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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13. 2024

학교 앞 라면박스 속 강아지와 아이들

엄마. 나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안 돼?


우리 아이들 하루 속에는

시골 아이들답게

언제나 동물들과 곤충들 이야기가 빼곡했다.


언젠가는 학교 근처에 사는 누군가가

라면박스 속에다 이삼 개월쯤 자란

강아지 7마리를 담아서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추어

몰래 가져다 두었다.


아마도 추측건대

강아지들 원래 주인은

강아지들의 엄마 개 반복되는 다산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서

아. 강아지들을 ㅇㅇ초 정문에 가져다 놓으면

강아지 키우고 싶은 학교 아이들이

데려다 키우겠지 생각한 모양이었다.


강아지 입장에서 보면 냉정한 생각이지만

개 주인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세상에나.

초등학교 정문 앞 무료분양 강아지 상자라니!

와. 이거.

애들 심리 이용한 낚시질이 아주 지대론데?



개주인 소망대로

그날 하굣길 학교 정문 귀퉁이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무료 분양 강아지 상자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한푼 없는 어린 고객들은

무료 분양(공개 강제 입양) 차례를 기다리는

강아지 앞에서 한껏 신이 나서 두눈을 반짝였다.


보통 그 또래 아이들은

자기 집에서 강아지 한마리

우고 싶다고 365일 노래를 한다.

반복적으로 튀어 오르는 고장 난 LP판처럼

그 노래는 반복적이며 집요하다.


그런 아이들 앞에

누구나 가져가서 키워도 된다며

보란 듯 내놓아진

아기자기 올망 졸망한 강아지들이라니!

착한 시골 아이들 마음이 얼마나 들썩였겠는가.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강아지를 보겠다고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서로 머리통들을 들이밀고

너도나도 한 번씩 안아보고는 말했다.

아. 귀여워! 나 얘 진짜 키우고 싶다.


그리고는

저학년 고학년 할 것 없이,

집에 이미 개 한 마리 키우거나

안 키우거나 구분할 것도 없이,

학교 콜렉트 콜 전화기를 들어

집으로 전화해서는 모두 업된 텐션으로 물었다.



엄마! 엄마!!

우리 학교 운동장에

누가 강아지들을 가져다 놨어!

그냥 데려다 키워도 된대.

나 한 마리만 데꼬 가면 안돼?


이미 개를 키우고 있거나 아니거나

벌써부터 옆집, 앞집, 건넛집 엄마 카톡으로

학교 상황수다로 나눈 엄마들 대답은

속사포처럼 즉각적인 철통 방어태세로 시작했다.


안돼. 안돼! 안된다고! 돼애!

엄마는 너 키우는 것도 힘들거든!

엄마아. 제바아아

아안돼애.

엄마아아아. 진짜 부탁이야아아

안된다 했다아아.


 주인은 애초에

학교 정문 앞에 강아지  상자를

내려놓은 그 순간에

이미 이런 그림을 머리속에 그리며

음흉하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간절함과

엄마의 즉각적인 반대 대결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간절함이 이겨

강아지 몇 놈쯤은 무난하게 누군가의 집으로

가겠지 생각했을 거다.


당연히 우리 첫째극도로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엄마!

우리 학교 운동장에

누가 라면 박스 안에 강아지를 가져다 놨는데

선생님들이 아시면 얘네를

다른 데다 가져다줘버리시잖아!


그래서 애들이

선생님들이 강아지 보기 전에

할아버지 팽나무 뒤에다가

강아지 박스를 얼른 숨겨 놨어.

애들이 한 마리씩 다 집에 데꼬 가고 싶어 한다!


엄마가

나.. 도오

(1/10000초 컷!)

안돼!

엄..

(1/10000000000초 컷)

안돼!!

우리 릴리는 어쩌고!

그래도오..

(1/10000000000000초 컷)

안돼. 안돼. 안돼. 안돼!!안된다고.

안된다고 했냐 안 했냐.


결국 아이들은 선생님들 모르게

집에 마당이 있는 아이들이

각자 한 마리씩 일곱 마리 모두

집으로 농장으로 데리고 갔다.


개주인은 학교 담벼락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학교 정문 앞에서 벌어지는

이 요란한 장면을 숨죽이고 염탐했을게 뻔했다.

본인 그림대로 척척 돌아가는 상황에

드디어 강아지 분양 문제를 해결했구나. 싶어서

속이 시원했을 거다.



학교 가까이 귤 과수원을 하는 희서도.

농장을 하는 태주도.

버섯 농장을 하는 광진이도. 세현이도.

저학년 동생들도 데리고 가서 잘 키웠다.


 일이 있은 후 한참 지나

세현이 집  앞을 지나가는데

마당에서 노는 큰 개를 보더니

그때 세현이가 데리고  강아지가

저리 많이 컸다고

첫째가 좋아했다.


그 강아지들은 각자 좋은 주인을 만나

널찍한 마당 딸린 집들과 농장과 목장으로

분양되어행복하게 자알 살았다.


대운을 맞으면 팔자가 핀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강아지 형제들이니

얘네는 필시 같은 사주팔자로 태어나

그 해에 대운을 맞은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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