 인간에 의해 죽을 거고. 그리고 그 인간은 최종적으로 살인범이 될 거야.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처음에는 개, 고양이를 그렇게 죽였다잖아. 작은 동물들을 학대하고 살해를 연습하다가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거거든. 길 고양이 잔인하게 죽이는 인간들 얘기 들어봤지? 살인범들이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대.”


이게 그렇게까지 큰일인지 몰랐고,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심리학자 프랑크 애시언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른 성인 가운데 4분의 1에서 3분의 2가 동물학대를 발달상의 특징적인 이력으로 보인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친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후로도  달간 나는  생명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 괴로웠고, 거의 10 전의 일을 복기하는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10 전에 나는 어리고, 불안정하고 용기도 없었지만, 무서운  별로 없어진 지금의 나라면 그런 미친놈에게 가서  개를 구해올  있을까? 과연 나는 용감한 사람이 되었을까?


입양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의 모습. (유행사 인스타그램 캡쳐)


‘슈렉이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슈렉이 침대를 신상으로 바꿔주는 대신에, 바닥에 담요를 깔고 안 쓰는 이불 위에 재우더라도 유기견을 한 마리라도 더 데려와 키우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직장 안나가? 빈 집에 강아지 혼자 두고 나가려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병 나면 케어해줄 경제력은 있고?’


유기견들의 임시보호처와 입양처를 찾는 피드를 보다가 종종 자아분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보기 싫고 힘든 것을 꺼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존재하는게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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