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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기다리자

낭독으로 엮은 우리의 시간

by 차차

선생님들을 처음 만난 건 2024년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당시 나는 휴직 중이었다.

그때 낭독스승님의 제안으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공주로 향했다.


어딘가를 열심히 구경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최은숙 선생님을 직접 뵙는 일이었다.


최은숙 선생님은 교육에 진심인 분이다.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분을 나는 먼저 책으로 만났다.

아이들과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그 책을 송정희 성우님이 오디오북으로 녹음하신 걸 들었을 때,

그 따뜻한 문장과 목소리에 단숨에 빠져들었다.


아직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이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만으로도 공주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평일 오전, 학교 대신 여행길이라니!

그것도 햇살 좋은 4월의 공주라니!



한옥 카페에서 공산성을 바라보며 마신 커피 한 잔은 유난히 향기로웠다.

옅은 초록빛 나무들에 둘러싸여 촉촉한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어 드디어 선생님들을 만났다.

최은숙 선생님을 비롯해 전·현직 국어선생님 두 분, 출판사 대표님, 그리고 성우님까지.

‘낭독’이라는 한 단어가 여섯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마음이 참 포근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은숙쌤의 19년 된 독서모임과 성우님의 낭독코칭을 함께 참관했다.

그날 밤, 공주 한옥마을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새벽 두 시까지 이어진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공감했다.

다음 날 점심까지 이어진 그 짧지만 진한 시간은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된 인연처럼 따뜻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선생님의 책 『웃으면서 기다리자』를 선물 받았다.

그와 함께 우리의 마음속에도 작은 씨앗 하나가 심어졌다.

그 씨앗은 곧 ‘함께 낭독하자’는 약속으로 자라났다.


모임의 이름은 선생님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

‘웃으면서 기다리자’.

줄여서 ‘웃자’.





그 후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3주 뒤부터 우리는 격주 화요일 오전 9시, 줌에서 만났다.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각자의 목소리, 서로의 표정, 그리고 책 속 문장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웃으면서 기다리자』를 함께 낭독하며, 우리는 글 속의 은숙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좋은 책을 그냥 우리끼리만 읽고 끝낼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

그렇게 『웃으면서 기다리자』를 낭독해 점자도서관에 기증하자는 제안을 했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모두 흔쾌히 동의해 주셨고, 우리의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되었다.



각자 분량을 나눠 연습하고,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 ‘오다시티’를 익히고, 코칭 파일을 다시 들으며 연습했다.

그리고, 각자 시간을 내어 홈 레코딩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은숙쌤과 성우님의 파트는 녹음 공간에 같이 가서 녹음했고, 편집은 내가 직접 도와드렸다.


편집본이 모두 모이기까지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모두가 정성스럽게 녹음하고 편집해 주셔서 감동이었다.

마지막으로 시작 멘트와 마무리 멘트를 추가로 녹음하고, 볼륨을 일정하게 조절하며 30분 단위로 편집을 마무리했다.


『웃으면서 기다리자』는 여섯 명의 목소리로 한층 더 생생하게 살아났다.




며칠 전, 드디어 최종 녹음 파일을 점자도서관에 보냈다.

지난 1년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안에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 그리고 낭독으로 이어진 우정이 있었다.


다음 날, 최은숙 선생님께서 메시지를 남기셨다.

“<웃으면서 기다리자>를 행복하게 듣고 있어요.
이런 선물이 제 생에 또 있을까 싶어요.”


그 말을 읽는데,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사실 나에게는 선생님을 만난 그 순간이 이미 선물이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다가오는 겨울, 선생님의 책으로 낭독회 겸 북토크를 하는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다시 한 공간에 울릴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두근거린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시간을 맞이하게 될까?

웃으면서 기다려본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최은숙 『웃으면서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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