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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Apr 02. 2024

내 눈안에 넣어도 OOO 자식   

첫째는 얼마전 등교 거부와 지각으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 아이는 여자 아이 특유 감수성과 약간의 예민함을 탑재했는데 잘 삐지고 감정도 세밀해서 T엄마는 답답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 엥~!? 이런 걸로 삐진다고? " 그럴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분노와 고구마 백만개를 물 안먹고 삼킨듯한 답답함이 단전에서부터 끌어오른다. 하지만 참고 이야기한다. " 그래서 OO아, 아까 왜 속상했던 거야? " 라고 F 엄마인 척을 해본다. 우리는 최근교회를 옮겼는데 옮기된 배경은 첫째 때문이었다. 규모가 큰 교회에 다녔던터라 예배가 끝나면 주차 눈치 전쟁이 시작됐는데, 앞 차가 나가야 내 차도 나갈 수 있는 운명 공동체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들은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을 픽업해서 차에 싣어야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인지라 선생님들은 빨리 공과 말씀을 전하고 간식은 앉아서 먹고 갈 수 없는 시스템이랄까. 전부 간식은 집에 가서 먹으라고 포장해주는 정성 신공을 뿜어냈다.





첫째는 초등학생이었고 둘째는 영아부에 출석했는데, 전 교회는 영아부는 부모님이 함께 예배를 드렸고 유치부부터 부모님과 독립해서 예배를 드렸다. 그 기준이 6세였다. 6~7세는 유치부, 0-5세는 영아부였다. 첫째는 이런 부분까지도 질투했다. 왜 동생은 엄마 아빠랑 예배를 같이 드리는데 자기만 혼자 유년부에 가야하냐고 불만이 한 가득이었다. 뒤늦게 남편이 전해준 이야기는 그랬다. 첫째 나름대로 동생이 엄마 아빠랑 예배에 가는 것을 1년 넘게 참았는데 이제는 유년부에 가기 싫다고 했다. 모태 장아찌였던 남편과 나는 우리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아이의 믿음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나는 전교회에서 만나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생육하고 번성한 세대였다. 그래서 교회를 옮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뿐더러 뭔가 고향을 떠나는 느낌이 들어서 쉽지만은 않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매번 보는 똑같은 사람들 말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했는데 아무도 당신만 쳐다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법이니까 말이다. 시부모님 때부터 다닌 교회였다. 다른 가족들도 엇비슷했다. 부모님이 다녔고 그 자식의 자식까지 다니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랬는데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났다. 첫째를 유년부에 데려다주고, 둘째와 영아부에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 예배 드린지 얼마되지 않아 밖에 첫째가 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첫째는 울고 있었다. 왜 울었냐고 묻자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랬다면서.. 초등학교 2학년이 말하기에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유년부 예배 분위기가 적응하기 어려웠나보다 싶었다. 결국 끝까지 첫째는 돌아가지 않았고 같이 영아부 예배를 드리게 됐다.(하필 이 날, 남편이 출장 가 있었다.) 첫째는 자기는 엄마랑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유년부 예배는 재미 없고 분위기가 뭔가 본인이 원하는 분위기가 아닌 듯 했다.







그 날 밤, 첫째의 교회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전화했다는 말로 시작하며, 자기가 오늘 사역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게 힘들었으며 갑자기 본인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만 돌볼 수는 없으며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워딩이 아닌듯)2학년인데 아직까지 예배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왜 아이가 예배에 적응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변론하기 시작했다. 일단 예배를 간 횟수 자체가 적은 부분, 시댁 교회는 개척 교회다보니 서로서로 친밀한 분위기나 친구가 없는 점, 사람이 많은 것 자체를 아이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까지 말이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그렇다면 시댁 교회로 옮기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그래서 속으로 우리 시댁이 어딘지 알고 옮기라고 하는 걸까? 그리고 그걸 왜 당신이 옮기라 마라 경솔하게 판단하는 걸까. 우리 아이를 봤으면 얼마나 봤다고 한 번의 행동으로 판단하는지부터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결론은 자기는 컨트롤이 안되는데 나에게 아이가 울거나 엄마에게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했다.





이것도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대한다기 보다는 다루기 쉬운 아이들만 맡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울면 바로 우리가 영아부에 있으니 데려다달라고 했다. 그리고 교회를 옮길 생각도 하고 있으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했다. 선생님은 끝에는 감사하다고 말했으나 전혀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다. 나도 목소리톤이 처음과 달라졌는데 화난 톤을 선생님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런 분은 교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면서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가 너무 싫어하는데 계속 보낼 수는 없을 것 같고, 결론은 다른 교회도 알아보면서 예배를 드려보기로 했다. 첫째에게는 너가 경험해보지도 않고 피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현 교회 유년부 예배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정도 드려보고 그래도 다니기 싫다면 그 때 옮기는 것을 고려해보자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가 좋아할만한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로 옮기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도보권 교회를 탐방하다가 교회에 등록했다. 이유는 계속 새신자로 다니기에는 아이들을 교회학교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2~3번 정도 예배를 드리고 등록했어야만 했다. 옮긴 교회는 일단 아이들이 적응하기 쉽도록 여러가지 프로그램이나 키즈카페 등, 교회학교가 체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교회학교에 갔다온 첫 날, 이 교회에서는 둘째도 혼자 선생님과 예배를 드렸기에 첫째는 이 점이 일단 마음에 들었고, 간식을 집에 가서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먹을 것을 좋아해서 자기는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또한 전도사님이 일대일로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첫째는 학교 친구도 있는 것 같다며 아이들 수가 적당하고 너무 많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전 교회 예배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번에 교회에 옮기면서 염두했던 점은 첫째 둘째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많은 곳이었으면 했다. 아직 더 다녀봐야 알겠지만 한 번 갔다오고 마음에 들었다고 하니 다음주도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바라본다.









이 일을 통해 자식 키우면서 별 일이 다 있다는 생각도 드는 한편, 예민하고 감정적인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가 나의 포커스다. T 관점으로는 이해보다는 요목조목 논리로 팩폭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인지라 한 템포 늦춰서 말한다. 말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문제는 이게 반복될 때면 나도 참지 못하고 한 번씩 공감보다는 팩폭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본인의 선물이나 요구, 가고 싶은 곳, 놀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막상 루틴 문제집 1일 할당량을 풀자고 하면 몸을 배배꼬고 이건 너무 많다 그럴 때... ENTJ가 가장 못 참는 것 중 하나. 내로남불. 나는 되고 너는 안되는.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발끈 하는데, 첫째를 키우는 동안 이 버튼이 자주 눌러진다. 그럴 때마다 고구마 백만개 삼킨 목메인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아이인지라 무턱대고 화부터 낼수는 없고. (처음부터 화내지 않는다.) 나중에는 화를 참고 말을 하는데 그럼에도 목소리에는 담겨 있어서 아이들은 나의 그런 화남을 기가 막히게 감지한다. 특히 둘째는 내 목소리와 표정을 살피며 " 엄마 왜 그래요? " 라고 묻는다.





" 누나 때문에 화내서 그래. " 그러면

" 누나가 엄마 좋아해서 그래."




전혀 앞뒤 문맥과 상관없는 말이지만, 둘째 딴에는 엄마와 누나를 중재하려는 눈물 겨운 노력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풀어지는데 그래도 덜 풀린터라 온 몸으로 화났어 아우라를 내뿜는다. 퇴근하는 남편은 그 점을 놀랍게도 그동안 같이 산 짬밥으로 눈치채는데, 무슨 일있어? 하며 뭐 먹고 싶은 거 있냐며 당장이라도 배달을 시켜줄 만만의 자세가 준비되어 있다. 이래서 자식보다는 남편이라고 하던가. 그래도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첫째를 보면 답답하고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자기 앞가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걱정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내 눈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 눈안에 넣어면 너무 답답한, 가끔씩 아픈 자식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좋은 말만 할수는 없으니까. 가끔 악역을 자처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선을 정해주고 그것을 지키도록 격려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의지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너를 어떡해야 할까.   





한줄평: 엄마 역할.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이 세상에서 단연 최고 어려운 역할 top1은 엄마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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