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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Nov 01. 2024

상걸아, 난 열심히 해도 요 모양 요 꼴이다(1)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다.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욕구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도 들어와서 그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공부를 안 한 건 아닌데, 열심히 하려고 나름대로 애써봤는데 잘 안 됐다.      


나는 좋다는 학습법을 들으면 이것저것 따라 해본다. 맨투맨 기초영어와 누드교과서와 개념원리수학을 마련하고, EBS강의를 듣고, 그림을 그려가며 영단어를 외운다. 집중력을 올리는 데 좋대서 바흐의 협주곡 테이프를 들으며 공부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하다 보면 어렵고 모르겠다. 콱 막혀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수학문제를 풀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해답지를 안 보고 풀려고 한 시간 내내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댄다. 수학은 앞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어렵고 막막하단 느낌을 받으며 공부가 끝나면 다음날에 그 부분을 다시 보는 대신 다른 책을 펼친다. 막혔던 부분을 해소하고 다음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니 공부가 그 지점에서 멈춰버린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나 사회탐구과목은 잘했는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공부는 뒤죽박죽이다. 큰 그림 없이 이 책 잡았다 저 책 잡았다 닥치는 대로 한다. 수험서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일이 별로 없다. 우선순위영단어든 수학교재든 문법책이든 끝까지 뗀 적이 없다. 하다 그만두고 하다 그만둔다.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국어는 곧잘 했는데 이마저도 시험 난이도가 올라가거나 지문이 길어지면 죽을 쒔다. 시간 내에 읽기에도 벅찰 만큼 글을 많이 실어놓고 어떻게 문제까지 풀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수능시험은 쳐야 할 과목이 여러 개다. 수험기간 동안 전체과목을 반복해서 보며 완성도를 높여가야 한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전 과목을 본 적이 없다. 늘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해왔다. 밤 9시가 되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나는 가방에 영단어, 사회탐구, 국어 등 책을 몇 권이나 쑤셔 넣는다. 하굣길과 등굣길의 지하철에서, 또 집에서 잠자기 전까지 보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책은 한 번도 펼쳐보지 않고 다음날 고스란히 학교로 가져오게 된다. 모든 걸 하려다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건 내가 학창 시절부터 보여왔던 행동패턴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수업시간엔 꼼꼼히 필기를 하고 야간자율학습도 꼬박꼬박 한다. 야자시간에 떠드는 양아치들을 마음속으로 원망한다. 시험기간이면 박카스를 마시며 새벽까지 책상 앞에 붙어있다. 방학 때도 독서실에 가서 앉아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공부를 하면서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쌓인 스트레스는 게임으로 푼다. 쉬는 날에는 하루종일 게임을 했다. 고1 때는 디아블로 2에, 고2부터는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았다. 난 고등학생 때 반 친구들과 못 어울렸고 친한 친구가 없었다. 실낱같은 인간관계마저 끊어져 외톨이가 될까 봐 착한 사람이 되려 애쓴다. 누군가 날 함부로 대하고 모욕해도 꾹꾹 참는다. 학교에도 집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인생의 낙도, 별다른 취미도 없는 내게 게임은 유일한 도피처이자, 스스로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었다.      


생활이 불규칙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한번 티브이를 틀면 열두 시 넘어까지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보곤 했다. 그렇게 늦게 잔 날이면 다음날 수업시간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뭐 하나 제대로 공부한 게 없는 채로 고3이 됐다. 수학을 포기했다. 학기를 시작할 때는 1년만 마음잡고 공부하자 마음먹었지만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저것 되는대로 공부하고, 밤이 되면 게임중계를 보는 나날이 반복됐다. 반에 날 괴롭히는 애가 있어서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았다.     


수능이 2개월 남았을 때였다. 주말에 자율학습을 하러 왔다가 저녁이 되어 반 아이 두 명과 피시방을 가기로 작당하고 학교 언덕길을 내려가던 참이었다. 올라오던 상걸이와 마주쳤다. 전교 20위권에 드는 상걸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너희 어디가냐길래 피시방에 간다고 하니 상걸이가 엄청 황당해하면서 우리에게 쓴소리를 했다. 수능이 코앞인데 제정신이냐, 죽어라 책만 봐도 모자랄 시점에 피시방 가는 게 말이 되냐, 진짜 정신 좀 차리라고.     


상걸이 말이 워낙 지당해서 대꾸 한마디 없이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의 말이 피부로 다가오진 않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상걸아, 너는 공부를 잘해서 남은 2개월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2년 반 넘게 나름대로 열심히 해봤는데 요 모양 이 꼴이다. 남은 2개월 공부한다고 지금이랑 크게 달라질 게 있겠니?'      


나는 수능을 치기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안 좋은 결과를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다가올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형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으로 시험이란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수능은 400점 만점에 255점을 받았다. 난 입시제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대학의 어떤 학과를 들어가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도, 그곳에 들어가려면 성적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아본 적도 없었다. 그냥 성적을 최대한 높게 받아서, 나온 성적에 맞춰간단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교에 지원하려면 원서를 어디서 사서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책이 없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도착지를 정해두지 않고 여행을 떠난 여행자와 같았다. 무작정 열심히 걷다 보면 멋진 장소에 도착할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하지만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 방황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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