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고요?
산부인과에서 산전검사를 받으러 갔던 날이다. 질초음파를 보기 전 의사는 내게 검사 목적을 물었다.
-나이가 좀 있으시네요.
-네.
-임신 준비를 하다가 잘 안 되셨어요?
-아니요. 그동안 피임을 했어요.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당장 준비하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요. 지금 임신이 가능한 상태인지는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나이 들수록 자연 임신이 힘들어요. 생각 있으면 빨리 하는 게 낫지. 일단 보자고요.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 하면, 지금처럼 남편과 둘이서 살면 되니까. 그건 남편도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오히려 좋아. 우리는 딱 그정도의 마음이었다.
질초음파가 시작되고 자궁을 먼저 봤다. 문제 없어요. 그리고 난소를 보는 순간, 의사가 탄식을 했다.
"어휴, 왼쪽 난소는 다낭성이네요. 아이고, 오른쪽은 더 심하네."
다낭성이 뭐지?
주위에서 흘려 들은 적은 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큰 병인가 싶어서 복잡한 심경으로 진료대에서 내려왔다. 이건 또 무슨 새로운 난관인 것인가!
다낭성난소증후군(PCOS);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의 호르몬 이상으로 난소의 남성 호르몬 분비가 증가해 배란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월경 불순, 다모증, 비만, 불임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대사 증후군과 연관되는 질환을 의미한다. 이 질환에는 인슐린 저항성 또는 고인슐린혈증이 동반될 수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한 마디로 호르몬 이상이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이를 방치할 경우, 심하면 신체적으로 남성적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체형이 남자처럼 변하고 턱수염이 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고.
-최근에 살이 많이 쪘어요?
-네. 10kg 넘게 쪘어요.
-살이 갑자기 많이 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낭성난소증후군 때문에 살이 많이 쪘을 수도 있어요. 사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거지.
당시 나의 몸은 거의 굴러가기 직전이었다. 살이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었고, 특히 붓기가 너무 심해서 손가락부터 눈까지 퉁퉁 부었다. 퇴사 후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식단을 조절해도 몸은 계속 불어나기만 했다. 피부 좋다는 칭찬이 뚝 끊긴지도 오래였다. 특히 턱 위주로 여드름이 그득했다.
이 모든 증상의 원인(어쩌면 결과일 수도 있고)을 그제야 알게된 것이다.
-근데 선생님, 저는 생리를 매달 했거든요.
-무배란 월경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배란이 안 되는데 월경을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아마 피임을 안 했어도 임신이 안 됐을거에요.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다낭성난소증후군 치료법보다는 임신 확률을 높이는 방법만 설명해주었다.
-생리 이틀차에 다시 내원하면 배란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거든요? 배란이 안 되는 게 확인되면 배란 유도제를 맞으면 돼요. 병원에서 배란일을 알려주면 그날 맞춰서 관계를 해 보고, 몇 번 해봤는데 안 되면 빨리 시험관 준비하는 게 낫고요.
-그런거 말고 치료법은 따로 없나요?
-생리 불순이면 피임약 먹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면 체중 감량하고 운동하고 식습관 개선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질병은 질병인데, 치료제랄 것이 없는 거였다.
의사는 계속해서 임신 방법을 알려주며 배란 검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임신보다는 당장 내 몸이 중요했다. 내가 아프다는데 임신은 무슨 임신.
집에 돌아가서 다낭성난소증후군에 대해 검색했다. 가장 중요한 게 체중 감량이었다. 조금만 감량해도 상태가 많이 나아진다고 했다. 나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아주 오랜만에) 몸무게를 재고 운동을 시작했다.
또다시 임신은 뒷전으로 미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