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리맘 Sep 02. 2022

01. 회사의 빛남이 나의 빛남이 아님을.

언제까지나 대기업 워킹맘으로 반짝일 줄 알았다.


올해로 11년차, 엄밀히 말하자면 13년 째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30대를 온전히 회사에 바치는 시간동안 결혼을 했고 어느 새 아이 둘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회사나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는 버티기 힘든 고강도의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음이 감사했고, 대기업의 주는 달콤한 혜택과 주위의 시선은 힘든 일상을 참고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제 점점 머리가 커지는 아이들에게도 멋진 대기업 커리어우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의 자랑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케어하고 조금 더 시간을 줄이고자 작년 초 회사근처로 이사를 왔다. 그야말로 회사와 가정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사를 온 작년 가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회사가 매각이 될 것이라는..

을의 입장에서 감정노동의 기술서비스를 주로 하는 회사 직원들은 현장에서의 스트레스와 낮은 자존감을 대기업소속이라는 큰 빛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만큼 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다들 그냥 떠도는 소문일거라고 믿고 있었다. 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되자, 회사의 대표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모두가 아니길 바랬던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게 되고 회사는 3개사로 나뉘어지게 되어 규모와 위상이 모두 축소되는 것이었다.


맙소사...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다. 마치 그동안 내가 갈고 닦아 놓은 그 길이 하루아침에 없어져버린 기분이었다. 대기업이냐 중견기업이냐의 문제가 아닌 회사의 변화에 소용돌이 치는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동안 내가 회사와 나를 동일시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회사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똑같이 회사를 다니면 되는 것이었는데, 회사가 작아지자 나 자신이 작아짐을 느끼면서 혼란스러워졌다. 회사의 빛나는 이름이 내 빛남이 아니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머리속은 나의 제어선 밖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마치 풍선이 최고크기까지 부풀어 터지기 일부직전인 감정에, 하필 남편과의 작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집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낯선 동네로 이사와서 회사 사람들 외엔 주변에 아는사람도 없었고 정말 누구하나 불러낼 사람조차 없었다. 결국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걷기 시작했다.

반쯤 멍한 상태로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회사 앞이었다. 나도 모르게 매일 걷던 길인 회사로 왔던 것이다.

헛웃음이 났다. 결국 올 곳이 이 곳 뿐인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회사 옆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꽤 규모가 큰 공원인데 공원 끝까지 걸어본 적은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공원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 오는 길, 공원 안 호수에서는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호수에 회사 건물이 그림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평상 시 같으면 회사 동료들과 지나쳐 갔을 그 길과 건물이 이 날은 너무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어제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된 남자를 멀리서 보게 된 심정이랄까. 늦은 밤 외벽 조명이 켜진 회사는 건물 옆 공원과 어우러져 마치 아우라를 뿜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헤어진 남자친구가 더 멋져보이는 것처럼. 호수 옆 벤치에 앉아 회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한참을 생각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이 점점 잔잔해질즈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앞으로의 격변이 예고된 회사 내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회사가 없어진다거나, 퇴사통보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매일 가야 하는 그 곳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고, 앞으로 겪게 될 사건들 마다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매일을 고통스러워 해야 할 것이다.


맞다. 회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회사가 없어져도 나란 사람이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키워야 한다.

회사와 나는 동일시 될 수 없고, 회사의 빛남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뭐부터 해야할까.

분명한 건, 지금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