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수수께끼를 내는데...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란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답은 과거, 현재, 미래. 셋은 하나지만 하나가 아닌 셋임을 우리는 항상 경험하며 살고 있다. 우리에게 올 미래가 다 쓰이는 날, 우리는 죽음을 맞는다.
박사님은 죽음인가요? 모모는 언제나 없는 집으로 오기 전, 지나와야 했던 언제나 없는 거리를 떠올렸다.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서 모모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 거리는 뒷걸음질로 지나와야했다.
모모는 그렇게 했다. 몸을 돌려 뒷걸음질을 치니 갑자기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모가 뒷걸음질을 치는 동안 생각도 뒷걸음쳤고, 숨도 뒷걸음쳤고, 느낌도 뒷걸음쳤다. 한마디로 모모의 삶이 뒷걸음쳤던 것이다!
호라 박사는 모모의 물음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주고 매시간마다 진실을 말해 주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시간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도.
"그럼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럼,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아가. 네가 살아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 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가는 게야.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둥근 은빛 성문에 닿을 때까지 말이지. 거기서 너는 그 문을 다시 나가게 되지."
"그 문 바깥쪽에는 뭐가 있는데요?"
"그럼 너는 네가 가끔 들었던 나지막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게 되지. 거기서 너는 그 음악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 하나의 음이 된단다."
박사는 물었다. 시간이 어디서 오는지 보고 싶니? 박사의 품에 안겨 모모는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느낌이 드는 무척 먼 길을 통과했다. 그리고 어떤 곳에 내렸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그곳에서 모모와 함께 있다. 모모가 보는 것을 우리도 보고, 모모가 듣는 것을 우리도 듣는다.
금빛 어스름이 모모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모는 점차 자기가 완벽하게 동그란 거대한 지붕 밑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모는 그 지붕이 온 하늘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거대한 지붕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다. 지붕 저 높은 곳 한가운데에는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거기서 빛의 기둥이 새어 나와 마찬가지로 둥그런 모양의 연못에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연못의 검은 물은 컴컴한 거울처럼 물결 하나 없이 매끈하고 잔잔했다.
연못 표면 바로 위쪽, 빛의 기둥 안에서 밝은 별 같은 무엇인가가 반짝반짝 빛나며 위엄 있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모는 그것이 검은 거울 같은 수면 위를 왔다 갔다 하는 거대한 추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추를 매단 곳은 없었다. 추는 공중에 떠있는 듯 보였고, 무게도 없는 듯했다.
별의 추가 천천히 연못 가장자리에 접근하자 어두운 물속에서 커다란 꽃봉오리가 떠올랐다. 꽃봉오리는 추가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점점 벌어지더니, 마침내 활짝 피어서 잔잔한 수면 위에 떠있었다.
모모는 일찍이 그토록 찬란하게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빛나는 색깔로만 만들어진 꽃 같았다. 그런 색깔이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별의 추는 한동안 꽃 위에 머물렀다. 모모는 주변의 모든 일을 까마득히 잊고서, 넋을 잃고 꽃을 바라보았다. 꽃의 향기는,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모모가 간절히 그리워했던 그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추가 천천히, 정말 천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추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그 아름다운 꽃도 시들기 시작했다. 모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장 한 장 꽃잎이 떨어지더니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 모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무엇이 영원히 자신을 떠나 버린 것 같았다.
추가 검은 연못의 한가운데에 이르자 그 아름다운 꽃은 완전히 스러져 버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맞은편에서 꽃봉오리 하나가 어두운 물속에서 자태를 드러냈다. 추가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자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더욱 아름다운 꽃이었다. 모모는 꽃을 가까이서 보려고 연못 주변을 빙 돌아갔다.
그 꽃은 앞의 꽃과는 전혀 달랐다. 모모는 그 꽃의 색깔 역시 전에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번 꽃의 색깔이 더욱 다채롭고 고결해 보였다. 향기도 달랐는데, 더욱더 황홀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꽃의 신비스러운 세세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별의 추가 다시 방향을 돌리자 그 아름다운 꽃은 시들고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못 저 깊은 곳으로 한 잎 한 잎 가라앉아 버렸다.
추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맞은편에 이르렀다. 추는 처음과 같은 곳이 아니라 조금 더 앞쪽까지 나아갔다. 그러자 첫 번째 지점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꽃봉오리 하나가 솟아나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모모의 눈에는 이 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았다. 꽃 중의 꽃,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신기한 꽃이었다!
모모는 이 완벽한 꽃마저 시들기 시작해 어둡고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자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호라 박사와의 약속을 생각하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추는 맞은편에서도 한 걸음 더 멀찍이 나갔고, 그러자 새로운 꽃이 어두운 물속에서 떠올랐다.
점차 모모는 새로 피는 꽃은 번번이 먼젓번 꽃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갓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모는 연못가를 빙빙 돌면서 꽃들이 차례차례 피어나고 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아름다운 광경은 아무리 보아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모는 차차 그곳에서, 그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어떤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붕 한가운데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기둥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모모는 이제 그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저 먼 곳의 나무 꼭대기에서 부는 살랑대는 바람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켜져 마침내 폭포 떨어지는 소리, 아니, 바닷가 바위에 세차게 부딪치는 파도 소리만큼이나 커졌다.
모모는 이 웅장한 울림이 만들어 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이 계속해서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헤아일 수 없이 많은 음이 어울려 지어내는 소리라는 것을 점점 더 또렷하게 느꼈다. 그것은 음악이었지만, 동시에 음악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기도 했다. 모모는 불현듯 그 음악을 다시 기억해 냈다. 초롱초롱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앉아 정적에 귀 기울일 때에, 이따금씩 아득히 먼 곳에서 나직이 들려왔던 바로 그 음악이었다.
이제 울림은 더욱 맑고 밝아졌다. 모모는 이 소리 나는 빛이 제가끔 다른 꽃들, 똑같은 모습이 다시는 없는, 단 하나뿐인 모양의 꽃들을 어두운 물속 깊은 곳에서 불러 내어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귀를 기울일수록 모모는 낱낱의 소리를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금과 은, 그리고 다른 온갖 종류의 금속들이 어울려 내는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그때에 그 울림의 뒤쪽에서 문득 전혀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소리였다.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졌기 때문에 모모는 서서히 낱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찍이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낱말들이었다. 해와 달, 유성과 별들이 제 진짜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이름들에는, 해와 달과 유성과 별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함께 영향을 미쳐 시간의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탄생시키고 다시 소멸시키는지, 그 비밀이 담겨 있었다.
모모는 문득 이 모든 말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먼 곳에 있는 별을 비롯해 온 세상이, 엄청나게 커다란 단 하나뿐인 얼굴을 모모에게 돌리고 모모를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이곳은 모모의 마음 속이었고, 모모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모 자신의 시간이었다.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저마다 별의 추가 흔들리고, 검은 연못에 완벽하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다른 꽃이 피고 지며, 음악이 울리고, 우리에게 어떤 엄청나게 커다란 얼굴이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작가 미하엘 엔데가 상상한 우리의 시간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은둔하고, 누군가를 돌보거나 외면하고, 화를 내고 사랑하고 웃고 우는 시간들. 일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운동을 하거나 잠을 자는 시간들. 무수히 많은 삶의 양태들을 우리는 짓는데, 어느 하나 시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시간을 잘 쓰는 것이고 잘 쓰지 못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게 어쩐지 모두 부질없는 짓 같다. 항상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고 (설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조차 뭔가를 하는 행위가 아닌지) 내 시간의 꽃은 피고 진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러니 그저 아무 말 않고(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그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내 앞에 다가온 그 일을 차분히 할 뿐이다. 가끔은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음악이면서 음악이 아닌 화음,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하는 울림, 거대한 얼굴이 나를 향하고 건네는 말, 소리 나는 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