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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에게 명절이란?

이건 반가운 것도,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니여

by 삼십대 제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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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민족 대명절 추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절 고유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도 않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마트나 시장이 붐비고 신권을 찾으러 은행을 다니는 이도 더러 눈에 띈다.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자동차 정비를 맡기고, 찾아올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장을 본다. 명절 선물을 주고받느라 택배 물량이 늘고, 기차표와 버스표 등등 대중교통편은 벌써 매진이다. 명절은 명절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명절을 어떻게 보냈더라?


회사를 다닐 땐 명절이 마냥 휴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명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을 몰아서 해치워야 했고, 양가에 선물이나 용돈을 준비하고 집을 오가야 했다. 어쩔 땐 그게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명절 연휴에 집에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매 끼니 배달을 시켜 먹거나 사 먹고 누워서 탱자탱자 놀다가 자다가 하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족들을 만나면 즐거웠다. 일을 할 때는 여기저기서 명절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그걸 양가에 나눠드리곤 했는데, 값비싼 선물은 아니어도 선물을 뜯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다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명절 기분이 났다. 우리는 친척들끼리 왕래가 적은 편이지만, 가끔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는 되었다. 그럼 근황토크도 하고 덕담도 주고받았다.


여기까지가 직장인의 명절이었다. 상당히 피곤하지만, 뭐 하나 거리낌 없는 명절. 내 이름으로 명절 선물이 오고, 내가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리고, 시간을 쪼개어 조금의 휴식을 즐기는 그런 명절이었다.


그리고 백수로서는 첫 명절을 맞는다. 확실히 다르다. 명절이 다가와도 내게 집주소를 묻는 이가 없고, 명절마다 양가에 보내던 선물이나 용돈도 은근슬쩍 건너뛰었다.


혹시 친척이나 지인들을 만났을 때,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갈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회사를 그만둔 것을 말할 것이냐, 말 것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다음의 질문도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꽤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다. 조카가 없어서 용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양가 부모님께는 용돈을 대신할 여러 이벤트들이 있고, 연휴가 길어서 남편과도 따로 쉴 시간이 있다는 점 등등.


무엇보다 백수라서 피곤하지 않다는 점. 하하. 운전면허도 딴 김에 이번 귀성길에는 나도 절반은 운전대를 잡아보기로 했다. 원래 백수는 몸으로 때우는 법!


이번 명절엔 좀 더 색다른 감정들을 느낄 것 같다. 그게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내 마음의 송편을 잘 빚어볼 생각이다. 깨든 콩이든 속재료를 꽉 채워서 정성껏 빚어야지. 그리고 보름달이 뜨면 빌어야지.


"제 소원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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