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퍼스타도, 챔피언도 아니지만-하이록스 인천

2025년 두 번째 하이록스 출전의 기록.

by 태빅스

Chapter 1. 괜찮을 줄 알았다.


'너무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아직 러닝 1km 구간이 다섯 번, 스테이션도 다섯 개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벌써, 작년처럼 죽을 것 같았다.

손바닥은 로프를 끌어 마찰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의 땀방울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스키 에르그 1,000m. 그 구간은 괜찮았다.

파트너와 함께 세운 전략대로, 페이스와 교대도 매끄러웠고 페이스도 예상 범위였다.

두 번째 러닝까지도, 나는 분명히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마주한 건 하이록스의 세 번째 스테이션.


슬레드 풀(Sled Pull) 50m – 무게 102kg.

편도 12.5m, 왕복 두 번.


나와 함께 더블로 출전한 파트너와 이 스테이션은 편도당 절반씩, 6.25m 단위로 나누어 교대하기로 했었다.

고작 6미터 정도가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마치 60미터나 되는 기분이었다.

2025 05. 17 하이록스 인천. 세 번째 구간 슬레드 풀(SLED PULL)

절반을 알 수 있는 바닥의 선을 넘기고 내 파트너에게 로프를 넘겼다.

순간적으로 본 내 파트너의 표정은 이미 죽을 만큼 힘들어 보였다.


사실 두 번째 스테이션이었던

슬레드 푸시(Sled Push) 50m- 무게 155kg.

여기부터 파트너는 거의 무너져 있었다.

원래는 절반씩 나누기로 했지만,

그 구간에서 결국 마지막에는 파트너가 무너져서

내가 혼자 마무리했다.


'괜찮아. 원래 팀 경기란 게 그런 거지.'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서로 상의하며 계획한 스테이션별 전략은 이미 물 건너갔다.


오만 가지 별의별 생각은 이 스테이션부터 들기 시작한다. 작년에도 그랬다.

짜증. 책임감. 기록을 줄이고 싶은 생각 그리고… 그만하고 싶은 생각.


아무튼 파트너가 슬레드를 당기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렸고,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알 것 같은 몸의 움직임들이었다.

그래도, 아직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

아직 1km 러닝이 다섯 번, 스테이션이 다섯 개나 남아 있었다.



Chapter 2. 불안은 진작부터 있었다.


“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땀냄새와 쇠냄새가 진동하는 저녁의 크로스핏 박스.
첫 타임 WOD가 끝나고,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주먹을 부딪히며 인사를 나눴다.

땀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손가락에 감았던 테이프를 천천히 떼며 박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파트너도 내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한 2주 남았네요.”

정말, 하이록스는 이제 코앞이었다.

“우리 이번에 기록 얼마나 나올까요? 작년보다 안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좀 걱정되네요.” 내가 말을 이었다.

“전 오히려 더 잘 나올 것 같은데요? 크로스핏도 꾸준히 했고, 이제 뭐 다 할 줄 아니까.”


파트너는 이미 계산을 끝낸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작년보다 우리 훨씬 잘할 것 같아요. 태빅님은 마라톤 준비하면서 러닝도 다시 살아났고, 저도 스트렝스 늘었고.”


이론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린 작년 하이록스 전문 센터에서 고강도 훈련을 하다가 첫 번째 하이록스 대회에 파트너로 출전했었고,

이번엔 크로스핏 박스에서 스트렝스를 많이 다졌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록 예상하세요?" 내가 물었다.

"저는 그래도 1시간 10분 안에는 들어올 것 같아요." 파트너가 대답했다.

우린 작년 1시간 15분 14초라는 기록으로 완주했었고, 다음 대회 때 더 좋은 기록을 목표로 하긴 했었다.


이론상으론 훨씬 잘 준비된 팀이었고, 그래야만 하는 게 당연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불안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번이 작년만큼 훈련이 충분하지 않고 기록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특히 파트너는 운동량이 확실히 줄었고,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 작년에도 해봤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슬레드를 끌고 있는 그의 어깨를 보며
나는 그 예감이 슬레드 푸시 구간에서 현실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Chapter 3. 생각보다 더 큰 실수

끌리지 않을 것 같던 슬레드가 내 발 앞으로 다가왔고, 시작선을 넘어왔다.

나는 로프에서 손을 놓았고, 파트너와 함께 구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왼쪽 손목에 감겨있는 가민을 보며 심박수를 확인했다.

심박수는 176을 넘기고 있었다.

슬레드 풀을 빠져나가는 순간.

"어, 왜 한 번 더 왕복하셨어요?" 슬레드 풀 구간의

심판이(하이록스는 스테이션별로 선수들이 운동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다.)우리를 향해 말했다.

"예?"

머리가 순간 새하얘졌다.

방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금 한 번 더 하셨어요."

슬레드 풀/푸시 구간은 편도 12.5m 각 50m의 거리를 채우면 끝이 나는 구간이라 2번 왕복(총 4번)

하면 끝이다.

그런데 우리가 슬레드 풀을 총 5번 했고... 한 번 더 끌었다는 거다.

무게 102kg짜리 슬레드를, 이미 끝낸 줄 알았던 그 구간을, 한 번 더 끌었던 거다.

발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너무 힘들고 끝나지가 않더라니....

내 뒤를 따라오던 파트너가 잠깐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X 됐다.' 그 말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러닝존으로 다시 들어가 뛰기 시작했다.

머리는 복잡했다.

‘페이스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지?’
‘아, 이거 진짜 큰일인데…’

파트너는 숨이 거칠었고, 나도 슬레드 풀 구간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쓴 상태였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구간을 원래 규칙보다 더 많이 끌고 나왔으니,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두 번째 전광판이 보일 무렵, 내 이름과 파트너 이름을 찾기 시작했고 확인했다.


NEXT

Workout 4


다음 in 아크가 보이면 진입해서 4 번째 운동을 수행하러 스테이션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하이록스는 마라톤처럼 발목에 착용한 칩으로 실시간 경기 상황과 경기 종료 후 내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칩을 기준으로 전광판에 내 이름과 현재 수행 중인 운동, 다음에 해야 할 운동이 표시된다.

나는 파트너에게 말했다.


“다음 in 아크 보이면 바로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파트너가 되물었다.

“어… 우리 한 바퀴 더 뛰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 그런가?

작년에는 러닝을 3바퀴 다 돌고 나서 in 아크로 진입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규칙이 바뀌었다.
3번째 in 아크를 보는 시점에 바로 진입해야 했다.

나는 확신이 없었고, 파트너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그 아크를 지나쳤다. 그렇게, 한 바퀴를 더 뛰게 됐다.

파트너가 옆에서 말했다.

“그냥 뛰죠… 페널티 받는 것보다 낫겠죠.”

하이록스에서는 러닝 거리를 채우지 않고 스테이션에 진입하면 5분의 페널티가 부과된다.

그건, 우리처럼 시간 단축을 노리는 팀에겐 치명적이다.


세 번째 전광판이 보였을 때,
나는 아까 봤던 상황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제야, 우리가 실수했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


아... 망했다.




Chapter 4.

HYROX. 러닝도, 근력도, 멘탈도

함께 버텨야 하는 경기


나는 원래 러닝을 좋아했다. 마라톤에 도전했었고,

2023년 춘천마라톤에서 첫 42.195km를 3시간 59분으로 완주했었다.

그 이후에도 2024 JTBC 마라톤(04:25:19)

2025 동아 서울마라톤.(03:53:51)

1년에 한 번 정도는 42.195km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있다.

고통을 참아가며 심장을 몰아붙이는 카디오 운동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 F45에 빠졌고 1년여간을 그렇게 카디오 기반의 운동을 주로 했었다.

하지만 러닝과 F45 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꾸준히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힘도 있고, 빠르게 달릴 수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 알게 된 게 하이록스였다.

나의 첫 풀코스 마라톤 2023 춘천마라톤


하이록스는 독일에서 시작된 실내 피트니스 레이스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경기다. 구성은 간단하다.

오픈(일반)과 프로의 단계가 있는데 남성 기준으로


1. 월볼의 무게(오픈 6kg / 프로 9kg)

2. 슬레드 풀(오픈 102kg / 프로 155kg)

3. 슬레드 푸시(오픈 155kg / 프로 202kg)

4. 파머스캐리-케틀벨 무게(오픈 48kg / 프로 64kg) 이렇게 다르다.


혼자 나가도 되고 우리처럼 파트너를 정해 2명이서 함께 출전하거나 4명의 인원으로 릴레이팀을 구성해서 나가고, 남/여 혼성팀으로도 출전이 가능하다.


남/여 혼성팀은 무게 구분 없이 남자의 일반 규칙으로 (월볼,슬레드,파머스캐리) 운동을 수행해내야 한다.

출처 : HYROX 공식 홈페이지

1km 러닝 + 1개의 스테이션, 총 8회 반복. 이 건 남자나 여자나 동일하다.

수행해야 되는 운동은 다음과 같다.:

1km 러닝

스키에르그 1,000m

1km 러닝

슬레드 푸시 50m

1km 러닝

슬레드 풀 50m

1km 러닝

버피 브로드 점프 80m

1km 러닝

로잉 1,000m

1km 러닝

파머스 캐리 200m

1km 러닝

샌드백 런지 100m

1km 러닝

월볼샷 100개


러닝, 근력, 멘탈.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한 종목.
그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기록은 무의미해진다.

나는 이 운동에 빠르게 빠져들었고, 마라톤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당시 하이록스 전문 센터 에서 거의 매일 이 종목만 집중해서 훈련했다.

그때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된 사람이 있었다. 운동 시간이 항상 같았고, 수행 능력도 비슷했다.
같이 운동하며 기록도, 전략도, 루틴도 나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이록스에 함께 나갔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2024 하이록스 인천. 파트너와의 첫 출전.

2024 하이록스 인천.

파트너와의 첫 출전이었다.

그 결과는 엄청나게 잘한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첫 대회를 무사히 마무리한 정도.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난 뒤 나와 파트너는 계속 생각했다.

“다음엔 조금 더 나은 기록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2025년 한국에서는 세 번째,

우리에게는 두 번째 하이록스를 준비하게 됐다.


그리고, 대회 당일이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예상 밖의 모든 변수에 부딪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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