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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원석(上元夕)

--다섯 살 시인의 탄생

by 정영의

정월 대보름은 큰 명절이다. 설날부터 대보름날까지 날마다 한 집에 모여 놀고 수다를 떨었다. 돌아가며 음식을 챙겨 내어 먹고 마시며 오곡밥을 짓 고 말린 나물 반찬을 짓고 귀밝이술과 부럼을 준비했다. 택배 보내듯 이웃집과 음식을 나눠 백가반(百家飯) 먹기를 했다. 똑같은 듯하지만 다 다른 밥과 반찬으로도 내 집 것을 이웃에게 먹이고, 이웃의 집 것을 내 식구가 먹어 우리 마을의 성만찬을 치렀다. 놀이는 또 오죽 많아 온 마을이 들썩일 만큼 흥겨운 명절이었다.

이렇게 공기가 설레면 차분하게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아들을 앉혀놓고 시 쓰기를 시킨 건 그 아비였다. 하서의 첫 번째 글 스승이던 아비는 아이의 상태를 봐가며 타이밍이 맞게 치고 빠지기를 할 수 있었다. 선비들이 으레껏 그랬듯 해를 가지고 써봐라, 달을 가지고 써봐라, 하며 그때마다 소재를 달리하여 글쓰기를 시켰다. 구체적인 사물을 좀 더 민첩하게 포착하는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배기 어린 것이 들뜬 분위기를 타고 채신머리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을 잠시 단속도 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서른 살 젊음에 비해 좀 더 사려가 깊었던 아비는 ‘대보름 저녁으로 시 짓기를 하라’고 어린 아들에게 미리 다짐을 두었다. 자신은 종을 시켜 먹을 듬뿍 갈아 벼루에 먹물을 꽉 채워놨다. 벼루는 보통 돌로 만들지만 좀 더 근사한 도자기 벼루나 옥 벼루도 있다. 다섯 살배기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글을 배우는 어엿한 생도이니 제 문방사우가 있음직도 하다. 그리고 첫 시 짓기의 상으로 근사한 낙관(落款)용 도장과 호(號)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두었다.


상원석(上元夕-정월 대보름)


高低隨地勢 早晩自天時(고저수지세 조만자천시)

-높고 낮음은 땅의 힘을 따르고 이르고 늦음은 하늘의 때에 이어져


人言何足恤 明月本無私(인언하족휼 명월본무사)

사람이 어찌 근심을 하리오? 밝은 달은 본래 봐주는 법이 없는 것을.


아이는 일필휘지하여 글씨를 써 내려갔다. 붓을 놓고 물러앉아 제 글을 눈으로 거듭 훑는 아들에게 아비는 ‘읽으라’고 명했다. 제 시를 읽는 아이의 소리는 낭랑했다. 읽으면서도 아이는 아비의 눈빛을 곁눈질로 살피고 아비의 눈시울에 자랑스러운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챙겨둔 낙관 도장을 내밀며 아비는 하서(河西)-강의 서쪽이라는 호도 아들에게 주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과 함께 ‘이제 너는 어엿한 시인이라’ 선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어린 시인은 고저(高低)와 조만(早晩), 지(地)세와 천(天)시를 대조했다. 반대되는 개념들을 하나로 묶어 쓰는 대조법(對照)을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소꿉놀이하듯 쓰고 있었다. 산과 들을 염두에 두었던지 높낮이가 지세를 따라 정해진다며 빠르고 늦는 것은 하늘의 해와 달을 따라 저절로 정해지지 않느냐고 자연의 섭리를 내세우고 있었다. 하늘과 땅으로부터 시작하는 천자문을 배웠답시고 의젓하게도 하늘 땅 얘기를 신동 소리 나올 만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이렇듯 질서를 지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변덕을 슬그머니 나무라고 있었다. 근심한다는 뜻의 휼(恤)을 사용하여, 인언하족휼(人言何足恤)-즉 사람의 말만 가지고 어찌 근심하리오? 라고 했다. 아마 달이 빨리 떴으면 좋겠다느니, 구름이 달을 가리면 어떡해? 비가 올 것 같아 등등 투덜거리거나 안타까워하는 말들이 무성했을 것이다. 그렇게 와글와글 떠들어댄다고 해도 어찌 인언이 족휼하겠어?


지세가 고저를 따르고 천시가 조만으로 돌아가느니 하는 것도 스승이 평소 하시던 말씀이었을 게다. 콩을 심지 않은 데에서 콩이 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은 것들을 녹여내어 한 편의 시로 빚어낸 것은 아이의 천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책은 시공을 초월한 지혜의 저장소가 아닌가, 아이는 좋은 말씀들은 책을 찾아 출처를 확인하고 사라지지 않도록 머릿속에 새겨넣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 자신이 그 말을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비는 아이의 시를 사랑방의 벽에 붙였다. 그곳을 방문한 친구 선비들은 앞날이 밝은 아들을 둔 아비의 천복(天福)을 칭송하고 아이를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아비는 아들이 유순하고 온화한 성정임을 파악했다. 되도록 넓은 세상을 보고 포부를 높이며 견문도 넓히는 동시에 여러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비는 어린 아들을 고부로, 전주로 내몰았고 아들은 여행자와 구도자가 되었다. 하서가 약관 13세의 나이에 시경을 천 번 읽었던 것은, 높은 스승들의 밝은 교훈과 따뜻한 남쪽나라 호남의 눈부신 풍광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서에게서 배우는 것-

높고 낮음은 지세를 따르고 이르고 늦음은 천시로부터니,

어찌 사람의 말을 근심하리오? 밝은 달은 본래 사심이 없는 걸

하서는 그 어린 나이에 이미 밝은 달이 사심이 없음을 언급함으로써 하늘의 이치를 새기며, 할 도리와 안 할 도리를 스스로 익혀나가고 있다. 하서를 상상하면, 자라나며 더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가 의젓한 말을 할 때는 칭찬을 해주되 바르지 못하게 말할 때는 시간을 내어 완곡한 방법으로 바로 잡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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