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범 Oct 27. 2024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야 한다

맺는 글

"2년에 한 번씩 긴 휴가를 갈 거야. 죽기 전 모든 대륙을 둘러보고 말겠어! 함께하지 않을래?"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기 직전, 오래전 예정했던 끄라비 가족여행을 단행했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여정의 끄트머리에 난 섣불리 이런 선언을 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아내는 '피식'했다. 그녀는 현실적이었다. 


"돈은? 시간은?"


나는 내가 뱉은 문장의 실현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셈해봤다. 


* 목적지 : 가족 버킷리스트에 담긴 캐나다의 '오로라 빌리지'나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4인 가족 * 10일 * 비용들 = 1,000만 원 ~ 1,500만 원


당시 40대 중반의 가장인 나는 경력이 올라갈수록 긴 휴가는 불가능했고 유산은 예정에 없었고 매달 주택대출 원금과 이자를 근근이 갚고 있었으며 재테크엔 까막눈이었다. 가진 건 순순한 노동력뿐.

그럼, '높은 소득'과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일의 형태를 바꿔야 했다.


셈을 마치고 아내에게 쭈뼛쭈뼛 말했다. 


“안 그래도 고민해 봤는데 말이지, 지금까지처럼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을 하면 일단 시간이 안돼. 사실 돈도...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쓰면 시간당 가치가 몇 배 더 오르지 않을까?”


“또 이직하려고? 직장에서 큰 성과를 거둬야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올 텐데 자꾸 이직을 해서 그게 되겠어? 난 당신이 밖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뭔지 모르겠어. 그렇게 자꾸 이직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려는 거야?”


공무원인 아내에게 직장은 '변수'가 아니어야 했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녀의 말처럼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입에 넣은 코코넛을 가미한 닭요리가 씹을수록 텁텁해졌다. 


돌아가면, 코로나19와의 싸움이 시작될 거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끄라비의 마지막 밤은 저물고 있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거쳐온 직업은 이렇다.


20대

- 문화지 기자  


30대

- 디지털 콘텐츠 기획자  

- 웹, 앱 구축 및 운영 PM  

- 프로젝트 제안 전략 팀장  


40대

- 디지털 서비스 컨설턴트 

- SNS 마케터 및 캠페인 기획자  

- 디지털 사업부장 

- 병원 마케팅팀 팀장  

- 스타트업 CMO, 사업전략 임원


한 직장 안에서 맡은 업무도 다양했고 직장도 다른 분야를 택해 이직했다. 그래서 내 이직은 동종업계 안에서 연봉을 올리는 '수직형 이직'이 아니라 분야를 옮기는 '수평형 이직'이었다. 연계되는 일들을 새롭게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택한 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요즘 일은 어때?'가 아닌 '요즘은 무슨 일 해?'라는 질문을 들었다. 기자나 병원 마케터로 근무할 때는 설명이 쉬웠다. 그런데 그 외의 직업들은 간단히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음... 기업이나 조직에서 알리고 싶은 게 있잖아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전할지를 정해요. 그리고 실행을 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상대편의 표정은 지루해지고 나는 지친다. 그래서 금세 한 마디로 마무리 짓는다.


“홈페이지 만들어요.” 혹은 "온라인에서 광고를 하거나 물건을 팔아요."


그러고 나서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 “주로 대기업 일을 해요.”라고 덧붙인다. 여기까지 오면 화제는 저절로 다른 곳을 향한다. 아이들 학교 생활 같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아빠의 일은 여전히 '병원 마케터'다. TV에서 그 병원의 광고를 봤으니까.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지금은 내 일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기 더 어렵다.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가존 전에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고, 그전에 사용자가 이해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여야 하는데 의식주와 관련된 굵직한 문제들은 이미 산업혁명이 해결해 버렸다. 난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을까? 일반 회사에 근무할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이 의문이 스타트업에 근무한 뒤로 일상의 고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일에 대한 담담한 이 문장들에 깊이 공감한다.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 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 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의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이 작업 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만 의미 있게 보일 수도 있다.

아이들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지역 영업 관리자나 건물 서비스 엔지니어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의미심장하다. 아이들 책에는 보통 가게 주인, 건설 노동자, 요리사, 농부가 등장 한다. 인류의 생활을 눈에 띄게 개선하는 일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AI관련 서비스를 하다 보니 일의 미래에 대한 회의감도 찾아온다. 큰 기업일수록 일에 대한 매뉴얼을 정리한다. 이 매뉴얼과 관련된 데이터는 AI의 알고리즘이 되고 결과적으로 일 자체가 자동화될 수 있다. 이런 비관적인 시각에 세스 고딘은 공감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일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제시한다.


기업은 무엇을 원하는가?
새로운 기계가 개발될 때마다 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기계가 아직 차지하지 못한 일자 리로 넘어가야 했다. 2023년인 지금 기계는 호텔에서 일하는 로봇, 주식을 거래하는 알고리즘, 삽화를 그리고 엑스레이를 판독하는 기계 학습 시스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이제 기업이 요구하는 바가 변했다. 갑작스럽게 말이다. 기업은 기계가 (아직까지는) 할 수 없는 반자동화된 업무를 처리하는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대단히 희귀한 두 가지 자원을 찾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창조성'과 '인간성'이다.
그 두 가지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대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통찰력을 발견하는 일과 관련 있다.

- <의미의 시대> 세스 고딘


들어가는 글에서 밝혔듯 '노동으로 살아가는 50대'를 맞이하는 나로선 '창조성'과 '인간성'이 노동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지금보다 더, 내가 하는 일을 가족들은 이해하기 힘들어질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내가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시할 있을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 가치만큼이 소득이 되는, '가치 노동'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과 2년에 한 번씩 긴 휴가를 가고. 죽기 전 모든 대륙을 둘러보고 말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50대의 나는 그럴 있길 바라며, 그간 내가 살아왔던 일과 인생의 자소서를 그에게 보낸다. 


- fin





이전 21화 그녀가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