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에서 못난이 감자를 주워봤는가? 이른바 '이삭줍기'라는 것이다. 가을의 초입에 들린 강원도 인제 어디쯤의 산촌 마을에선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강원도 특산물인 옥수수와 감자, 고랭지 무, 배추, 양파 등이 농부의 바쁜 손에 의해 쑥쑥 뽑히고 다듬어져 상자에 착착 옮겨지고 나면 그 빈자리에는 상품가치가 없는 못난이들이 남는다.
황량한 가을 텃밭에 뒹구는 감자와 무는 갈 곳을 잃은 채 세월을 속절없이 견뎌내야 한다. 이런 못난이들은 대개 지나가던 이웃의 몫이다. 우리도 그쯤 밭주인의 허락을 얻어 채 흙이 마르기도 전인 못난이 감자를 주웠다. 햇빛을 받지 않고 싹이 나지 않은 그나마 먹을 만한 것들이었다. 인심 후한 농부와 일용할 양식을 주는 흙에 감사하며 그날 저녁 캠핑장의숯불엔 감자를 올렸다.
꼭 밭에서 난 작물이 아니더라도, 캠핑장 근처의 자연이 선물하는 먹거리는 다양하고 양이 넘친다. 봄에는 지천에 나물이고, 여름에는 통발로 잡는 민물고기와 다슬기가, 가을에는 밤과 도토리같은 온갖 열매들이, 겨울에는 버섯과 뿌리채소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가을은 특히 채집생활의 황금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의 길목에 서서 자연이 던져주는 것을 줍줍하기만 하면 되니까. 잘 때면 텐트 위로 떨어지는 밤송이의 기척을 느낄 수 있고, 은행을 주워 아이들과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는 계절. 운이 좋으면 잣나무의 잣도 깨 먹고 솜씨가 좋다면 쌉쌀한 햇도토리 묵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고구마 일색이었던 캠핑장의 간식 메뉴가 일순간 풍족해지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평소 먹지 못했던 새로운 먹거리와 낯선 맛에 신기해하면서도 자기가 직접 채집한 것이라는 자부심에 맛있게 먹는다.
가을에는 캠핑장 주변의 가을 농가를 들여다보는 것도 즐겁다. 마당 한 켠 정갈하게 자리 잡은 각종 나물과 버섯들이 가을 햇살에 꾸득꾸득 말라가고 처마에 매달린 옥수수 알갱이들이 반짝이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농부들에겐 그저 일상인 채집과 저장 활동이 어쩐지 삶의 활력을 전해주는 것 같다. 몸을 움직여 먹을 것을 찾아 신선한 상태 그대로 알맞게 조리해 먹고, 남는 것은 갈무리한 뒤 오랫동안 저장해 다가올 혹한기를 대비하는 지혜도 새삼 부럽다. 마트만 가면 바다 건너편 음식까지 살 수 있어도, 실제로는 기껏해야 햇반을 돌리거나 패스트푸드로 연명하는 도시의 삶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인다. 과잉이 오히려 결핍을 부르고, 결핍이 오히려 풍족해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
가을 캠핑장의 하늘 위로 기러기 떼가 날아간다. 뭐라고 수다를 떠는지 지나갈 때마다 시끄럽다. 아마도 비행기 길처럼 기러기 떼가 지나가는 기러기 길이라도 있나 보다. 어딘가 있을 먹거리를 찾아 이동 중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먹거리를 찾아 많이도 돌아다녔다. 봄엔 여사님들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니시느라 바쁘고, 가을엔 사장님들이 도토리 주우러 다니시느라 바쁘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바쁘구나. 아마도 우린 철마다 이동하는 기러기 떼처럼 저도 모르게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제철 음식을 찾아다닌 게 아닐까?
어른들이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낮동안 아이들은 각종 곤충 채집에 열을 올린다. 개미, 거미, 사슴벌레, 잠자리, 사마귀, 장수풍뎅이, 심지어 유충까지... 채집의 본능은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없다. 다만 아이들은 채집의 목적이 식용보다는 취미와 연구(?)에 있다는 점에서 어른들의 채집보다 고차원적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채집의 전통은 채집통에 갇힌 곤충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곤충도 먹이가 되는 극한의 생존 상황을 제외하고.
아이들에겐곤충뿐 아니라 식물과 돌멩이도 채집의 대상이다. 우리가 보기엔 참 별 것 아닌 사물들도 아이들의 눈엔 대단해 보이나 보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별스럽게 보이니 자연 속에서도 심심할 리가 없다. 먹는 걸 찾아다니는 게 유일한 채집 활동인 어른의 입장에선 아이들의 이런 관점이 부럽기만 하다. 만들고 오리고 붙이는 모든 놀이 활동이 자연 안에선 더욱 확장이 된다. 자연물의 점, 선, 면이 붙어지고 떨어지며 이들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자연이 풍기는 냄새, 소리, 촉각, 맛이 함께 어우러지며 5가지 감각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해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 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나는 요새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바닷가에서 유리조각을 줍는다. 새로운 채집 활동이다. 처음엔 모래사장에서 맨발 맨손으로 노는 아이들이 위험할까 봐 줍기 시작했는데 위험할 리는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파도에 깎여 몽돌처럼 동글동글해졌기 때문. 몽돌처럼 깎인 색유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걸 보면 이게 바로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구나 라는 찬사가 저절로 나온다.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듯 유리조각도 다시 모래로 되돌아간다. 모든 인공물이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인 걸까. 예쁜 쓰레기다. 새로운 취미가 되어버린 유리 몽돌은 꾸준히 모아서 환경단체에서 지원하는 미술제에 작가명을 자연이라고 하고 출품하려고 한다. 환경운동이 별 건가. (혹시 같이 모아보실 분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