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과 초코파이 바나나가 온라인마트에 주는 교훈
2022년을 휩쓴 포켓몬빵은 둘째 덕에 우리 집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요리조리 살펴보다 포장을 뜯어 띠부띠부씰을 꺼내려는 내 손을 아내가 툭 친다.
"형하고 화해하는데 쓰겠대."
몇 달 전, 코로나19 격리 기간 중 칩거하던 아들들이 다툰 뒤 여전히 대화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화해에 대한 욕구는 둘째에게만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포켓몬빵을 발견했을 때 형을 떠올렸다.
첫째가 수학 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둘째는 흐뭇한 표정으로 포켓몬빵을 살펴보고 있다. 난 슬쩍 입을 떼었다.
"포켓몬빵처럼 구하기 힘든 게 예전에도 있었지."
"뭔데?"
"초코파이 바나나!"
지금은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게 잊힌 상품이 됐지만 내가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에서 컨설팅 업무를 할 땐 연일 품절되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너가 온라인몰에 원하는 물건을 구하러 갔는데 없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
"허탈."
"그러고 나선?"
"얼릉 딴 온라인몰로 가겠지. 거기도 없으면 또 딴 곳으로, 네이버에서 검색도 해볼 거야."
"그러다 어느 온라인몰에서 원하던 상품을 찾았다면 그곳에 호감을 갖겠지? 반대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빈손으로 나온 곳은 비호감이고. 한 연구에 따르면 비호감을 호감으로 만드는데 무려 7개월이 걸린대. 또 비용은 얼마나 들겠어. 무려 돌아선 고객을 데려오는 일이라니..."
"응. 포켓몬빵을 구한 슈퍼마켓, 좋은 느낌이야."
"맞아, 그런 거지. 아직 형 오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아빠가 겪었던 '초코파이 바나나의 난(亂)' 얘기해 줄까?"
"아니, 됐어. 아빠 얘긴 길잖아!"
"어이어이~ 들어보라고!"
난 둘째를 붙들고 초코파이 바나나가 품절되던 그 시절 이야기를 억지로 시작했다.
2016년, 다양한 (태생부터) 온라인몰들이 기존 오프라인 쇼핑 여정의 번거로운 과정들을 과감히 삭제하면서 승승장구하자 오프라인 대형마트들은 일제히 온라인몰을 오픈하고 빠른 시간에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담당했던 A마트의 온라인몰도 그중 하나였다.
난 디지털 에이젼시의 일원으로 A마트 온라인몰 운영팀에 파견되어 쇼핑 관련 트렌드를 수집하고 새로 발생한 이슈들의 영향도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는 전략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정리한 보고서는 월 1회, 클라이언트 본부장님에게 대면 보고했다.
어느 날, 팀원 젤라가 출근해 가방을 던져놓고 싱싱한 트렌드를 공유했다.
“팀장님, 팀장님! 초코파이 바나나 먹어봤어요? 요새 그렇~게 난리래요.”
“엥? 초코파이와 바나나? 단짠도 아니고 단단 조합이네요? 왜 그렇게 난리인데요?”
“허니버터칩도 그랬잖아요. 새로운 맛인데... 뭐 품절이라고? 이거 구해서 SNS에 올리면 대박~ 이런 심리 아닐까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품절 마케팅이군요. 요거 한 번 분석해 볼까요? 젤라씨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게 궁금한가요?
"품절이 되면 온라인몰에 온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겠죠? 오프라인에서는 우르르 몰려갔다가 품절입니다. 딱 뜨면 또 주변 가게 들러보는데 그거 번거롭잖아요. 짜증도 나고. 그런데 손가락만 톡톡해서 이동할 수 있는 온라인몰에서의 사람들 행동이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난 상품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화를 어떻게 가라앉힐 수 있을까가 궁금하네요. 젤라씨는 원하는 상품의 품절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행동을 할 거 같아요?"
“사용자로서 제 답은 '온라인 고객센터에 드러눕는다'입니다.
“역쉬 진상고객!”
“췟!”
(며칠 후 본부장 보고의 현장)
발표의 마지막 부분을 앞두고 난 슈트 안주머니에서 초코파이 바나나를 꺼냈다.
“이거 아시죠? 바로 요즘 잘 나간다는 초코파이 바나나입니다."
“거 구하기 힘들다는데 어떻게 구했나요?”
"품절 초기에 우리 A마트 온라인몰에서만 판매했거든요. 그때 딱 구매했습니다!"
본부장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금세 '초코파이 바나나의 난(亂)'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내용은, 그 상황에서 고객들은 무엇을 했는지와 각 경쟁사들의 대처입니다."
"여기 포털의 '초코파이 바나나' 연관 검색어를 보면 고객들은 '판매처' 정보를 가장 바라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우리 온라인몰에서만 판매를 했기 때문에 SNS와 블로그로 입소문이 나 고객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그때 우리 온라인몰로 들어오는 유입 검색어 50% 이상이 초코파이 바나나였죠."
"중요한 사실 하나! 이 중 60%는 신규 방문자였습니다. '여기서만 판다'라는 소문은 신규회원을 늘릴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기회라는 거죠."
본부장은 '신규회원'과 '기회'라는 단어에 눈을 살짝 크게 뜬다.
"그런데! 금세 우리 온라인 마트에서도 바나나맛 초코파이가 동이 났습니다. 문제는 그럴 경우 해당 상품 페이지, 즉, 검색 후 도달하는 랜딩 페이지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외부에서 검색해도 우리 온라인몰 정보가 뜨지 않습니다. 그래서 품절과 동시에 검색을 통한 외부 유입이 뚝 끊겼습니다."
쩝쩝. 본부장은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언제 상품이 다시 들어올지 모르니 여전히 사람들은 온라인몰을 들락거립니다. 중요한 건, 이 '실패의 랜딩페이지'에서 어떤 정보를 줄 수 있나입니다. 먼저 옆동네를 살펴보실까요?"
본부장의 눈이 커진다.
"먼저 초코파이 바바나 품절 초기 C마트의 상품 페이지에는 검색 결과가 없다는, ‘실패’ 메시지가 뜹니다. 다만 욕구의 탈출구로 ‘바나나’와 ‘초코파이’에 대한 검색 결과를 하단에 보여줍니다. 그런데 '샤방샤방 헤어밴드'와 '신토불이 웰빙 옛날 과자'가 뜨네요. 아~ 고객들, 한 번 더 실망입니다."
본부장은 얼굴에 실소가 떠오른다.
"그럼 이제 우리 마트를 보시겠습니다."
본부장은 손으로 턱을 괴고 실무 담당 부장은 허리를 곧추 세운다.
"이렇게 구매가 가능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품절이 됐어요. 그래도 C마트에 비해 거부감은 덜한 디자인입니다만... 아래 뜨는 탈출구는? 초코파이 바나나와 연관이 1도 없는 ‘이번 주 HOT 상품'입니다. 고객들은 전혀 위안이 되질 않습니다."
부장은 슬쩍 본부장의 눈치를 본다.
"이어서 다른 경쟁자인 B마트를 보시면, 역시 검색어와 일치하는 상품이 없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그런데 여기선 '이런 상품 구해주세요'라는 새로운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그거 없어요, 이건 어때요?'라며 '엉뚱한 상품'을 추천하는 것보단, 이렇게 '찾으시는 거 말씀해 주시면 다음에는 준비해 놓을게요.'라고 말하는 게 고객의 마음에 위안을 주지 않을까요?"
본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품절인 상태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각 온라인몰들은 누적되는 고객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랜딩페이지를 개선합니다. 먼저 C마트, 이런, '몽쉘 초코 바나나'가 떴네요? '실패했다'는 메시지는 치워버렸습니다. 같은 날 우리 마트는? 실패 메시지와 함께 전혀 상관없는 마트 추천 기획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B마트는 어땠을까요? 역시 실패 메시지는 감추고 몽쉘 초코 바나나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여전히 '이런 상품 구해주세요!' 버튼을 보여줍니다."
부장은 내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쏜다.
"몽쉘 초코 바나나가 대체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포털의 초코파이 바나나 검색 결과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제가 나왔고 고객들도 인지하게 된 거죠. 사실 맛은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아마 뒤를 이어 무수한 대체제들이 또 등장을 할 겁니다. 그때쯤이면 초코파이 바나나의 난도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겠죠. 결국 남는 건 품절 사태 동안 고객들에게 가장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일 겁니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본부장은 한동안 부장에 시선을 고정한다. 부장은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정리하는 내게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 달도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린 할 얘기가 좀 있어요. 먼저 나가시죠."
부장을 향하며 본부장이 막 입을 떼려는 찰나, 난 황급히 회의실을 탈출했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내게 젤라는 발표장 분위기를 물었다. 난 잘했는데 잘릴 것 같다고 얘기했다. 밥을 먹으러 가는데 '자리에서 좀 보자'는 부장의 문자를 받았다. 젤라에게 문자를 보여주니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짐은 제가 싸놓을게요~”
“젤라씨 것도 같이요.”
"아빠 잘렸지? 그치?"
"우쨌을까요? 아냐~ 오히려 컨설팅 거리가 더 늘었지. 사실, 이런 류의 문제는 발견해도 대형 온라인몰에서 바로바로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아. 그때 부장도 나름 작업 우선순위가 있었을 텐데 내가 그렇게 훅 치고 들어와 곤란했을 거야."
"아빤 사회생활 못하네..."
"윽! 그나저나 이제 덫을 놓을 때닷!"
"엥? 덫?"
"품절 상품의 가치를 실감했지? 그걸 이용해 형과 화해하는 게 네 계획이잖아?"
"그렇긴 한데, 음... 어... 얘기 듣고 나니 더 소중해져서 형한테 주기 싫기도 하고..."
"다시 오기 힘든 기회야! 자기 전에 식탁에 올려놓고 포스트잇을 붙여 놔. '이거 먹으면 나랑 화해!' 요런 거. 그림도 재밌는 거 그리고~"
"그... 그럴까?"
둘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준비해 자기 전 식탁에 올려놓았다. 형은 게임을 마치고 자기 전에 물을 마시러 나와 이 포켓몬빵과 포스트잇을 발견할 것이다.
아침 식탁 위에는 구겨진 포스트잇과 희소성 없는 포켓몬 캐릭터 띠부띠부씰이 포장이 뜯긴 채 놓여있었다. 빵만 자취를 감췄다. 이를 본 둘째는 탄식했다.
"힝~"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