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학부모 총회를 체험하다

캐나다 공립 중학교 생활

by 캐나다글쟁이


캐나다의 학제는 동네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서울이라 해도 구가 다르면 학제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 제이고.

바로 옆 도시는 초등학교 7년과 고등학교 5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혹 같은 도시 내에서도 두 가지 방식이 갈리기도 함. 간단히 말하자면 제 마음대로다)


캐나다 공립학교는 한국처럼 집주소에 따라 학군으로 배정된다.

-유학생 배정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원래 첫째와 둘째를 같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등학교 5년제 동네를 기웃거렸다. 비록 집에서는 싸우는 남매지만, 외국에서 서로 의지 하라는 의미였는데... 우리 가족은 그 동네 집 구하기에 실패했다.


결국 캐나다 입국 19일 전, 미들 스쿨이 있는 동네에 집을 구해 두 아이는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땐 집을 구한 것만으로 감지덕지라 학교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결국 첫째는 고등학교(세컨더리 스쿨) 첫 학년인 9학년.

둘째는 중학교(미들 스쿨) 마지막 학년인 8학년으로 결정.

미들 스쿨에는 6,7,8학년만 다닌다. 한국으로 치면 초5, 6 중1 아이들이다.


이렇게 캐나다 생활을 스타트했다.

다행히 첫째는 혼란스러운 입학생들에 섞여 비교적 순탄하게 학교에 적응했다.

하지만 둘쨰는 중학교 졸업반이라 기존 친구들 사이에 뚝 떨어진 상황.


캐나다 처음인 우리 부부 역시 완전히 다른 두 학교 시스템 사이에서 넋이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둘째 open house 날이 되었다.

학교의 open house는 한국의 학부모 총회라고 보면 된다.

두 아이의 엄마로 초중등학교 총회를 여러 번 다녔으나 외국 학교는 처음이라 긴장되었다.



한국의 총회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부진도 피해 가지 못한 총회 패션. ㅎㅎㅎ


하지만 이 동네에서 정장이나 명품을 챙기면 정말 튈 것 같고, 한국에서 트렌치코트도 안 가져와 셔츠에 가디건을 입었다.

현장에는 엄마 혼자 온 사람보다 부부 동반이 훨씬 많았고, 아빠만 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참고로 이곳 부모들 옷차림은 각양각색 동네 마실 나온 분위기였다.


나는 한국과 다른 시스템이 궁금하고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 걱정되어 남편과 같이 참석했다.

여기서는 어디든 부부가 함께 다녔는데, 둘이서 동시에 리스닝 한 뒤 서로 들은 말이 맞는지 더블체크 하는 목적이었다.

생존 도구인 영어와 맞서는 우리들만의 고육지책이랄까. 이 나이에 영어 듣고, 말하고 쓰기 쉽지 않아 고단하지만 캐나다에 살려면 해야지. 별 수 있나.






학교가 가까워 집에서 걸어갔다.

쌀쌀한 밴쿠버에는 조금씩 가을이 찾아오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리.

둘째는 매일 이 길을 자전거 타고 등교했다.

저 끝이 학교인데 막다른 길이고 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어 안전하다.




조용한 동네의 평범한 공립인데 이 학교는 자부심이 큰 걸까?

벽 걸려있는 문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치동에 살았고.

사립중과 공립중을 다 보내봤으며, 공립 중학교에 실망했던 나로서는 캐나다 학교에 큰 기대가 없었다.

사춘기 아이가 바뀐 나라에서 무사히 적응하기만 바랐다.

무엇보다 캐나다 학교는 학생에게 공부를 안 시킨다는 얘기를 들어 충격받지 않을 준비도 했다.


왜 이런 말을 하냐고?

대부분 캐나다 유학원에 가면 공립은 공부에 관심 없기 때문에 학업을 원하면 사립 가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캐나다 학교 랭킹을 확인하면 대부분의 사립이 상위권을 차지하니 맞는 말 같다.

우리 이웃 중 프렌치는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보냈다.


이 중학교는 학교 이름 앞에 ecole이 붙어있는, 이 경우 프렌치 이머전으로 불어로만 수업하는 클래스가 있다.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퀘벡은 프랑스어만 쓴다.

프랑스어를 잘하면 플러스알파라 신경 좀 쓰는 집에서는 프랑스어까지 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 하기도 바빠서...

난데없이 ecole에 입학해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 둘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1년을 버텼다.







먼저 체육관에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키가 큰 아저씨였는데 매우 인자하고 학교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점심 먹는 아이들 모습을 집적 찍어서 화면으로 보여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연설을 짧게 끝내주셔서 호감 상승!

큰 체육관이 학부모와 아이들로 꽉 차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 반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모 수학 학원에서 봤던 낯익은 시계 발견!

우리 애들이 감금되다시피 했던 모 학원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오... 이제 수학도 한류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거의 40명쯤 되는 학부모와 학생으로 반이 꽉 찼다.

그 와중에 한국인 학부모 우리 밖에 없어서 소외감이... (총회 끝무렵에 한국인 부부가 들어와 한인 학부모 두 팀이 되었다.)


알고 보니 담임과 부담임이 두 반을 담당하는데, 두 반의 학부모가 한 교실에 모인 탓에 의자가 모자라 옆반에서 빌려왔다.


밴쿠버 생활은 시작부터 내 기대를 많이 벗어났으며 총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 공립학교 공부 안 시킨다고 들었는데 웬걸.


자리에 앉자마자 과제 이야기로 반총회를 시작하고 부모들이 교사에게 질문을 엄청나게 했다.

한 마디로 전투적인 분위기.

다만 녹색 어머니 등 임원을 뽑지 않았다.

(학부모회는 온라인을 통해 자원한다.)


아무튼 이 학교는 수학+과학과 언어+사회 선생님이 각각 담임과 부담임으로 월수금 화목을 번갈아 수업한다.






그런데 총회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빠들이 엄청나게 질문하는데 대부분 성적에 대한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퀴즈 틀리면 회복할 기회를 주냐고 묻는다.

답을 들어도 그 조건에 대해 계속 물어본다.

퀴즈 재시험을 보면 페널티가 있냐, 처음부터 잘 본 아이와 어떤 차이가 있냐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묻는다.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재시험 문제는 다르나 점수 차이는 없다고 함-


총회 시작부터 계속 공부, 성적, 시험 얘기만 하다니.

널널한 공립학교를 상상하고 왔던 나는 뜨거운 분위기에 당황했다.




교실에 붙어있는 자료.

보다시피 수학 진도는 한국에 비해 매우 느리다.


또한 AI 때문에 수업과 과제 방식이 바뀌었단다.

담임은 1년 간 모든 에세이는 손으로 써서 종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챗지피티 등 AI의 제1 언어가 영어라 한국어보다 훨씬 능숙한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AI표절기를 사용해 과제를 체크한단다.

연필로 제출해도 AI 작성 내용을 체크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하셨다.


담임은 고등학교 가면 라이팅 교육 따로 안 시키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라이팅 습관을 들여주겠다며 앞으로 숙제 많이 내겠다고 했다.

매일 체크하라고 계속 강조했는데 이 대목에서 학부모들이 진심으로 좋아해서 순간 한국인가 했다.

자녀의 AI의존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똑같았고, 나 역시 핸드라이팅 에세이는 환영한다.



중학교 졸업학년인 8학년을 이끌려는 선생님의 의지가 매우 확고했다.

내년 1월에 이번 학기 성적을 고등학교 넘겨 선택과목이나 어드밴스드 클래스 들을 학생 정할 것이니 성적 잘 챙기란다. 고등 가면 전반적으로 공부 안 하니까 지금 습관을 잡는다는 뉘앙스였다.

고등학교 가면 논다니... 어째 거꾸로 된 느낌인데 캐나다 학교가 처음이라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가만 보니 교실에 심상치 않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열심히 해야만 통과

there is no I in team

우뚝 서기 위해 태어남


혹시 여기 군대... 인가?

구닥다리 문구가 낯익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고등시절 학생 주임이 입에 달고 다니던 멘트 같았다.






캐나다 총회를 정리하자면.


1. 전반적으로 한국에 비해 바른생활 태도와 기본예절을 매우 강조한다.

옷차림 등 개인의 외모는 어떻게 하든 터치하지 않으나 타인과 관련된 태도는 정확한 룰이 있었다.

선생님과 다른 학생을 존중해야 본인도 똑같이 존중받는 방식이었다.


2.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선생님은 다정하지만 한국에 비해 규율과 예절이 엄격하고 지켜야 할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포스를 풍겼다.


3. 건강 중시

담임은 13살이면 부모로서 올바른 성장을 위해 자녀를 10시간 이상 취침을 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10시간?

예전에 학원 다니느라 잠 못 자고 숙제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큰 애는 8시간 자면 학교에서 신생아라고 놀림받을 만큼 잠이 부족했었는데...


귀 기울여 들어보니 애들이 7시간 자면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한다며 집에서 잠을 재워야 교실에서 공부한단다.

이 사람 기승전 공부인가.

캐네디안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어 놀라웠다.


중등까지는 담임제라 담임에 따라 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들었는데, 이 반의 색깔은 확실했다. 이 선생님들 학습에 진심이다.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대학처럼 자율성이 높아지는 고등학교 진학 전에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어주겠다는 목표가 확실했다.

-캐나다 고등학교는 한국 대학처럼 스스로 수강신청하는 선택수업임-



교사와 학부모 모두 한국 총회보다 훨씬 열정적이라 질의응답 장난 아니었고 교사는 과제를 잘 체크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이메일과 전화할 테니, 그거 싫으면 관리 잘하란다.



아...

이 느낌 익숙하다. 과제 안 해가면 문자 보내고 전화하며 밀착관리 하던 학원.

아이들에게 집착했던 모 영어학원 부원장님, 그분을 캐나다 총회에서 떠올릴 줄이야....


2 시간의 열띤 총회 리스닝하고, 마지막에 담임과 부담임에게 얼굴 도장을 찍으며 악수했다.

솔직히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다른 부모들이 줄 서서 담임과 스몰톡을 하길래 나도 했다.

다른 글에서 느꼈겠지만 내 줏대가 강하진 않아서 남들이 하면 잘 따라하는 편이다.


담임에게 웃으면서 우리 집 청소년이 괜찮냐고 물었다.

원래 학부모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지 모르나 아이가 수업에 잘 참여한다는 대답을 받아 살짝 안심이 되었다.


교사 붙잡고 길게 이야기하는 학부모가 많아 인사도 한참 기다렸고, 전반적으로 머나먼 이곳에서 한국 학원 설명회스러운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태도와 수업 참여도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점은 한국과 달랐다. 아이가 노력해도 못하는 것과 게을러서 못하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대목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내가 들었던 캐나다 공립과 달라 놀랐지만, 교사의 열정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 반만 그런 건지, 다른 학교도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난 오직 한 중학교의 한 반만 알기 때문에 내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캐나다는 학교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한국처럼 동일한 수업체계가 아니라 옆학교와 비교는 의미가 없다.



총회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두 시간 버티기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 학교 가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영어를 들으며 새 환경에 새 친구까지 사귀는 아이가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둘째야.

그래도 숙제는 하자.

안 하면 너 큰 일 나겠더라.



(1년이 지났으니 고백하자면, 선생님들이 진짜 부모에게 연락했다. 나는 이메일은 받았으나 메일 받고 숙제 시켜 전화 까지는 받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6화삼겹살은 마당에서 구워야 제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