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욕망
사람을 사랑하다 보면 그 사람을 통해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듯 기적 같은 몽글몽글한 순간들이 온다. 그 순간이 저물때쯤이면 거짓말처럼 그 사람 속에서 내가 못 견뎌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데 정말 못하겠는 것들 죽을 만큼 싫은 것들이 보이지만 헤어질 수도 없는 사이. 내가 그런 만큼 상대의 시선 속에 징글징글한 내가 있겠거니 하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사랑해서 반짝이는 기적과 사랑함에도 싫은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균형있게 함께하는 것이 가족의 삶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요즘.
1호기 겉은 아빠 속은 엄마이다.
2호기 겉은 엄마 속은 아빠이다.
1호기는 날 닮았다. 뭐든 떨어질 때까지 사용한다. 쇼핑을 나가면 그날 목표한 것만 산다. 그것도 처음 들어간 매장에서 웬만하면 고르고 나온다. 2호기는 아빠를 닮았다. 형이 다 고르고 난 그 타이밍에 나도 사줄 거야? 자기 사이즈를 하나 들고 온다. 나랑 1호기는 동시에 똑같이 뜯어말린다. 네 순서 아니거든...
첫 아이가 주던 신비함과 기쁨과 사랑과 기대감은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내 것을 줘도 아깝지 않고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이라 서툰 애교도 1호기 앞에서는 실컷 한다. 1호기 눈높이에 게임, 웹툰 이야기를 따라갈 수는 없어도 덕질과 연애 잘하는 방법 내 기준 재미난 웹툰 추천 정도의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은 아끼지 않는다. 내 조언은 종종 잔소리가 되고 잔소리는 1호기의 불안이 된다. 대화 속에 아이의 불안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네 안에서 내가 보여 무서워진다.
두 번째 아이는 첫아이가 주던 신비함 기쁨 기대감은 오간데없이 마냥 사랑스럽다. 종종 사랑스럽고 종종 내 배속에서 이렇게 다른 애가 나왔는지 어딜 가도 분위기 잘 익히고 이쁨 받고 웃고 천진난만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다 아빠를 닮은 덕분이다. 솔직하고 넉넉하고 푸근하다. 늘 웃고 있어서 보고 있는 나도 행복하다. 가끔 너무 솔직해서 내가 냄비 채 두고 밥을 먹거나 서서 먹으면 "왜 그렇게 ♡♡같이 먹어?" 말로 뚜드려 팬다. 너의 시선에 내가 초라해 보여서 무서워진다. 그래도 내가 속상하거나 슬프면 이유는 몰라도 풀어준다고 옆에서 계속 바라봐주는 나의 귀요미. 이유는 모르는데 풀어주고 싶은 그 마음을 난 언제쯤 닮을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어른인 2호기이다.
1호기와 2호기.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내 사랑이 모든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용기가 되길 기도한다. 언젠가 어느 순간 용기 그 끝에 만날 좌절감과 무력감이 내 사랑 속에서 나온 태생적 불안과 초라함을 동반할까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지리멸렬한 자기부정이 따라온다고 해도 내 사랑을 증명해주고 싶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내 취향의 욕망.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어제보다 덜 감정적이고 더 성숙한 부모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취향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아껴도 이 책임과 사랑을 아끼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래서 더 사랑한다. 새 학년 첫 등교일. 좋은 선생님 만나고 친구들도 잘 만나고 오길. 새로운 시작에 늘 같은 응원을 보낸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