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안 Nov 11. 2024

고구마 푸댓자루 파헤친 놈. 앞으로 나와!

아이들 학교 텃밭은

온갖 종류의 야채가 자랐다.


교장샘은 시간 날 때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서

학교 텃밭에 심은 야채들을 돌보셨다.

그분은 학교 텃밭 가꾸기에 진심이셨다.

때가 되면 물을 주고

때가 되면 거름을 주셨다.

모르는 이들은 그분을 학교 일 봐주시는

동네 아저씨로 착각할 때가 많았다.


교장샘은 여름철엔 학교 텃밭에

사탕수수를 손수 길러서

사탕수수대를 잣대크기로 잘라

전교생 (그래봤자 많지도 않은 인원수지만!)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서 집으로 보내셨다.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그 수수대를 내밀며 교장샘 메시지를 전했다.

학부모님들 사탕수수대 드시면서

아이들과 추억에 젖어보시라.

교장 샘께서 보내주신 사탕수수대를

잘근잘근 씹어 달꼼 한 즙을 삼키는 호사를 누리며

그분의 다정함 미소가 지어졌다.



교장 샘은 학교 텃밭에 고구마도 키웠다.

늦가을 고구마를 수확하면

모닥불을 피워 아이들 얼굴에 숯검댕이를 묻히며 아이들에게 군고구마를 구워 먹이겠노라.

생각하셨다.


텃밭엔 온갖 야채가 풍성했고

이제 점점 야채 심을 공간이 부족해졌다.

교장 샘은 푸대자루에다가 흙을 담고

고구마 줄기를 심어 유치원 옆 귀퉁이에 놓고 매일 들여다보며 정성껏 키우셨다.


주말을 보내고 평화롭던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텃밭을 한 바퀴 휘이 둘러보시는 교장샘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 푸대자루에 담겨

여물어 가고 있던 고구마를

누군가가 와서 멧돼지마냥 몽땅 파헤친 것이다.


멀쩡하게 주말 잘 보내고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텃밭을 돌아보신 장 샘 눈에

그 파헤쳐진 고구마 푸대자루

어찌 보였겠는가?



평소 화내시모습이라곤 보기 드문 교장 샘은

그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혈압이 급 상승했다.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하는 고구마였다.

그런 고구마를 산 짐승마냥 파헤쳐 놓다니!


월요일 애국 조회 때 마이크에다 대고

유치원 귀탱이에서 키우는

고구마 포대자루를 누가 파헤쳐 놨다고

전교생에게 일장 연설을 하신 모양이었다.


누군가 고구마를 파헤쳐 놨다는 교장샘의 연설에

그 얘길 듣고 있던 전교생이 놀라서 술렁거렸다.

뭐야! 뭐야.

누가 범인이다냐.

너 혹시 알아?

아니? 나도 잘 몰라.


고구마 범인들은 당시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요즘 세상이 좋아진것이

학교 구석구석마다

씨씨티브이가 설치되어있었다.

고구마 푸대자루를 비추는 각도에도

선명하게 작동하는 씨씨티브이가 있었다.

고구마 범인들에게는 불행이었다.


고구마를 도둑맞은 교장 샘뿐만 아니라

다른 샘들도 가만히 계실 분들이 아니었다.

급 혈압이 오르신 교장샘.

공포의 카리스마 최샘.

다른 들도

각자 반으로 가서 진상파악에 들어갔고

한쪽에선 학교 곳곳에 포진되어 작동하는

씨씨티비를 되돌려보기 시작했다.



의심의 레이다 망은

파헤쳐진 푸대자루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교실에서 살고 있는

철부지 일. 학. 년에 집중되었다.

범인이 셋인데 그중 일 학년에

한 명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불행하게도

이 고구마 파헤친 사건과 무관했던 오 모군은 하필이면

고구마가 파헤쳐지기 직

그 고구마 푸대자루  바로 옆에 있는 나무 밑에서

친구들 두 명 하고

사슴벌레 애벌레를 잡는다고

흙을 파헤쳐 놓은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그 상황을 본

목격자가 여럿 있었으니

오 모군이 고구마 범인으로 의심받을 만도 다.

게다가 일 학년 중에

범인이 한 명 있다지 않은가?


쟤네가 고구마 푸댓자루 옆에서 흙 파는 거 봤어!

목격자들은 즉각적으로

자기가 본바대로 생생한 증언을 쏟아냈다.

우리는 고구마 손 안 댔어.

그냥 사슴벌레만 잡고 있었다고오!

고구마 범인 아니라니까아

아니ㄹ...진짜 아니야아


곤충 탐험가 오 모군 삼인방은 화들짝 놀라서 반박하며 자기들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마침내 억울해서 훌쩍훌쩍 울기시작했다.


우리는 고구마 모른다고오.

벌레만 잡았다고오.

에에애에에엥.


상황이 이쯤 되니

씨씨티비 조사 중 슬슬 범인 윤곽이 드러나

고구마 범인을 확실히 알게 된

일 학년 오 모군 담임샘은

이 불행한 탐험꾼들을 보호하느라

 아이들을 모아놓고

오모군.ㅇ모군.ㅇ모군은

고구마 범인이 절대 아니라고 하신 모양이었.

어찌나 자상하신가 보라!



대한민국은 시골 곳곳에도 씨씨티비가 진 치고 있는 세상이었다. 고구마 범인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고 들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자마자 냉큼 밝혀졌다.

교장샘은 이제 괘씸한 고구마 범인들이 밝혀졌으니

그냥 주의 한번 주시고 넘어가실 모양이었다.


그러나.

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한분 계셨다.

평소에도 전교생들이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떠는 존재,

소리만 들려도 아이들이 딱 얼어붙는 존재.

카리스마 최! 쌤이었.


아이들 기강확립을 위해 애쓰시는 그가

고구마 범인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고구마 범인이 속한 학년 앞에 다가가

교실 문을 확 열고서 그 범인을 불렀다.

고구마 범인 삼총사 중 일빠로.

ㅇ학년 홍ㅇㅇ. 앞으로 나와!


카리스마 최쌤은 홍모 군 프라이버시를 위해

전교생  아이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운동장 구석  할아버지 팽나무 밑으로 데리고 가서

조근조근 자근 자근 죄를 추궁하셨다.


운동장 구석에 육 백 년 동안 서있는

할아버지 팽나무 위치는

본건물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과

거리상으로는 제일 먼 곳이기는 하나

교실 유리창문 밖으로 내다보면

한눈에 제일 잘 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샘이 누군가를 팽나무 밑으로 불렀다는 것은

금세 소문이 날 일이고

전교생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어서

최쌤이 팽나무 밑에서 고구마 범인을 취조할 때

전교생 시선은 일제히 팽나무를 향해

 창문밖 운동장을 내다봤다.


고구마 범인이 누구인지 설왕설래하던 중에

카리스마 최쌤이

목소리를 쫙 깔고서

ㅇㅇ 앞으로 나와! 하니

눈치 빠른 고학년 아이들은 소리 없이 씩 웃었다.

아~ ㅇㅇ이가 범인이구나.^^


 뒤로 팽나무 밑으로 차례로 불려 가는

나머지 두 명의 고구마 범인들은

자기들 인생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최쌤 뒤를 삐적삐적 따라갔다.

그중엔 진짜 일 학년 ㅇㅇ이도 있었다.


고구마 범인들은 고구마 옆에서 놀다가

푸댓자루에 고구마가 자라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두둑한 푸댓자루에 뭐가 들었능가 싶어

두꺼운 막대기로 자루를 크게 뻥뻥 구녕을 내며

이리저리 흙을 파헤친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막 여물기 시작한 얇은 고구마들이

푸대자루 밖으로 튕겨 나온 것이다.


고구마 범인 셋이 드디어 밝혀졌어도

착한 시골 아이들은

네가 고구마 파헤쳤지? 하지 않았다.

고구마 범인들 셋

카리스마 최쌤한테 불려 갔다 왔어도

그냥 모른 척 안 본 척 눈감아 다.




하필이면 그날.

문제의 그 고구마 푸대자루 옆에서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사슴 애벌레 잡는다고 땅을 파헤친

오 모군 삼인방만 하마터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할 뻔했다.


고구마 범인을 찾아내느라

쌤들은 모니터 앞에서 우르르 머리를 들이밀어 씨씨티브이를 들여다보다가

범인을 찾아낼 때까지

앞으로 뒤로 1분 1초 끊어가며 영상을 돌렸다.

잠깐! 거기!

찾았다!

햐아! 놈들 봐라아?!

했을 상황을 상상하니 웃음이 다.


아슬아슬 고구마 범인들로 몰릴뻔한

죄 없는 곤충 탐험가 오 모군 삼인방 처지도

상상해 보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날 학교 아이들과 쌤들 상황을 상상하는

상상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전 05화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오솔길 하나를 가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