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그날 밤 은 어떠했나요?
달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봄이란 게 어느새 우리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인지 알았는데 사계절 중 가장 예민한 것은 봄이었습니다. 떠나던 추위가 변덕스레 돌아 온다거나 환하게 웃던 해가 거친 바람과 함께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는 것. 거리를 뒤덮은 꽃이 완연한 봄을 말하나 싶었지만 심통스런 봄비는 수줍던 꽃잎을 이내 바닥 한편에 추적이게 하네요. 파리의 봄은 어느 곳보다 조금 더 예민해요. 조금 이르게 봄이 온다 싶었는데 오월을 막 들어선 날에도 아침 기온이 한자리를 벗어나질 못했으니 올 봄은 평소보다 더 예민 한가 봅니다.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를 걷다 보면 코 끝을 찌르는 아릿한 냄새가 순간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김없이 미완의 초록으로 덮이기 시작하는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겨우 내 얼어있던 흙과 풀 내음이 빗물 속 켜켜이 쌓여 있었고 발걸음을 재촉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두꺼운 구름 틈 사이로 비집고 내려오는 햇살을 마주합니다.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책 한 권과 와인, 종이컵을 가방에 쑤셔 넣은 뒤 곧장 나섰죠.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보내지 못하는 엽서를 쓰는 것. 같은 오리와 백조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먹이를 갈구하는 몸짓을 애써 외면하다 결국 빵을 조금 때어 주는 일. 그러다 에펠탑 너머 져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까지.
꼭 봄이란 계절에 떠나야겠다 다짐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시린 별빛 아래 환하게 울렁이는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라 상상했었죠. 화창한 어느 봄날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째 일지 모르는 밤. 아마도 저에게는 세 번째 쯤의 밤이었고 그 사람에게는 그 곳에서의 마지막 밤 이었습니다. 야간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을 앞에다 앉혀두고 비행기에서 보았던 밤하늘을 떨리는 목소리로 장황히 설명했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생각했는지 파리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영롱한 빛깔과 또렷한 별들을 그렇게나 볼품없이 나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같이 마시자며 들고 왔던 샹그리아가 유독 달았던 것인지 아니면 환하게 웃던 모습 탓인지 이토록 어지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봄을 마중하기 위해 에펠탑이 잘 보이는 이곳으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밤하늘을 함께 보고 싶다는 말 대신 나열했던 그 유치한 단어들이 부끄러워 숨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너머 창 밖으로 어렴풋이 반짝이던 별들을 남긴 잔상이, 혹시 그 별들이 이곳에도 떠 있을까 앉아 우두커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날 밤 은 어땠나요?
바람이 서글피 불던 밤이었는데
다행히 그곳의 창문이 높아 하늘에 널브러진 별을 보러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늦게 까지 불 꺼진 거실에 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나 봐요.
만약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날이
다시 찾아와 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조금 붉어진 얼굴과 함께
반가운 마음으로 그대를 안을까
고민하게 될까요.
아니면 그날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손을 잡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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