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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01. 2024

뛟! 지네에 물렸어! 이제 난 죽을 거야.

비 내린 후의 마당은 다시 잡초세상이다.

이쪽에 토끼풀 더미를 처단해 놓고

흡족하여 돌아보면

어느새 멀쩡했던 곳이 쑥천지가 되어 있.

젠장.

다시 호미를 들고 장갑을 낀다.


장갑에 낀 흙을 탈탈 털고

다섯 손가락을 쫘악펴서 쑥 집어넣었는데

집게손가락 들어갈 끝이

물컹하니 예사롭지 않다.


헉!


장갑을 황급히 벗고

미친 듯이 탈탈 데크 바닥에 내리친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착 껴야 할 장갑 끝에서

검푸르 딩딩한 지네 한 마리가

! 떨어진다.


어어어억!


순간

내 오른발 뒤꿈치 쪽 아킬레스건에서부터

소름이 쫘악 올라오더니

대퇴부를지나 등짝을 지나

나의 머리 정수리까지

순간 약 1/1000000초 사이에 도달한다.


상상해 보라.


지네!

그냥 지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길이로 치자면 약 15센티에

폭이 약 1센티 왕! 지네인 것이다.


온몸에 좌악 퍼지는 소름을 겸허히 수습하고

다시 호미를 잡고 앉아

죄 없는 쑥덤불 머리끄뎅이를 움켜잡고서

퍽. 퍽. 내리치고 뽑아 올린다.


젠장맞을 지네!


내가 이곳에 와서

모든 생명을 다 사랑할지라도

딱 용서 안 되는 생명이 셋 있는데

지네. 뱀. 쥐. 그것들이다.

훠미이이. 어찌나 혐오스러운지!


그러나 이곳은 돌들이 많은 지역인지라

특히

지네. 뱀. 얘네는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같이 공생해야 할 운명적인 생명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예로부터 이 지역사람들은

살아있는 저 대왕지네를 딱 잡은 다음,

손으로 지네 수억 개의 다리를

좍 좍 훑어 떼어낸 후에

잘 말려서 한약방에 갖다 팔았단다.


그것이 소소한 돈벌이라 했으니

뒤늦게 제주 입성한 나로서는

이건 필시 얘네랑 함께 살아야 할

내 운명인갑다아. 생각하고 그냥 사는 중이다.


어쨌든

호미를 들고 죄 없는 쑥덤불 머리 끄뎅이를 잡고

지네 때문에 놀란 마음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딱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그때가 아마

우리가 제주생활을 시작했던 그다음해지 싶다.

제주는 장마철이 되면 꿉꿉하니

옷, 이불 모든 게 물텀벙이 된다.

사실

이곳 장마철 체감 습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네들이 환장하게 좋아하는 시기가 딱 이때다.


이때 얘네는

집안 구석몰래 숨어든다.

빨래하려고 모아둔 옷가지 속에도 숨어있다가

순진하게도 그것을 알 리 없는 내가

두 손을 옷가지 속으로

! 집어넣고 슉! 들어 올리는 순간

오른손을 인정사정없이 물었다.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서

들어 올리던 옷가지를 팽개치고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내 오른손을 들여다보니

지네란 놈은

엄지와 검지가 갈리는 옴폭 들어간 사이에다가 

무시무시한 두 이빨을 쑤셔 박았다.

내가 화들짝 놀라 털어내자

화장실 쪽으로 s자 곡선을 그리면서

SSSSSSSS 이렇게 흔들며 사라졌다.


끄어어어


그렇게 큰 지네를 본 적도 없었거니와

그런 지네에게 물려본 적도 없었던 나는

순간

전래동화 속 주인공이 큰 지네에게 물려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

내가 지네에게 물려서 이제 죽게 생겼는갑다.

생각에 미치자

나는 너무 무서워 호들갑을 떨며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데시벨 발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여보!! 여보!!

이리 와봐.

빨리! 빨리!

나 왕 지네에 물렸어!

난 이제 죽을 거야.

흐에에애에에애엥.


비명소리와 울음소리에

자다가 놀라서 남편은

빤스바람에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나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사실.

남편 생각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아

지네 물리면 당장 그 자리에서

꽥!

눈깔을 뒤집고

입에 허연 거품을 바글바글 뿜어내면서

죽는 줄 알았다.


어쩌다가 물렸냐

아 C!

어떡하지?

그래! 119!

119를 불러야 하나?

내가 입으로 독을 뽑아내보까?


마누라가 지네에 물려 즉사할까 두려웠던 남편은

셔츠 한쪽 팔을 걸친 듯 만 듯

옷을 대충 꿰 입으면서

황망히 달려

건너 건넛집에 사시던

장작 할아버지네로 로케트처럼 날아갔다.


어르신!! 어르신!!!

우리 애엄마가 지네에 물렸어요.

어쩌죠?

119 불러서 응급실로 가야겠죠?


근데

장작할아버지는

박한 남편님과는 달리

아조오 여유롭게

아이고오. 지네 물렸구나?

지네 물린데다가 닭기름 있으면 바르고

닭기름 없으면 오줌이나 바르게 해!

하면서 웃으셨다.

장작 할아버지가 웃었다.

분명 웃었다.


장작 할아버지가

내가 지네에 물렸다는 말을 듣고도 웃었다는 말은 내가 즉사하진 않을 거란 얘기와 동의어였다.

남편은 안심을 함과 동시에

오줌이나 바르라는 상상도 못 한 처방법에

한번 더 놀랐다.


에에에에?

오줌이요오오?

오줌이라고라고라고라고라!


지네 독이 퍼져서

당장 자리에서 즉사할지언정

내 손에 오줌을 바를 마음 준비가 안 된 나는,

언젠가 동네 친구가 말했던

벌레 물린 데는

안. 티. 푸. 라. 민! 이 젤 좋더라. 는 말을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며 떠올렸다.


가만있어보자.

저번에 ㅇㅇ이가 벌레 물린덴 뭐가 직빵 이랬는데. 아. 그게 뭐였더라.

안.. 뭐였는데.. 안..

아! 그래!

안티푸라민! 안티푸라민!


내 손을 물어놓고

화장실 어딘가로 토낀 지네는

크기만큼이나 대왕지네답게

그 독이 얼마나 강했던지

물린 자국에서부터 온몸으로

독이 쫘아아 퍼지는 게 느껴졌다.

진짜다.

진짜로 그랬다.


물린 지점에서 손등을 타고 팔뚝을 지나

겨드랑이 쪽으로 혈관을 타고

독이 쎄에에에에에에에에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인체해부학적으로다가

실시간으로 뇌까지 전달됐다.


손은 마치 벌에 쏘인 양

붉고 땡땡하게 부풀어 오르고

손등에 지네 독이 꽉 차 있는 듯

돌뎅이처럼 묵직했다.


나는 지네 때문에 이대로 죽을 순 없어서

땡땡 부어오른 손에다가

만병통치약 안티푸라민

냅다 쎄리, 치덕치덕 발랐다.


그리고

나는 안 죽었다.


지네도 여즉 살아서

수억 개의 발이 땅을 밟아대는 대로

여전히 뽈뽈뽈뽈 돌아댕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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