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처음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비움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최소한의 물건으로 사는 삶이기에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고요. 많은 물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더.
그런 저의 처음 버리기는 무작정 비우기였던 거 같습니다. 물건들이 줄어들고 빈 공간이 나타나면서 버리기는 조금씩 체계적으로 바뀐 거 같아요. 결국 비움을 좋아하게 되었고요. 그러나 어느 순간 그렇게 버려지는 물건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쓰임을 다해서 비우는 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쓸모가 남아있음에도 그저 빈 공간을 위해 버려져야 했으니. 버리는 제 마음도 점점 지쳐갔던 거 같아요. 그러고 보면 미니멀 라이프는 정말 고민에 생각이 더해진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생각의 끝은 쓸모가 남아있는 물건들의 재활용이라는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어요. 재활용이라는 건 그저 짠돌이, 짠순이들이 아끼려고 하는 것들이라고만 여겼는데. 제가 그걸 할 줄은.
재활용 부분에서는 초보인지라 방법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용하고 있는 그 물건들에 한해서 할 수 있는 재활용 방법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 나만의 물건 재활용 방법
1. 헌 옷 재활용
주로 흰색과 검은색 면티를 잘 입는 편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면티만 주구장창 입고 다니기도 했고요. 봄이나 가을에는 난방이나 원피스 안에 면티를 받쳐 입고. 겨울에는 내복 대신 면티를 주로 입었어요. 거의 365일을 입고 생활했다고 해도 무방 할 정도랍니다.
그러다 보니 목이 늘어나고 색이 바래거나 천이 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그런 옷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사실 그런 옷들은 나눔도 쉽지가 않습니다. 중고판매는 더더욱 할 수가 없고요. 그렇게 본격적인 재활용이 시작되었습니다.
① 행주로 사용하기
저는 꽤 오랫동안 소창행주를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인 줄도 몰랐던 행주가 구멍이 났지 뭐예요. 다시 구입을 해야지라는 생각에 쇼핑몰 앱을 열던 순간 쌓아 놓았던 헌 옷들이 보였습니다.
면티 하나를 꺼내 등판 부분을 오려 냈습니다. 가위질이 서툰 탓에 삐뚤빼뚤하긴 했지만 넓적하게 잘린 옷은 저희 집의 궂은일을 담당하는 행주가 되었어요. 소창행주가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잘라 놓은 헌 옷들이 넉넉했기에 잠시 행주 구입을 뒤로 미뤘습니다. 그 덕에 행주 사는 지출도 줄일 수 있었네요.
② 오염방지매트로 사용하기
싱크대 상부장에 있는 양념장들 밑에는 항상 키친타월을 깝니다. 잘 사용한다고 해도 양녕들이 묻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요. 더러워질 때마다 바꿔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
지금은 그 키친타월 대신 헌 옷을 잘 접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더러움이 탈 때마다 갈아주고 있고요. 처음부터 헌 옷을 사용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주로 신발 박스난 라면박스에 넣어 놓곤 했는데요. 상부장에 있는 양념병을 꺼내기가 영~ 불편하더라고요.
그러다 만난 것이 헌 옷이었습니다. 더러우면 세탁해서 쓸 수도 있었고, 심해지면 그냥 비워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③ 미끄럼 방지매트로 사용하기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한 가지 더 배운 게 있다면 물건을 사용하기 쉽게 놓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특히 서랍장은 더 신경이 쓰였던 거 같습니다. 결국 물건을 겹쳐놓지 않고 하나하나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열고 닫을 때마다 움직임이 심해 물건들이 뒤섞이곤 했어요.
다시 정리하기를 반복하니 힘들고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헌 옷을 재활용해 서랍장 바닥에 깔아 주었답니다. 그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물건들의 미끄럼 방지를 막아주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④ 청소걸레로 사용하기
저희 집에는 유선청소기가 한대 있습니다. 사실 청소는 잘하지만 귀찮은 게 또 유선청소기가 아닐까 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무선 청소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쉽게 물건을 들이고 싶지가 않아서 참았습니다. 대신 무선 청소밀대를 사용합니다. 밀대에 부직포 대신 잘라놓은 헌 옷을 부착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물을 묻히면 물걸레질도 할 수 있답니다. 매번 부직포를 살 필요도 없이요.
이러면서 아끼는 거 아닐까요? 헌 옷 재활용으로 생활비 절약까지. 헌 옷으로 재활용을 한 후부터는 행주는 물론 키친타월도 사지 않고요. 싱크대 상부장, 하부장 그리고 서랍장 속에 깔아놓는 매트도 따로 구입하지 않습니다.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니고 뭐겠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식사 후 헌 옷으로 만든 행주로 식탁을 닦으며 주방을 마감합니다. 헌 옷으로 만든 밀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을 치우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사용이 끝난 헌 옷은 비웠습니다. 마음의 자책 없이요.
2. 종이박스 재활용 - 수납함이 최고지
쑥쑥 크는 아이들이 신발을 살 때마다 딸려오는 신발박스, 매년 명절 때마다 들어오는 선물세트 박스 등 버려지는 박스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요즘은 포장 자체를 줄이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시지만 배송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한계가 있는 거 같긴 해요. 그래서 전 오늘도 버리기 아까운 종이박스를 재활용해 봅니다.
한때 수납함은 사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색깔과 모양까지 맞춰서.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후 그런 생각은 모두 다 비웠습니다. 덕분에 물건을 버리면서 수납함도 함께 비우게 되었어요.
대신 작은 수납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 구입하지 않았어요. 왜냐고요? 작은 수납함에 딱 맞는 종이박스를 활용하기 시작했거든요. 크기가 딱인 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나 봅니다.
이제는 구입한 수납함보다 종이박스로 만들어진 수납함이 많은 저희 집입니다. 수납함으로 종이박스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개인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한 번쯤 어쩌다 생긴 종이박스를 활용해 수납도구로 사용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아니라면 그때 수납함을 구입해도 늦지 않잖아요.
버려지는 박스들이 있을 때는 다시 보게 됩니다. 더 쓰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이렇게 조금씩 습관이 되어가나 봅니다. 물건의 비움이 더딜지는 모르지만.
모임이 있던 어느 날, 차로 이동 중에 음료를 먹어야 했기에 테이크아웃을 했고, 각자 음료를 꺼내고 나니 종이 캐리어만 덩그러니 남더군요. 평소 종이박스가 생기면 수납함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반가웠답니다.
‘무엇을 담아 놓을까?’
‘그냥 더러워진 박스들을 바꿔 줄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모임중간임에도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저는 비움이 좋습니다. 그 이후에 생기는 빈 공간은 더 좋고요. 그래도 버려지는 물건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서 또 고민하고 고민합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의 쓸모를 찾아서. 지금은 그것이 헌 옷과 종이박스뿐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