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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Feb 02. 2021

겨울 산책 원정대

산책뒤끝記

겨울 산책은 나를 전사로 만든다.

 

보드라운 이불에서 더 자고 싶은 본능과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 

승리를 기뻐하면 시샘하는 찬바람이 문 앞에서부터 몰아친다. 

그는 늘 친해지기 힘들다. 

마스크와 털장갑으로 바람을 안아줘야 한다. 

얼러주어야 한다. 

겨우 달래서 돌려보내니 이번에는 바닥에 쌓인 눈이 문제다. 

길이 온통 뿌유스름하다. 

언제 미끄러질지 기약할 수 없는 길을 호랑나비 춤을 추며 걷다 보면 몸에서 김이 난다. 



 


눈이 쌓여도 전사가 가지 못하는 길은 없지만 넘어지지 않으려면 좋은 선택이 필요하다. 

눈길은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이 많이 다닌 눈길과 발길이 거의 없는 눈길. 

난 발자국이 드문 길을 좋아한다. 

뽀드득하는 소리가 정겹다. 

자국이 없는 눈은 있는 그대로 발을 잡아준다.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다. 

대신 눈이 많이 묻고 발은 시리다. 

반면에 사람이 많이 다닌 눈길은 따라가기 쉽지만 미끌미끌하다. 

눈이 계속 눌려서 번드럽다. 

그곳에서는 아이 보폭으로 엉금엉금 걸어야 한다. 

새삼 겸손해진다. 

겸손은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남이 낸 길을 따라가는 건 쉽지만 익숙해지면 내가 만든 관성에 넘어질 수 있다. 

미끄러운 눈길과 다르지 않다. 







어제는 따사로운 햇살 덕분에 눈이 많이 녹았다. 

마른 길을 한껏 기대하며 전사는 새벽에 출사표를 던졌다. 

눈은 나를 위해 길을 제법 양보해주었다. 

오랜만에 신이 나서 힘차게 걷는데 불현듯 언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공존하는 땅에 호기심이 생겼다. 

해는 똑같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땅은 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녹은 땅은 누구보다 먼저 빛을 받아들여 양지임을 알려주고 언 땅은 빛을 거부하여 음지임을 알려준다. 

모두 양지를 좋아하지만, 눈이 쌓인 음지가 없다면 겨울인 걸 알 수 없다. 

땅은 자신의 언 부분을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내일의 태양은 더 뜨거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도 땅의 마음과 같다. 

마음속에도 양지와 음지는 늘 공존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양지라는 장점을 만들고 음지라는 단점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매일 가치와 의미라는 빛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건 누구에게나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음지를 없애야 할까? 

음지에 뜨거운 물이라도 부으면 될까? 

그 물조차 얼지 모른다. 

임시방편은 음지를 더 많이 만든다. 

마치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면 폭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의 작용-반작용 법칙은 여기도 적용되나 보다.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게 떠올랐다. 

바람이 세게 분다고 나그네가 옷을 훌렁 벗을 리 없다. 

단단히 옷깃을 여밀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자연에는 언제나 해답이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음지를 녹이는 방법은 따라 해볼 만하다. 

해는 느긋하게 따듯했던 땅에 집중한다. 

그곳에 빛을 더 비춘다면 그늘진 땅까지 온기가 차츰 퍼질 것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확실히 양지를 넓힐 수 있다. 

해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내 땅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곳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양지를 늘리는 길이다. 

양지를 찾는 내 전사는 아직 호전적이다. 

오늘도 마음의 양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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