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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y 24. 2021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시행착오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느덧 혼자 살게 된 지도 10개월이 되었다. 1년 조금 모자란 시간. 그중 5개월을 쉐어하우스에서 살았고, 남은 절반의 5개월을 '내 집'을 구하고 독립해 진짜 홀로 살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못해도 내가 당장 상상할 수 있는 어느 무렵까지의 남은 날들을 지금처럼 혼자 살아가겠지.


단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 지금도 한두 달에 한 번 본가에 내려가기만 하면 잠시 잠깐 외출을 마치고 비로소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하며 살아왔는데, 글쎄. 내가 이렇게 어리광쟁이였나를 실감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앞으로도 얼마큼은 더 꾸준할 것 같고.




처음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는 일' 시리즈를 쓰기 전, 그리고 쓸 때의 나는 정말 많이 괴롭고, 힘들고, 만사가 고통스러웠다.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한두 달 전의 과거를 떠올리며 쓰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었지만 나는 그 몇 달 사이의 간극이 무색할 만큼 꾸준한 기세로 지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모든 근심걱정을 덜 줄 알았는데 웬걸, 삶의 문턱은 너무도 높았고 아직도 많았다. 시야를 가로막힌 채 눈앞의 이 벽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게 결승점이 아니라 다음 경로까지의 숱한 장애물 중 하나에 불과한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또 한 번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 고통을 어떻게라도 토해내야 했다. 뭐 자랑거리라고 전시하진 않더라도 어디든 내놓아 '나 정말 죽을 맛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오래도록 도전해야지, 도전해야지 생각만 하던 브런치에 바로 그 시기에 용기 내어 들어오게 된 건 운이 좋았다.


그런 내게 깊은 동굴이 되어 주고, 구덩이 속 대나무숲이 되어 주고 어리고 철없고 서투른 글들에 담긴 마음가지들을 바리바리 읽어다 위로를 건네준 독자들(이라는 표현은 너무 어색하고 부끄럽지만)이 있는 브런치가 삭막한 일상 속 한 줄기의 숨통이었다. 또 앞으로도 종종 그럴 것이다.




우울을 겪는 나날들을 늘어놓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아주 살 만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무력감에 휩싸여 영영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던 날들에서만큼은 벗어난 것 같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엇이든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나를 던져놓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쓰러지고 무너지고 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어느 순간이 온대도 다시 일어나고, 잠을 깨우고 문을 열고 나서야 한다.


요즘도 종종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삶의 부질없음을 느낀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여전히 문득문득 지친 틈을 알아채고 기다렸단 듯 파고든다. 그렇다 보니 나풀거리는 연약한 의지를 가지고 살며 하루건너 하루를 잠시 착실하게 살다가, 과거의 게으름과 무력함에 사로잡혔다가를 퐁당퐁당 반복한다.


작디작은 부엌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따뜻하고 건강한 밥 한 끼를 잘 차려 먹고 뿌듯해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충동적으로 비싸고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을 한가득 시켜 기분이 나쁠 정도로 입안에 욱여넣고 배를 불린 뒤 후회로 훌쩍이다 잠드는 날이 있다.


퇴근 후 청소기를 돌리고 밀린 뉴스레터를 쓰고, 답장을 읽고, 과일을 깎아 먹는 알찬 저녁이 있고, 가방을 패대기친 채 핸드폰과 함께 엎어져 손도 까딱하지 않고 세수조차 하지 않은 채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저녁이 있다.


가볍게 산책을 나서고, 청소를, 빨래를, 설거지를 착착 해내고 깨끗해진 방에서 노래를 틀어 두고 글을 쓰며 괜찮은 주말을 보냈다가도 이틀째 감지 않은 머리로 침대에 틀어박힌 채 핸드폰과 충전기만으로 하루를 꼬박 한심히 보내는 주말이 여전히 내게는 존재한다.


이 모든 과정이 시행착오라고 생각하고 싶다.


한심하고 울적한 날들을 더는 실패라고 명명하지 않겠다. 성큼성큼 '나아가'진 못해도 찔끔찔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한걸음에 두 계단씩도 너끈히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풀이 죽는대도 나는 나만의 보폭으로 걸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이 티끌들이 모여 먼 미래에는 태산 아니라 동네 뒷산이라도, 아니, 한 무더기의 언덕이라도 되리라고 믿으면서, 웬만해선 돌아보지도 않을 거라고 다짐도 한다. 얼마큼 모였나 돌아볼수록 조급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날아갈 듯 행복하고 삶을 축복처럼 여기는 날, 그런 건 없다. 그냥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으니 살아봄 직한 날과,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또 썩 살고 싶지도 않은 날의 연속일 뿐이다. 다만 영영 없는 것은 아니기를. 그런 보석 같은 날들이 일상 어딘가 평생 발견되지 않을 것처럼 묻혀 있다가도 어느 순간 파헤쳐지길 바란다.


그런 날이 1년 365일에 단 하루래도 나는 기적, 행복, 기쁨…….

온갖 좋은 말들을 그 하루에 덕지덕지 엮어 남은 364일 내내 너끈히 지고 가겠다.


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살아가야만 한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우리는 자주 불행하고 때때로 행복할 테지만 그 알량한 행복을 기다리고 또 수없이 곱씹으며 살아가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지. 덜 불행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정원을 가꿔나가며.


세상 제일 화려하고 눈부시게 빛나지는 않더라도,

희미한 반짝임만으로도 뿌듯하게 영글어가는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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