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산토리뇨 성당에 입장하지 못하고 환복후 재입장 하는 바람에 동선이 꼬였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에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메트로에 갔다오니 시간은 이미 9시가 가까워져 있었고, 호텔 수영장은 7~8pm까지였다. 그래서 수영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에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고 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1시간 정도면 둘이 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됐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둘다 수영을 못하는 맥주병이었고, 우리가 물에서 숨쉬기 위해서는 스노쿨링 장비가 필요했다. 물론 숨을 참고 잠수를 하면 됐지만 잠수도 그리 길게 하지는 못하는 터라 스노쿨링 장비를 챙겨갔다. 조식 2~3일째라 별 색다른 것도 없고 먹을 게 많지도 않았던 터라 가볍게 먹고 일어났다.
그 시간이 아마 8시좀 넘어서였을까? 수영장에는 우리와 같은 한국 사람 커플 밖에 없었다. 하여튼 호텔에서 일찍 밥먹고 수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험상 90% 이상은 한국인이다. (ㅋㅋㅋ) 부지런한 거 여튼 알아줘야한다는. 수영장에는 보시다시피 그늘막 시설이 없고 필리핀 특유의 땡볕을 고스란히 받아야하는 구조였는데 그나마 그늘이 진 스팟을 신혼부부가 차지하여 우리의 선택지는 땡볕 밖에는 없었다. 아쉽다. 더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농담이고. 아무튼 우리는 첫 날 무서워했던 물에서 또 물질을 하고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둘다 너무 잘하는거 아닌가? 싶은. 그래서 그때서야 우리가 먼저 호텔 수영장 같은데서 연습하고 이튿날 일정을 오슬롭과 모알보알을 갔다면 그런 소극적인 모습은 아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맥주병이라고는 하나 자세 자체가 완벽한 교과서 수영자세였다. 그리고 스노쿨링 장비를 끼니까 혼자 배영도 가능했다. 스노쿨링 장비를 끼고 들숨 날숨을 푸하 ~ 동일하게 하니 물이 들어오지 않았고 물 속에서 숨쉬는게 편안해졌다. 첫 날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둘 다 스노쿨링이 이런 거였냐며 한마디씩 주고 받고 또다시 수영 킵고잉. 나중에는 뒤로도 누워봤는데 극심한 물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엄청난 시도였다. 어차피 장비 끼고 있으니 가라앉아도 숨은 쉴 수 있겠지 싶었다. 또 물에 빠지더라도 수심이 얕아 바로 일어설 수 있는 곳에서만 하기도 했다. 라이프 가드가 있다고 하나 그는 그 이른 아침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만에 하나 대비해야 하니까. 아무튼 생각보다 스노쿨링은 재밌었고 할만 했으며, 어? 나 꽤 잘하잖아 싶었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가서 수영배우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역시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그렇게 1시간 놀고 이제 체크아웃을 대비해야 했기에 씻고 환복했다. 각종 널어놨던 빨래들을 정리하고 짐을 대강 쌌다. 그와중에 냉장고에 넣어둔 망고와 망고스틴이 있어서 이것들을 사형집행 해야했다. 그치만 나이프는 객실내 없어서 나이프를 빌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프론트에 문의했다. 그것도 역시 내가. 프론트에서는 식당에 가면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동생이 룸을 정리할동안 망고를 잘라오기로 했다. 식당에 가니 직원이 너 어쩐일로 왔어? 라는 표정으로 물어봐서 망고를 자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알겠다면서 부페 옆 스낵바(?) 혹은 카페 같은 곳의 남자에게 영어로 망고를 잘라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남자는 약간 난처한 것도 같았으나 밖에서 먹는 망고처럼 아주 예쁘게 컷팅해주었다. 나는 너무 예쁘다면서 너 솜씨가 정말 좋구나 라는 표정으로 엄지척+대단해 라고 말했다. 그는 수줍게 웃었고, 그와중에 라이프 가드와 망고청년과의 아이스 브레이킹이 시작되었다.
라이프 가드는 한국에서는 눈이 온다는데 진짜냐? 너 눈 본적있냐 물었고. 나는 진짜다. 라고 하니 몇월에 눈이 오냐고 물었다. 그래서 11월부터 2월까지 온다고 했다. 그렇게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느덧 피부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필리핀은 계속 여름이라 자기 얼굴이 씨꺼멓다는 안물 안궁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었듯이 나도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더니 내 얼굴이 하얗다고 말해서 깜짝 놀란! 한국에서 내 피부는 하얀편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 하얗다는 이야기를 필리핀와서 머리털 나고 처음 들었다. 그러더니 라이프 가드 아저씨는 유유히 사라졌고, 망고청년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망고청년은 오늘은 어디가냐고 물어서 시라오 가든이랑 레아신전, 야시장, 탑스힐에 갔다 마사지를 받고 한국에 간다고 말했다. 그는 꽤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가격은 얼마정도 하냐, 마사지는 몇 시간 해주냐.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필리핀에서는 스노쿨링을 많이 하는데 모알보알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거기는 첫 날에 갔다왔으며 오슬롭도 갔다왔다고 그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그 청년은 비용이 얼마인지 물었고 필리핀 페소로 내지 않았기에 한국돈으로 200000만원 정도라고 말했는데 그가 그 화폐 단위를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망고 청년과의 이야기도 너무 재밌었다. 오늘 하루 잘 보내 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동생에게로 갔다.
동생은 왜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었고. 나는 망고 잘라주다 어쩌다보니 망고청년, 라이프 가드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생은 역시. 그럴줄 알았다면서 친화력이 갑이라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에서 빵터진) 그렇게 둘은 망고 청년이 예쁘게 잘라준 망고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아무튼 조식 제일 일찍 먹는 사람! 관광지에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90% 이상! 몸소 체험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