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시댁에 가는 걸 좋아한다. 공식적인 집안 행사가 있을 때는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려고 하는 편이다. 남들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 난 전혀 시댁 스트레스가 없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시댁 가는 걸 손꼽아 기다렸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지 않는 걸로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수도권으로 방문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데 거스르고 가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이번에는 집에 있기로 했다.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니 더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어떻게든 가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서울 가는 길에 휴게소 들르는 게 신경 쓰이니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야반도주(?)를 할까? 휴대용 변기를 준비할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남편이 이렇게 기를 쓰고 시댁에 가겠다는 며느리는 아마 대한민국에 몇 안 될 거라 말했다. 인정! 하지만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도 몇 안 될 거라 이야기했다. 어쨌든 아쉽지만 추석 연휴 지나고 상황을 지켜보고 가기로 했다. 어머님 생신도 있어 어떻게든 가보려고 했지만 어머님, 아버님이 이번에는 상황이 이래서 서로 신경 쓰이니 다음에 오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더 아쉬우셨겠지만 오지 말라시니 오히려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형님, 저 시캉스 왔어요!
연휴 시작 전부터 시댁에 전화를 드렸다. 어쩌고 계시는지, 명절인데 두 분이서 적적하지는 않으실지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도련이랑 동서가 간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동서와 통화를 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힘들지 않냐 물었더니 동서가 이렇게 말한다.
"남들은 호캉스 간다는데 전 시캉스 왔어요."
"좋겠다, 동서. 난 시댁에서보다 집에서 더 일을 많이 하는 거 같아. 엄마가 음식을 너무 많이 해. 징징"
"어머님이 맛있는 거 다 해주시고 애도 봐주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요."
"그러게. 나도 어머니 음식 먹고 싶다. 다음에 갈 때 LA갈비 해달라고 해야지."
"네. 좀 잠잠해지면 오세요, 형님. 애들이랑 다 보고 싶네요."
"그래, 동서. 시캉스 잘 보내고 조만간 만나."
"네, 형님. 남은 연휴 잘 보내세요!"
동서가 말한 '시캉스'라는 말이 찰떡이었다. 날라리 며느리 1호, 2호는 참 복도 많다. 감히 시댁을 '시캉스'라 말하다니! 이게 바로 앞으로 우리 며느리들이 더 잘해야 하는 이유다. 세월이 흐를수록 건강하던 어머님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니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화도 자주 드리고 맛있는 것도 보내드려야겠다.
형수, 갈비 먹으러 와!
출처 : 네이버블로그 파티오브제이
도련과도 명절 인사를 나누려 통화를 했다. 우리 가족이 갔으면 시끌벅적 명절 분위기가 났을 텐데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시끄러운(?) 도련과 통화를 하면서 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어, 형수! 뭐해? 밥 먹었어?"
"그럼, 난 오래간만에 친정엄마 명절 음식 먹었어. 넌?"
"좋네. 난 엄마가 LA갈비 구워줘서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었어. 갈비 먹으러 와. 근데 엄마가 국을 끓였는데 뭔지 알아?"
"뭔데?"
"갈비탕. 근데 LA갈비 말고 다른 반찬이 또 뭔지 알아?"
"뭔데?"
"갈비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미치겠네. 나 진짜 웃겨서 숨 못 쉴 거 같아!"
"엄마가 갈비로 우릴 죽이려 하고 있어."
"너 갈비 좋아하잖아. 한동안 갈비 안 먹어도 되겠네 뭐. 실컷 먹어.ㅋㅋㅋ"
"근데 하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
"뭔데?"
"장모님이 LA갈비 재워놨다고 오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신 지경)"
도련과 통화하면서 웃겨서 눈물이 다 났다. 이런 재미를 통화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쉬웠다. 명절에는 특히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그 동안 못나눈 수다를 떨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순간 스스럼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도련이 있고 동서와도 불편함 없이 잘 지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렇게 떨어져 있어 보니 소중함도 더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1월에 있는 조카 돌잔치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다고 한다. 우리 예쁜 조카 첫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마스크 없는 생활과 소소한 일상들이 그립다. 연휴가 끝나고 분위기 봐서 시댁에 맛있는 거 사들고 가야겠다. 보고 싶다, 시댁 식구들이. 그립다, 함께 하는 시간들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