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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복 Oct 24. 2019

당신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원인 2, 투명성의 환상

한 달 전에 팀장 발령을 받은 박 팀장, 그는 조직을 색 다르게 이끌어 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먼저 회의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팀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내게 하고 자신은 경청을 하기로 했다. 회의를 할 때면 팀원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내주세요.”라고 당부를 하고 자신은 말을 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를 해 가면서 얘기를 들었다. 나름대로는 ‘내가 팀원들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있다. 팀원들도 모두 내 태도를 좋아하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웬걸 기대와 달리 팀원들은 의견 내는 것을 주저했다. 어느 날 휴게실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팀원들의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우리 팀장님은 우리에게 뭔가 화가 나있는 것 같아. 회의 때 늘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잖아. ” 


그가 팀원들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기 위해 취한 자세가 그들에게는 마치 화를 내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팀원들이 자신의 의도를 잘 알 것이라는 박 팀장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간 순간이었다. 

 



이 상황은 박 팀장이 가진 ‘투명성의 환상’ 때문에 벌어졌다. 이 환상은 내 의도 (나의 감정, 생각이나 의도)가 남들에게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보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투명성의 환상은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 상사와 부하 같이 서로 잘 아는 사 사이에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오랜 기간 얼굴을 맞대고 지내왔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상대가 금방 파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까? 



한 실험에서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과 소통을 더 잘하는지를 연구하였다. 20쌍의 부부가 실험에 참여하였고, 이들의 평균 결혼 기간은 약 14년이었다. 두 쌍을 한 그룹으로 묶었다. 따라서 각 그룹에는 잘 아는 사람과 낯선 사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즉 한 그룹에 네 명이 있는데 둘은 부부니까 서로 잘 안다. 반면에 다른 두 명은 낯선 사람들이다. 실험 중에 이들은 서로 등을 지고 앉아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연구자는 이들 중 한 명(스피커)에게 애매한 문장을 주었다. 거기에는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표시되어 있다. 스피커는 이 문장을 나머지 세 명(청취자)에게 말하는데 이때 표시된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경청자들은 스피커가 말하는 문장을 듣고 그 의미를 추측하여 보기에서 골라야 한다. 예컨대 스피커가 ‘요즘 바쁜가 봐? (What have you been up to?)’라고 말하면 세 사람은 다음 네 개의 보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요즘 바쁜가 봐?’라고  말을 했는데 남편이 이 말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 것인지를 추측하는 것이다.


1) 늦게 온 것에 대해 짜증을 내고 있다

2) 상대가 잘 지냈는지 관심이 있다.

3) 상대의 외도를 의심한다.

4) 곧 있을 깜짝 파티 준비로 바쁜가 보다 라고 즐거운 상상을 한다. 


만일 스피커가 ‘요즘 바쁜가 봐?’라는 문장과 함께 네 개의 보기 중에서(3번) ‘상대의 외도를 의심한다.’라는 뜻으로 전달해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치자. 스피커는 이런 의도가 배어나도록 말을 하고 배우자를 비롯해서 나머지 두 명도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청취자들이 스피커가 의도한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을 했다면 소통이 잘 된 것이다.   


이 게임은 4번을 했다. 그래서 한 그룹에 있는 4명이 모두 스피커가 될 기회를 가졌다. 스피커는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각 청취자가 얼마나 잘 파악할 것인가를 추측해서 점수로 표시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는 경우에는 0점, 아주 잘 이해할 것으로 예측하는 경우에는 10점을 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자신의 배우자에게는 평균 6.3점, 낯선 사람에게는 5점을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청취자들이 의미를 정확히 맞힌 점수는 약 4.3(배우자), 4.2(낯선 사람)이었다. 배우자와 낯선 사람 간에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는 스피커가 배우자의 이해력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부는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자기가 한 말을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1 




가까운 사람끼리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아들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들 사이에서 지식의 저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까 ‘우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 ‘굳이 말을 안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어?’와 같은 투명성의 환상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대충 말해 놓고도 상대방이 그 내용을 분명히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내 의도는 기대한 것만큼 투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참고 문헌>

1. Savitsky, Kenneth, Boaz Keysar, Nicholas Epley, Travis Carter, and Ashley Swanson (2011), “The Closeness-Communication Bias: Increased Egocentrism Among Friends Versus Strange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 (1), 26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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