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댁에 모여 늦은 아침을 먹고 아우가 어머니 모시고 가는 길에 안산 입구에 내려달라고 했다. 추석 연휴라고 헬스장도 문을 열지 않는데 이것저것 먹다 보니 몸이 둔해서 산길이라도 걷고 와야 할 것 같았다. 날씨는 더없이 쾌청하고, 그 좋은 날 집에만 있기도 아까웠다.
어머니 댁에 갈 때까지만 해도 산길 걸으러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들고 가지 않았다. 쉬엄쉬엄 걸으면 세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그 시간에 맥없이 걷기만 하기에는 시간도 아깝고 심심하기도 할 것이라 어쩌나 싶었다.
걸을 때나 운동할 때 늘 뭔가를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경제나 시사 현안 뿐 아니라 문학, 과학, 의학, 상식에 이르기까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줄을 서있다. 누군가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했다더니, 정말 숨은 고수들이 사방에 널려있어 방송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오늘은 그냥 걷는 데 열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들을 방법도 없고. 아무래도 방송 들으며 걷다 보면 자연을 온전히 맛보기 어렵다. 그러니 좋은 꽃도 보지 못하고 좋은 향기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만 간다. 그것도 묶이는 것이라, 그것에서 풀려나니 무심히 지나쳤던 꽃이며 나무도 새삼스럽다. 그러던 중에 봉수대 올라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래, 여기 올라가려고 이어폰을 두고 왔구나.
채 삼백 미터도 되지 않는 야산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그렇게 이삼십 분 가쁜 숨 몰아쉬다 보니 봉수대가 눈앞이다. 쾌청한 날씨 덕에 잠실도 지척이다. 선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 북한산 남산 한강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우리 집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참 좋은 곳에 사는 셈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으니.
이어폰 잊고 나서 초가을 풍경을 얻었다. 남는 장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