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퇴사의 대가와 다시 걷는 법
작년 이맘 때 즈음, 나는 퇴사를 했다.
오랫동안 번아웃을 겪으며 이대로는 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실 충분히 준비한 퇴사는 아니었다.
“일단 멈춰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였고,
퇴직금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퇴사와 동시에 바로 공인중개사로서 상가 중개 일을 시작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있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현장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더구나 경기가 안좋아지고 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상가 임차인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았으나,
공실이 많던 시기였고,
임차인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했다.
하루 종일 광고를 올려도 상가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확실히 이런 불경기에는 불가피한 주거지 이동이외에 상가는 거래가 되지 않았다.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자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중개업과 동시에 특허 외주 업무도 이어갔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사건 자체가 고정적이지 않다보니 수입이 들쭉날쭉해 안정적이지 않았다.
생활비를 메우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아파트 사전점검 아르바이트, 플리마켓 상담, 침대 청소 서비스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보았다.
땀 흘리며 부딪히는 낯선 경험들은 힘들기도 했지만,
그 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퇴사 즈음해서 뜻밖의 기회도 있었다.
열 명의 작가와 함께 공저로,
『나를 위한 시간, BEST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라는 에세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내 이름이 책 속에 실린 것을 보는 순간,
불안감 속에서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작은 위로감도 얻을 수 있었다.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고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확신,
그리고 글이 내 삶을 지탱해줄 또 다른 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현실은 냉혹했다.
공인중개사로의 첫걸음도, 특허 외주 업무도,
주말 부업도 모두 단기간에 자리를 잡기는 어려웠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시간을 통해 깊이 배웠다.
결국 나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온 업무, 즉, 특허업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가장 오래 해왔고, 가장 안정적인 기반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본업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보면서도 이게 맞는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
다시 예전의 틀에 갇히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매달 일정한 수입이 들어오고
생활비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안도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게 안정과 아쉬움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다시 본업을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을 병행하며 얻은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상담도, 중개도, 글쓰기와 출간까지. 그 모든 시도가 엉켜 결국 지금의 기반이 되었다.
실패 같았던 순간들도 나중에 돌아보니 모두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깨달았다.
퇴사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번아웃 때문에 갑작스레 회사를 떠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생활비 압박이라는 벽을 반드시 마주하게 만든다.
퇴직금으로 잠시 시간을 벌 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생활비를 대비해야 하고,
새로운 길을 걸으려면 현실적인 기반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 퇴사를 고민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준비 없이 나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생활비, 경험, 대안적인 수입원, 이 세 가지를 먼저 갖춘 뒤에 나와도 늦지 않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하지만 그 시작을 버틸 체력이자 자금이 준비되지 않으면 오히려 꿈을 더 멀게 만들 수 있다.
생활비 압박은 분명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나를 단단하게 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언젠가 더 안정된 길 위에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 다음 글 예고
〈나는 잠깐 멈췄을 뿐입니다!〉에서는 퇴사 이후 흔들리던 나날 속에서 어떻게 다시 방향을 찾고,
잠시 멈춘 시간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나눠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