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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라는 아이에 대해

by 스프링버드


이 커다란 도시의 남쪽 끝머리, 밭이 시작되고 갈수록 누추해져 가는 오두막집들이 있는 곳, 빽빽한 소나무 숲에는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이 숨어 있었다.


무대는 꾸며졌다. 이제 주인공이 나올 차례.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 사이에 요즘 들어 누군가가 극장터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린아이, 아마도 어린 소녀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소녀는 어떤 모습일까?


모모의 모습은 약간 이상했다... 키는 작았고, 대단한 말라깽이였다. 그래서 아무리 자세히 봐도 겨우 여덟 살짜린지, 아니면 벌써 열두 살이 된 소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의 머리는 칠흑같이 새까만 고수머리였는데, 한 번도 빗질이나 가위질을 한 적이 없는 듯 마구 뒤엉켜 있었다.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커다란 눈은 머리 색깔과 똑같이 까만색이었다. 거의 언제나 맨발로 돌아다녀서 발 역시 새까맸다. 모모는 겨울에만 가끔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그 신발은 언제나 짝짝이인 데다가 너무 헐렁했다. 하지만 그 애가 갖고 있는 것이라곤 어디선가 주었거나 선물로 받은 것뿐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색색가지 알록달록한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치마는 복사뼈까지 치렁치렁 내려왔다. 모모는 그 위에 다 낡아빠진 헐렁한 남자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기다란 소매는 손목까지 걷어올렸다. 하지만 소매를 잘라 낼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 키가 더 커질 것을 미리 계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언제 그렇게 주머니가 많이 달린, 멋있고도 실용적인 웃옷을 얻을 수 있겠는가.


모모에 대한 묘사는 친절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커다란 눈'은 어떤 눈일까? 까만 눈망울을 한 말라깽이 소녀는 새까만 고수머리와 치렁치렁한 치마, 헐렁한 남자 웃옷에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신비하고 모호한 이 소녀는 안갯속에 흐릿하다. 소설 속 인물들도 모모를 알 수 없어한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겨우 여덟 살짜린지, 아니면 벌써 열두 살이 된 소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점심 무렵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모모를 찾아와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래, 여기가 마음에 드니?"

모모는 대답했다.

"예."

"그러면 여기서 계속 살 작정이니?"

"예.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없어요."

"내 말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모모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얼른 대답했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꼬마야, 그럼 넌 어디서 온 거니?"

모모는 손으로 어딘가 저 먼 곳을 가리키는 막연한 흉내를 내보였다.


모모는 부모님도 모르고 모모라는 이름은 자신이 직접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는?


"그럼 생일이 언젠데?"

모모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저는 언제나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이런 느낌을 느껴 본 사람이 있을까? 언제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대체 몇 살이지?"

모모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백 살요."

마을 사람들은 모모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 장난하지 말고. 몇 살이지?"

모모는 조금 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 두 살요."

한참 후에야 사람들은 모모가 어쩌다 주워들은 숫자가 몇 개 되지 않는 데다가 셈하기를 배운 적도 없어서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숫자로 헤아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도 모모는 언제나 있었던 것 같이 느낄 것이다. 언제나 있었다는 이 느낌은 '영원히 존재'하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매력 혹은 매력적인 주인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인공에 이끌리게 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그의 허술함인 듯싶다. 그 앞에서 무장해제를 하게 되는 허술함. 방어기제를 풀어도 나를 공격하지 않을 허술함. 그리고 그 허술함은 다정함과 짝을 이룬다. 혹은 순수한 마음. 혹은 선의. 그래서 판타지의 주인공들은 어린이나 뭔가 부족한 사람일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는 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러나 다정하고 지혜롭고 가끔 용감하기도 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된다.


언뜻 떠오르는 판타지적 주인공들을 떠올려보니 나에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가 그렇고 꼭 판타지라고 할 수는 없을 <어린 왕자>의 어린 왕자가 그렇다. <돈키호테> 역시 판타지인지 아닌지 애매하지만 다분히 판타지적 인물인 돈키호테 앞에서 누가 웃음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이들 모두 내가 마음을 활짝 열어도 전혀 나를 위협하지 않을 인물들이다. 아니, 오히려 나를 꼭 안아줄 것만 같은 인물들이다. 모모 이야기를 하는 중에 돈키호테를 좀 사랑해도 모모는 당연히 기뻐하리라.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옛날, 이름까지 기억하고 싶진 않은 라만차 지방이 어느 마을에 창꽂이에 꽂혀 있는 창과 낡아빠진 방패, 야윈 말, 날렵한 사냥개 등을 가진 시골 귀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양고기보다 쇠고기를 조금 더 넣어서 끓인 전골 요리를 좋아했는데, 밤에는 주로 살피콘 요리를, 토요일에는 기름에 튀긴 베이컨과 계란을, 금요일에는 완두콩을, 일요일에는 새끼 비둘기 요리를 먹느라 재산의 4분의 3을 소비했다. 그리고 남은 재산으로는 축제 때 입을 검은 가운과 벨벳으로 만든 바지, 덧신 등을 샀으며, 평소에도 최고급 순모 옷을 입는 걸 자랑으로 여겼다. 그의 집에는 마흔이 조금 넘은 가정부와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조카딸, 그리고 말안장도 채우고 밭일도 거드는 하인이 있었다. 이 시골 귀족은 오십 줄에 접어들었으며 마른 체격에 얼굴도 홀쭉했지만 건강한 편이라 꼭두새벽에 일어나고 사냥을 즐겼다. 이 귀족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들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는 키하다, 또는 케사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어쨌든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 추측은 그가 케하나라고 불렸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별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이 이야기에서 하등 중요할 것이 없다. 이 이야기가 진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어쨌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시골 귀족은 한가할 때마다(사실은 1년 내내 한가했지만) 기사소설에 빠져든 나머지 나중에는 사냥도, 심지어 재산관리조차 제쳐두었다. 기사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광기가 지나치다 못해 급기야는 광활한 논밭을 팔기에 이르렀다.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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