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형 인간이 아니더라 (2)

열두 번째 인터뷰: 퇴사지망생 권준형

by failit

*했다, 실패 매거진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 형식의 글입니다. 성공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1부에 이어서



좋은 회사, 나쁜 회사, 이상한 회사. 세상엔 여러 회사들이 있다. 그래서 다들 힘겹게 취직하고도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한다. 하지만 퇴사지망생 권준형의 말처럼, 단순히 내가 ‘회사형 인간’ 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깨달은 다음이다. 어떤 행동 어떤 선택을 할 건지 선택이 필요하다. 권준형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Q. ‘내가 조직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인정하는 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A. 그렇죠. 말했지만, 저는 작은 팀에 속할 때마다 얼추 그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는 할 일을 해내는 편이었고. 크게 미움받은 적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 나는 팀 플레이에 잘 맞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 번의 직장생활 끝에 깨달은 거죠. 어우… 아니었구나. 옛날에 있던 조직들은 운이 좋아서 나랑 같은 비전을 공유했던 조직이었구나. 저는 ‘조직에 잘 맞는 인간’ 이라기보단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사람’ 혹은 ‘내 비전에 맞춰 일하고픈 사람’이었던 거예요.


훌륭한 팔로워가 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더라. / 출처 : Google


Q. 근데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사람’ 이란 정의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 나는 회사형 인간이 아닌가 보다’라고 속단하는 것도 걱정은 되는데요. 스스로 의심은 없나요?

A. 있죠. 있어요. 정말. 그래서 퇴사 후에 일종의 실험을 해보려는 거예요. 이 실험에는 조건들이 있어요. 하나는 ‘나는 과연 혼자 일하는 것에 잘 맞는가?’ 이건 말 그대로 확실한 판단을 위한 실험 조건이죠. 그래서 당분간 회사가 아닌 개인, 혹은 소규모 조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 해요.

다른 하나는 일단 ‘수익이 아닌 다른 가치를 창출해보자’는 것.


Q. 첫 번째 조건은 어떻게 해나가실 계획인가요?

일단, 당장은 프리랜서가 꿈이에요. 저는 제 시간을 제가 컨트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인가 통제당하는 기분이 싫었던 것 같아서요. 직장생활이라는 게 제 시간을 월급이랑 교환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을 시간 동안 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인가 계속 일을 해내야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프리랜서라는 좋은 말의 백수를 해보려고 해요. 작은 일이겠지만 그마저도 제가 무능하면 오래 일해야 되고, 제가 유능하면 짧게 일해도 되도록 만들어 보고 싶고요.


Q. 프리랜서들은 프리랜서가 결코 시간을 편하게 쓰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맞아요. 저도 아마 그렇게 되겠죠. 다만, 상당수의 유능한 선배들이 더 많은 이라는 유혹 때문에 프리랜서의 고통에 빠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은 숨쉬기에 필요한 만큼만 벌어보면서, 저라는 인간이 '혼자'라는 조건이 중요한 사람인지부터 실험해 보고 싶어요. 뭐 적성에 맞다는 판단이 되면 그때부터 돈 좀 쫓아 보려고요.


Q. 그러면 두 번째 조건은 어떤 의미에서 내거신 거죠? 어쩌면 회사생활에서 기업과 충돌했던 이유가 ‘기승전-수익창출’ 때문이라고 보시는 걸까요?

A. 어느 정도 맞아요. 그게 ‘하나의 이유’ 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수익’ 부분을 일종의 변인통제로 걸어보려는 거예요.

저는 아직 자본주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것 같아요. 그 행위를 낭만이라고 규정짓고 저만의 낭만을 추구하는 거죠. 제가 밖에서 해왔던, 그리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니까, 저란 사람이 자본주의 논리와 동떨어진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하지만 회사에서는 좋은 말들을 덧붙여도 결국은 ‘수익’을 제외하고는 말하기 어렵죠. 저는 돈을 받고 그만큼 돈을 만들어내야 해요. 맞는 거예요.


물론 개뿔 굶어 죽어가면서 낭만 타령할 수 없으니, 당분간은 굶어 죽지 않는 수준으로 돈을 벌고자 해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지금껏 자본주의의 최전선만 돌아다니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전 절대 자본주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그 위에도 무엇인가 있다고 믿는 거지.

모순 킹입니다.


모순 킹 만세, 자본주의 만세 / 출처 : Google이미지



Q. 그런 관점에서 보면 퇴사가 아깝다고 느끼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워라밸 시대잖아요? 맡은 일만 잘 해내면 돈도 유지되고. 퇴근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A. 맡은 일만 잘하는 거 어렵던데ㅋㅋ 맞아요 아깝죠. 직장생활로 치면 대체로 좋았어요. 일단 저는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니까. 이제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없어질 행복이죠. 그리고 함께 일하면서 만난 분 중에 절 괴롭게 하는 사람 조차 일단 없었으니까. 저는 지나칠 정도로 과분하게 많은 배려를 받고 자란 응석받이라고 해야 되나. 배가 불렀죠.


음, 그런데 한 번은 갑작스럽게 생긴 야근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외부 일정이 있었고요. 평소 외부에서 취미로 하던 프로젝트에서 너무 중요한 미팅이 있었어요. 그래서 팀원 분을 뒤로한 채, 그 일을 보러 나갔죠. 그리고 회사로 부랴부랴 복귀했는데, 사무실 문을 들어오는 순간 팀원 분이 홀로 야근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순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와 돈 한번 벌어보겠다고 세상에 민폐 끼치지 말자”


이 얘기의 핵심은 제가 생계를 유지한답시고 그저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제대로 일하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거예요.

요즘 말하는 근로시간을 지키는 것, 억지스러운 야근은 하지 않는 것. 다 좋고 중요한 거 맞습니다만, 결국 필요에 따라서는 일에도 무게를 줘야 할 때가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돕기 위해 야근도 할 수 있지. 사실 제가 그걸 잘 못하는 거죠. 그래서 회사형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알량한 생각들이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기분이 든 이후부터, 제가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요.

워라밸의 핵심은 일도, 삶도 아닌 밸런스다. 일에 소홀해도 문제는 문제. / 출처 : Google 이미지



Q. 그렇군요 그럼 퇴사 후 시작할 ‘나 자신에 대한 몰이해를 벗어나기 위한 실험’에서 예상 중인 난관이나 실패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첫 번째는 ‘돈을 못 벌거다’라는 것. 과연 돈을 못 버는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고고하게 버틸 수 있을까? 사회적 압박 속에서 내가 생각한 ‘나 자신의 신념’ 이 어디까지 무너지게 될까? 그게 사실 제일 두렵죠. 왜냐면 그건 지난 수십 년의 삶과 생각들, 내뱉었던 무수히 많은 말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기 때문에. 이 인터뷰도 곧 인생 흑역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계속해서 ‘돈 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꼼수를 찾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돈 버는 일의 목적은 그냥 ‘세상에 유해하지 않은 일을 하자’로,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건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자.’ 이렇게 조건을 걸어두면 어느 정도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또 다른 난관은 아마… ‘아 퇴사해서 배우는 것보다, 안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구나’라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 정도겠네요. 사실 이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어차피 회사에 뼈를 묻지 않는 한, 5년 뒤 10년 뒤에는 언젠가 내 일을 찾아서 퇴사를 할 거예요.

그리고,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나는 무엇이 되었을 텐데, 라는 가정과 비교는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제가 퇴사를 하는 순간 벌어 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지금 건강이 굉장히 안 좋은데, 회사 계속 다니다 엄청 아파서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잖아요.



Q. 마지막으로 지금 하신 실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비록 하는 족족 실패는 했지만, 제 삶이 오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얼마 전,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해주신 말이 있어요.


“살아오는 순간순간에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답을 선택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었고 그 선택이 정답일 수밖에 없었다” 는 말이었는데, 저한테 너무 의미 있는 말이에요.


어차피 제 선택들은 항상 정답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일단 제가 어떤 놈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어요. 저는 한 번도 조직 밖에서 일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물론 한 1년, 아니 솔직히 3개월 뒤에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몰라요.


뭐 다시 취업해보겠다고
회사를 찾아 헤맬 수도 있어요.
또 모르죠. 이 실험이 끝나면,
'회사'를 차릴지도?

그냥 일단 깊은 생각 안 하고
저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인터뷰이: 권준형
글: 개
사진: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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