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낭독으로 문학에 성큼성큼 다가가다

by 차차

1주일에 한 번, 나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아이들을 만난다.

작년까지는 고1, 올해부터는 고2다.

이 시간엔 책을 비롯해 도서관에 있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낭독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수업에서 매 시간 낭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아이들과 함께 꼭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시기’가 있다.


바로,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를 앞둔 때다.


문학에 ‘성큼성큼’ 다가가기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는 이름처럼, 문학에 ‘성큼성큼’ 다가가게 만드는 축제다.

평소엔 시험문제로만 문학을 접하던 아이들이 배우의 낭독공연과 작가 특강, 독자 참여 코너, 깜짝 문학퀴즈, 60초 백일장 등을 통해 문학을 새롭게 경험한다.


학생들은 단순히 관객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사전 독자 감상단, 목소리 출연, 낭독공연 카메오, 사회자, 미술감독, 음악감독 등으로 참여하며 공연을 함께 만들어 간다.

나는 수업을 통해 이 콘서트의 기획의도와 구성, 주요 역할을 안내하며 아이들의 참여를 이끈다.

작품을 선정할 때는 늘 고민이 많다.


남고인 우리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작품, 혹은 한 번쯤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을 찾는다.

그동안 함께한 작품은 조우리 작가의 『껍데기는 하나도 없다』, 박상률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시집』, 손현주 『가짜 모범생』, 이경혜 『명령』이다.


행사 전에는 도서관에서 모여 함께 낭독한다.

그 시간이 작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



낭독의 여섯 가지 원칙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곁텍스트 읽기’ 활동을 한다.

표지와 저자 소개 등을 살펴보며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추측해 보는 시간이다.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책에 대한 몰입이 달라진다.


그리고 묻는다.

“얘들아, 낭독이 뭘까?”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거요.”

“맞아. 그런데 그냥 소리 내는 건 음독이야. 낭독은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읽는 거야.”


나는 이어서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럼, 듣는 사람에게 책의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어떤 걸 신경 쓰면 좋을까?”

좋은 목소리, 발음, 감정 표현...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나면 낭독의 여섯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1. 정확한 발음

2. 좋은 발성

3. 텍스트 내용에 맞는 감성

4. 문장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끊어 읽기

5. 문장 내용의 정확한 전달을 위한 억양 (강조점)

6.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쉼(PAUSE)


소리로 문장을 다루는 법을 익힌 뒤, 이제 아이들과 직접 목소리를 내볼 차례다.



함께 낭독하기

낭독 순서는 보통 합독 – 그룹 낭독 – 교독으로 이어진다.

반 전체가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입을 풀고, 분단별로 그룹 낭독을 한 뒤, 한 명씩 돌아가며 교독한다.

그러면 낭독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조금 사라진다.


하지만 실제낭독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20~30분뿐일 때는 합독과 그룹 낭독을 생략하고 곧바로 교독으로 넘어간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인 후, 아이들이 차례로 읽는다.

읽을 때마다 짧게 피드백을 건넨다.


“책을 눈높이에 맞게 살짝 들고 좀 더 크게 읽어볼까?

성대가 눌리지 않아야 전달력 있는 소리를 낼 수 있어”

“너무 빨라. 조금만 천천히, 숨을 좀 쉬면서 읽어보자.”

“마침표를 잘 살려서 읽어볼까? 문장이 끝나면 입을 살짝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마신 뒤, 다음 문장을 이어가면 좋아.”


다른 친구에게 건넨 조언이 자연스레 다음 친구의 낭독에 녹아든다.


두 바퀴쯤 돌고 나면, 교실 안 공기가 달라진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의 목소리에 점점 생기가 돌고, 문장에 감정이 얹힌다.

누군가는 친구의 낭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스스로 감정을 담아 읽어본다.


활자로만 존재하던 문학이 목소리를 얻는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낭독을 하니까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이미지가 더 잘 그려지고 기억에 남는 느낌이에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함께 낭독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낭독의 시간을 가진 뒤에는 콘서트 중간중간 등장하는 ‘목소리 출연자’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표현한 작품에 대한 생각을 실감 나게 대신 읽어주는 역할이다.

그 아이들과는 따로 만나 연습을 하는데, 그때마다 낭독을 배워온 나 자신을 조용히 칭찬하게 된다.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시험과 입시로 가득한 교실에서도, 문학을 ‘소리 내어’ 만날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 짧은 낭독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로 문학은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음 낭독의 순간을 기다린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서혜정 『낭독하는 아이』

keyword
이전 17화어둠 속의 낭독공연, 감각을 깨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