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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Feb 26. 2019

남의집살이-1

이십구달팽이


"집이 있는 애들은 모른다.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열 살짜리 주인공 '지소'는 집 없이 조그마한 봉고차에 산다. 엄마와 그리고 지소보다 더 어린 동생과 셋이서. 아빠는 사업 실패(피자가게)로 집을 잃음과 동시에 가족을 떠나버렸다. 그를 기다리는 엄마는 피자 배달하던 봉고차에서 지소와 동생을 키운다. 그 생활을 못 견딘 지소는 개를 훔쳐 오백만 원-오백만 원이면 집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을 구하려 했지만 자발적으로 실패한다. 영화는 영상미가 아기자기하고 어린 화자가 바라보는 시각을 순수하게 풀어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와 현실을 투영하면 아주, 굉장히 슬픈 얘기다. 집도 없이 떠도는 열 살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렸을까.      


영화 속 지소보다 스무 살쯤 많은 내가 겪기에도 암담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지소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겪어보니 치가 떨렸다. 올 초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나는 서울 전역을 누비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영하의 추위에 손발이 꽁꽁 얼어버린 날, 문득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푸른 하늘보단 높게 솟아오른 아파트들이 먼저 보였다. 내쉰 한숨은 몽글몽글한 입김이 되어 내 눈앞에서 천천히 사라져 갔다. 문득 아는 동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누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이 9평이래요.” 당시 나는 대답을 속엣말로 했었다. ‘나는 5평짜리 산다 인마.’     


서울생활에서 늘 해법 없는 문제가 ‘집’이었다. 나는 상경한 이후부터는 줄곧 ‘남’의 집에 살았다. 대학생 땐 학교 기숙사에서, 졸업 후엔 월세, 월세, 월세. 그리고 취업 후엔 잔뜩 대출을 받아 첫 전셋집을 구했다. 서울 외곽 지역의 5천만 원짜리 원룸. 오롯이 내 힘으로 구한 첫 집-아니 방-이었다. 고작 5평짜리 원룸이었지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짜 어른이라도 된 양 한동안 들떠 방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큰 창밖을 내다보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좁은 천장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5평짜리가 5천만 원이니까, 평당 천만 원이면... 천만 원짜리 침대에 누워 자고, 천만 원짜리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있는 건가.’ 나는 그렇게 완벽한 달팽이가 되었다.      


남의 집 살이는 매번 힘들었다. 이전으로 돌아가서-월세를 살 때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특히 여자 혼자, 혹은 둘이 산다는 건 반쯤 목숨을 내놓고 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치안을 고려해 집을 골랐으나, 20대 초중반의 선택은 참 미숙했다. 개차반인 집주인을 만나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배비 등을 물어주기도 했고, 돈 아끼려다가 벌레가 들끓는 원룸에서 존재감 제대로인 이름 하여 ‘미쿡 바퀴벌레’를 만나 새벽 내내 울기도 했다. 어째, 고난과 역경을 겪다 보면 굳센 캔디처럼 성격도 변할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아주 다채로운 고난을 자주 마주치다 보면 ‘아, 오늘은 또 어떤 X 같은 일이 벌어질까 기대되네.’가 될 줄 알았는데, 그저 겁이 더 많아지고 위축됐다. 쉽게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그러다 첫 전세를 구하며 용기를 얻었다. 좁지만 꽤 안전하고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정부의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했기 때문에 금리 부담도 크지 않았다. 나름 목표도 있었고, 꽤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팔팔한 청춘도 자주 내세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20대에 이 정도 고생은 기본이지” 꼰대 소리 듣는 부장들이 할 법한 멘트를 내가 직접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적당한 가격의 집을 골라 대출을 받고, 수십 년씩 대출금을 갚아나간다면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건 또 얼마나 피로하겠는가. 나는 슬슬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매캐한 미세먼지로 희뿌연 시야 속 듬성듬성 보이는 커다란 아파트들이 미쿡 바퀴벌레마냥 느껴졌다.      


처음으로 구한 전셋집의 계약도 끝나갔다. 연장하기엔 너무 좁은 집이었다. 그동안 ‘고생의 당위성’으로 내세웠던 이십 대도 끝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또 이사를 결심했다. 아파트는 빠르게 포기했지만, 원룸 빌라는 싫었다. 어떻게든 한 단계는 올라가고 싶었다. 결국 오피스텔을 알아봤다. 대신 대출금도 훨씬 많이 올려야 했다. 아는 동생의 말대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을 구하기 위해서는 ‘억(億)’필요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점심시간, 퇴근 이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게 쪼갰다. 새롭게 등에 이고 갈 집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난 9평이 채 안 되는, 9평과 근접한 크기의 오피스텔 전셋집을 구했다.      


행복한 결말이 바로 나온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다. 우리 학창 시절에 큰 임팩트를 남긴 소설 <운수 좋은 날> 김첨지의 마지막 절규가 떠오른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억울하게도 난 딱히 운수가 좋지도 않았다. 이제 겨우 다음에 살 집을 구했을 뿐인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 이십구달팽이의 한마디. 집 구할때 '빚'걱정 보다 '빛'걱정 먼저!

작은 원룸은 채광이 가장 중요하다. 가뜩이나 작은 방에 빛이 제대로 들지 않으면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곰팡이가 쉽게 피며, 벌레도 잘 생긴다. 창문의 크기나 방향을 잘 살피고 벽지를 만져 축축한지 확인해야 한다. '이 집이다!' 싶으면 계약하기 전에 한 번 더 가보는게 좋다. 방을 낮게 봤으면 밤에 다시 가보고, 밤에 봤으면 해가 떠 있을때 다시 가봐야 한다. 낮에 갔을 경우엔 방의 불을 다 꺼보면 얼마나 빛이 드는지 알 수 있다. 빛이 안 들면 무엇보다 우울해진다. 필자는 원룸을 구해 입주할 때만 해도 빚(대출) 이자 걱정이 더 컸는데 방이 너무 어두워서 계약 기간 끝나자마자 대출 더 받아서 빛 드는 곳으로 갔다. 명심하시라. 빛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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