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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04. 2024

선생님! 아이가 독초를 깨물었어요!

시골에서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공부는 그것이어야 했다.

천남성이라는 식물이 있다.

잎사귀가 넓적하고 꽃은 백합꽃처럼

대가 길쭉하니 올라온 뒤

자그맣게 오므린 아이 주먹같다.


제주로 이사온 다음 해.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 마당을 둘러보시다가

소나무 밑에 자생하는 이 식물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너. 이게 뭔 줄 아니?

이건 천남성이라는 식물이란다.

독성이 있어서 조심해야 해.

옛날에는 둥그런 뿌리를 잘 달여 먹으면

 걸린 데에 좋다고는 하더라만

아이들이 어리니 항상 조심해라.

아. 그런 식물이 있구나. 하며 나는 그저 무심했다.



그때는 둘째 녀석 건강이 안 좋을 때여서

이제 겨우 삐쩍 삐쩍 걷는 아기를 데리고

나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느린 산책을 했다.


둘이 천천히 걷다가 꽃들을 보고

질척이는 진흙 위를 밟고 지나간

노루 발자국도 찾아내면서

우리는 거의 매일 나절씩 숲길을 걸었다.


우리가 주로 걷던 숲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까 말까 하는 좁은 임업도로로

한라산 깊은 숲 속에 가로로 길게 나 있는

아주 외딴 이름 없는 숲길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숲.

때론 노루가 숲길 걷던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며 서서 구경하던 그 길에서

일이 벌어졌다.



매일 다니는 길에 흥미가 떨어졌던 난

두 살 난 아기 손을 잡고

길에서 갈라져

버섯 키우는 터를 향한 샛길로 접어 들었다.


삼나무 나무들 밑에 좌우로 졸졸 히 세워둔

버섯나무둥치를 지나 걸을 때쯤

문제의 그 열매를 보게 되었다.


그 열매는 내 주먹만 한 크기로

짝달 만한 옥수수처럼 생겼는데

빨갛게 익은 열매가 어찌나 이쁘던지

길을 걷다가 풀덤불로 들어가 그 열매를 따서는

둘째 손에 쥐어 주었다.


ㅇㅇ아. 이것 봐. 이쁘다.

꼭 옥수수 같다. 그렇지?

근데 입에 넣어서는 안 돼. 독초일지도 몰라.


둘째는 그걸 손에 쥐고 나를 따라 종종거리며

따라 걸었다.

갑자기 잘 걷던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기시작했다.

순간, 나는 얘가 벌에 쏘였나? 하는 생각을 했으나 녀석을 살펴보니 애기 손에 쥐고 있던

그 열매가 문제였다.




녀석은 강렬하게 빨간 열매를 손에 쥐고 있다가

호기심에 한입  깨물었던지

열매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아기 이빨자국이 쿡 새겨있었다.

아. 이런!


아무도 없는 그 깊은 숲길에서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를 보며 당황한 나는

얘가 어떤 상황인지 알 턱이 없었던지라

녀석이 들고 있던 열매를 의심하며

살짝  깨물어보았다.


 못 하는 아이에게

 우느냐 다그쳐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열매를 한입 살짝 물어보니

 기운의 엄청나게 매운 기가

내 입안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아. 독초 열매구나!


매운 독기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내가 느끼기에 청양고추몇만 배 정도 강도였고

수백개의 바늘이 입안을 찌르는듯이

느껴질 만큼의 충격이었다.


뒤돌아 그 열매가 달린 식물 주변에 

같은 열매를 달고서 있는 식물을 살펴봤다.

줄기에 몇 개 남겨진 을 보니

예전에 어머니가

조심해라. 이건 독초란다. 하신

그 천남성이라는 식물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알려주시던 그때는

열매가 맺지 않았던지라

잎사귀만 보고 외워두었고

문제의 그날.

그 열매가 천남성 식물 열매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던 거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일단

배낭 속에서 물을 꺼내 아이 입을 헹구어내고

우유를 꺼내 다시 아이 입을 헹구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둘러업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한 시간가량 어야 하는지라 마음이 다급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평소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숲 속에는

나와 녀석 둘 뿐이었다.


나는 나의 무지를 자책하며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를 둘러업고서

울면서 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어찌나 겁이 나고 두렵던지

눈앞이 새까맣기만 했다.


다급하게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고

차를 몰아 한라산을 빠져나와

비상등을 켜고 액셀을 미친 듯이 밟아

시내로 향했다.


바보 같으니!

무식한 엄마 같으니!

어쩌자고 이걸 아이한테 쥐어 줬을까!


어디로 가야 하지?

응급실로 가야 할까?

아니면 독초를 깨물었으니 한의원으로 가야 하나?

액셀을 밟아대면서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다행히도 아이가 그걸 삼킨 건 아니어서

절망적인 상황은 아닐 거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독초에 대한 처리는

응급실보다는 한의원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는 동안 녀석은

카시트에서 몸부림을 치며 울다가

잠이 들었던지 뒷좌석 쪽이 조용했다.

그러니 나는 더 불안했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용하다는 한의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서

선생님. 아이가 독초를 물었어요! 하고

눈물바람을 하며 외쳤다.


이제 막 점심식사를 하시려던 선생님은

아이를 둘러업고 나타나

다급하게 외치는 나를 보고는

숟가락을 던지듯이 내려놓고

쏜살같이 아이를 자리에 눕혀 살펴보았다.



나는 배낭 속에 넣어간 문제의 그 열매를

선생님께 내 보이며 말했다.

천남성 열매를 베어문 것 같아요.


맞습니다. 천남성이네요.

이게 천남성인건 어떻게 아셨어요?

다행히 아이가 그걸 삼킨 것 같지는 않고

저렇게 잠이 든 걸 보니

위급한 상황은 아니에요.

집에 가셔서 생강을 달여서 물처럼 자주 먹이세요.

그게 해독 작용을 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제가 천남성 잎은 알고 있었는데

잎이 다 떨어진 채 열매만 매달려있어서

그게 그 열매인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문제의 식물 이름이 뭔 지조차 모르면

응급처치하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엄마가 너무 놀라신 거 같네요.

괜찮습니다.


녀석은 울다 지쳐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천만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의 무지와 안일함을 자책하면서

엄청나게 우울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한의원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거 아세요?

이게 옛날 사약을 만드는 재료예요.

천남성이 그렇게 위험한 식물입니다.

제주도에는 천남성이 많이 서식하니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그때 어찌나 놀랐던지

그때부터 나는

익숙하지 않은 제주 시골 환경에서

어린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조심했다.



익숙하지 않은 식물,

익숙하지 않은 곤충들과

도처에 숨어있는 독사, 지네, 등등


나는 두툼하고 아주 세밀한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는

제주 식물도감을 하나 사서

특히 독성이 있는 식물들의 모양새와

잎모양. 꽃. 열매를 눈여겨보았다.

두 번 다시 나의 무지로 인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연 도감을 살펴보니

우리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들 중에도

독초는 많았다.

잎사귀에서 나오는 즙 한 방울이면

사람 사오십 명을 즉사시킨다는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협죽도도 그랬고, 

흔한 덩굴 아이비도 그랬다.

사방이 풀이요, 나무니

이곳에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바로 그것이어야 했다.


그 후론

아이들과 길을 걷다가

혹여나 독초를 보게 된다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식물을 가리켜 말했다.

이건 이름이 ㅇㅇ이라는 독초야.

잘 봐두어라.

잎사귀는 이렇게 마주 보고 있고

꽃은 ㅇㅇ색이며 ㅇㅇ철에 핀단다.

하면서 아이들에게 매번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계속 반복이 되니

언젠가부터는 산책을 나갔을 때,

어떤 식물을 가리키며

엄마. 이건 독초지? 하면서 나에게 확인을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곳이던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고

또 다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천남성 열매사건이 있고 난 후에

나는 시골에서는 살면서

얼마나  주위를 기울여야 하는지 새삼 자각했다.


천남성 열매 사건 이야기는

당시 내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어서

남편과 집안어른들께 혼이 날까봐

남편에게는 물론이고

시댁어르신들친정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글이

아주 뒤늦은 고백인 거나 다름없는데

비 오는 마당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그때 생각이 떠올라 몇 자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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