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삭이란 이런 것...

코로나 시대의 육아

6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음이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급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책을 읽어야 할까? 아니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철 지난 옷을 정리해야 할까, 마음 같으면 자전거를 타러 탄천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다.


두 근 반 세근 반 마음이 조급하다. 코로나 일상으로 아이들과 붙어 지낸 지 어언 6개월이다. 불안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서 나름 학교의 스케줄에 맞춰 뭐 라도 해보려 했건만 아이와 사이만 멀어지는 요즘이다. 하루에도 샤우팅을 몇 번씩 해야 하며, 비폭력대화의 4단계를 구구절절 머릿속에 되 뇌이며 상대의 욕구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어느새 잔소리와 등짝 스매싱이 허공을 가득 메운다.


아무리 시간관리를 잘해보려 해도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놈이 단 한 놈도 없다. 그나마 요새 둘째의 유치원이 한줄기 숨구멍을 내어주고 있다. 놀기만 하던 첫째가 1학년이 되니 학습 습관과 매일 할 일에 대한 일로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렇게 지지고 볶던 일상으로 단 하루도 아이들과 떨어져 지낸 온전한 시간이 없던 6개월이다.


아이들만 있었다면 그래도 내가 감당할 몫이라 생각했을 텐데, 신랑 업무의 포지션이 바꾸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신혼 때야 같이 있으면 더없이 좋았던 신랑이지만 집에서 업무를 보면서 신랑과 함께 있는 일은 나에겐 더 없는 고역이었다. (신랑이 싫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내 시간을 분단위로 토막 내서 내 시간을 잡아먹는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세 번쯤은 부르는 것 같다. 약 15분 사이에 3번... )


하루 종일 온 식구가 같이 있는 것이 이렇게 버겁고 부대끼는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 신혼 때 우리가 했던 농담 중 하나가 신랑이 일찍 들어오면 부인이 싫어한데? 이게 말이 돼??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당연히 싫은데!!! 가 되었다. (하하하.... 미안하다 신랑아)


전날 잘못 먹은 해산물로 식중독은 아니지만, 배앓이를 하고 힘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세상은 돌고 매일 아침은 밝아온다. 어제는 말일이라 처리해야 할 은행 업무와 엄마를 도와주는 에어비앤비 업무,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아픈 것과 상관없이 둘째는 유치원 가방을 싸야 했고, 첫째는 온라인 학습을 들어야 했고, 신랑은 집에서 일한다고 북적대고 있다. 더구나 나의 서재 방을 차지하고 각종 서류로 발 디딜 틈 없이 만들어 놓으니 멘붕이 왔다. 하루 루틴의 일부라도 할 생각에 책상에 앉았는데, 첫째가 1분 간격으로 질문을 쏟아 내었다. 궁금한 게 참 많은 첫째다. 그리고 첫째 아이의 질문이 아주 잠깐 뜸해진 그 틈을 신랑이 치고 들어온다. 아침나절 동안 아파서 누워있던 나에게 참았던 질문과 이야기가 쏟아진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에게 나 혼자만의 시간이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실 외향적인 성향이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이 꼭 있어야 하는 외골수이기도 하다. 그걸, 결혼 10년 만에 알았다. 육아가 남들보다 두세 배로 힘들었던 이유도 아마 나 혼자만의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해서 멘털이 나간 상태로 몇 년을 지속했던 탓인 것 같다.


이젠 코로나 치료제를 기다리며 일상을 멈추기엔 한계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감기처럼 코로나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도 한계다. 코로나 때문에 6개월 동안 끊었던 아이의 합기도를 7월부턴 보내기로 했다.


첫째 아이는 남자아이에 체력까지 좋다. 운동이 필수인 아들을 6개월째 집에 데리고 있었더니 에너지가 집안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첫째가 합기도 운동하러 가는 첫날이다. 때마침 오늘 신랑도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정말 6개월 만의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단 2시간 정도지만 가슴이 설렌다.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고 글로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적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온전히 커피 한잔을 마신 날이 6개월 만에 처음인 것 같다.


합기도 사범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후 합기도 차량이 집 앞에 도착한다고 한다. 맙소사 벌써… 나의 2시간은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커피 한잔을 내리고 흥분된 마음을 적어 내리다 끝이 났다. 순삭이란 표현은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허탈감과 아쉬움에 갈증에 목마르다. 커피잔에 낮게 깔린 아메리카노를 원샷으로 입에 털어내고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순삭이로다.... 순삭...

u-j-e-s-h-7ySd00IGyx4-unsplash.jpg Photo by u j e s h on Unsplash



순삭
‘순간 삭제(瞬間削除)’ 또는 ‘순식간(瞬息間)에 삭제됨’을 줄여 이르는 말로, 어떤 것이 매우 빠르게 사라짐 또는 순식간에 없애버림을 뜻함. 처음에는 게임상에서 상대방의 캐릭터를 순식간에 죽였을 때 또는 자신의 캐릭터가 순식간에 죽었을 때 쓰다가,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급히 먹어버렸다는 의미, 또는 무언가를 하느라 돈이나 시간 따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음을 아쉬워하는 의미로도 쓰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순삭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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