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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산간 촌 마을에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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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시안
Dec 13. 2024
이 새벽에, 마당에 들어온 송아지라니!
볕 좋은 늦가을 하루가 지나간다.
늦가을 볕이 마냥 봄날 같아서
남편과 나는 아침나절부터 늦은 오후까지
마당에서 나무를 자르고,
재활용 쓰레기를 내어다 놓고
주변에 있는 잡풀들을
대강 손으로 쑤욱 뽑아
던지고서
마당 수
도 호스를 길게
빼내
말끔하게 세차까지 했다.
볕은 봄날처럼 푸근하고
바람 한점 없는 날씨덕에
평화롭게 한
나절을 보냈다.
마당 귀퉁이에
저절로
들깨가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을
그래도 곁눈질로 참깨 농사 지은걸 본 적은 있어
동네 어르신들처럼
한 주먹거리
들깨 단을 모아
데크
한 켠에 세워두었다.
며칠 전 자리에 펴 놓은 들깨도 바싹 말라
세워둔 들깨 단 밑에
자리에 굴러 떨어진 들깨 알들이
소도록하니 제법
쌓였다.
농사랄 것도 없는
들깨 수확이었다.
평화로운 늦가을 나절
우리는 마
당에서 일을 하고
릴리는 마당 데크 위에 귀부인 마냥 앉아서
백창우 동요집에 나오는 가사처럼
개밥 주기만을
기다리며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늦은 오후 갑자기 하늘이 혼잡하여 올려다보니,
어디선가 엄청나게 많은 까마귀 떼들이 나타나
동남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질러
쉴 새 없이 까악소리를 지르며 날아갔다.
저 많은 까마귀들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향하는 걸까.
까마귀들은
내 머리 바로 위 상공을
바람을 타며 여유롭게 날아갔다
.
일부는 북서쪽 어딘가로 요란스럽게 사라지고
뒤를 따르던 여러 마리들은 다시 돌아와
우리 집 마당 주변에 걸쳐져 있는
전선줄 위에 나란히 앉았다.
까마귀들이 내려앉은 전선은
봄철부터 가을 나절까지 제비들의 쉼터가 되더니
이제는 저 까마귀들의 쉼터가 되었다.
저녁 무렵이 되니 까마귀들이 한데 모여서
새까맣게 하늘 뒤덮으며 일시에 하늘을 날았다.
까마귀들도
군무를 추는 습성이
있는 걸까?
우리 동네 까마귀들은
해질 무렵
,
붉고 짙게
화려하게 번지는 노을을 배경 삼아
군무를 펼치듯이 날아올랐다.
주위가 어둑해지니
집 뒤 동산에서는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
그중에는
꾸에엑 꿔억
푸드득거리며
숲속으로 날아오르는
꿩들
소리가 제일 시끄럽다.
보일러 기름이 떨어졌기에
급한대로
마당 구석에 쌓인
나무를 주워모아
화목 보일러 화구앞에 앉아 불을 지폈다.
타닥
타닥 나무타는 소리.
지글
지글 나무
수액 끓어 오르는
소리.
나무타는 냄새는 연통을 타고 올라
마당 가득히 퍼지고
저 멀리 초원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꾸어억
꾸억
거리면서
조용한 숲을 뒤흔드는
새들의 소리.
초원에 풀어놓은 소들이
간간히 서로 주고 받으며
움머어
음머어 우
는 소리가 평화롭다.
밤엔 릴리가 미친 듯이 짖었다.
또 아기 고양이가 나타났나?
간신히 잠에 든 나는 침대 위에서 돌아 누우며
릴리. 시끄러워. 짖지 마. 소리를 질렀다.
릴리 짖는 소리는 그칠 줄
몰랐고
이제는 발악하듯이 짖어댔다.
릴리
왜 그래. 누가 왔어? 왜 시끄럽게 짖어?
마지못해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나가보니
우리 집 마당 옆 초원에서 넘어온
어린 송아지가 마당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초원을 돌아다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송아지는
여기는 어딘가 하며
어리둥절해했고
넌 뭐야. 당장 내 집에서 꺼져! 하며
릴리가
웍웤웍웍
짖어대는 통에
어린 송아지는
요란스럽게 짖는 허연 생명
이 무서워
안절부절
했다.
릴리는 밥값을 하느라
마당에 들어온
아기 송아지를 쳐다보면서
엄마. 쫌 나와 봐요. 침입자가 왔다고요. 하며
뱃가죽이
쏙 들어가 등허리에 달라
붙도록
있는 힘껏
컹컹 짖어댔다.
내가 스르륵 거실 유리창을 여니
송아지는 내 소리에 깜짝 놀라
자기가 넘어 들어온 방향으로
몸을
돌려
무너진
돌담을
폴짝
뛰어넘어
달려가
초원으로 무사하게 복귀했다.
몇 달 전 새벽에도
릴리가 난리 치길래 내다보니
노루가 마당에 들어와 있더니
이 새벽에 마당에 들어온 송아지라니!
송아지가 초원으로 사라져 버리자
릴리는 재미가 없어졌는지
자리에서 한번 휭
돌더니
자리 잡고 앉아
앞다리를 포개고
고개를 얹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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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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