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회피형 애착인 사람이 자꾸 자신의 단점을 어필하는 이유
나는 자신감 있고 편안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타인부정, 자기부정형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판으로 관계를 맺는지 궁금하시면 → 공포회피형, 사르트르처럼 살지 말자) 즉, 타인도 못 믿고 나도 못 믿는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쉽게 남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며, 자아성찰을 꼼꼼히 하기 때문에 내적으로 성장을 멈추는 일이 없다.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쩌다 쉽게 맺어지는 관계도 있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날 안심시켜 주면 된다. 돌아보니,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뒀던 것 같다. 동동이(가명)를 만나기 전까지는...
동동이와의 관계는 좀 엉망진창이었다. 동동이는 나를 알아서 안심시켜 주는 안정형 애착 사람이 아니었다. 동동이 역시 타인 부정, 자기부정을 하며 살고 있는 걸로 추측된다. 동동이와 계속해서 부딪치고 어딘가 빗나가면서도 나는 동동이를 참 좋아했다. 동동이만의 좋은 점들이 무수했다, 물론이다. 근데, 나 같아서 사랑스러웠다. 나 같아서 안쓰러웠고, 나 같아서 사랑받고 싶었다.
동동이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자꾸 내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줬다. 희한하게도 내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보이고 싶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잘 보이고 싶으면 자신의 좋은 점을 어필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자기를 깎아내리면서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기본 중 기본을 내가 몰랐을 리 없는데... 나는 동동이가 알아서 나를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면서 계속 나의 단점을 어필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동이와의 관계가 망한 뒤에 자아성찰을 많이 해 봤는데, 동동이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동동이를 좋아하니까, 동동이가 나를 좋아하면 나도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니까 동동이가 나의 안 좋은 부분까지 좋아해서 날 안심시켜 주길 바랐다. 그래서 동동이가 나를 떠나는지, 안 떠나는지 계속해서 시험해 봤다. <이것도 괜찮다고? 그럼 이건 어때? 난 진짜 이상한 인간이야. 이런 부분도 괜찮다고 해 줘. 이런 것도 좋아한다고 해 줘.> 동동이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 곁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성인군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모자란 사람이야,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재미가 없고,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야. 그런데 동동아, 나를 사랑해 주면 내가 이상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재미있고, 매력적이게 돼. 그러니 부디 사랑해 줘 봐 봐.>
물론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동동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척했고, 내가 동동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 보았다. 쿨한 척도 많이 했고, 동동이랑 먼저 연을 끊으려고 빌린 물건을 돌려 주고, 빌려 준 물건을 다 회수하기도 했다. 근데 본질적으로는 동동이의 사랑을 거의 구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동동이의 에너지를 받고 싶어서 발버둥치느라, 나의 에너지를 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동동이에게 꽃을 사 주고, 웃긴 이야기를 해 줬지만, 그렇게 얕은 수라니. 꽃이야 돈 있으면 사는 거고, 웃고 싶으면 코미디를 보면 되는데. 내가 말도 안 되는 걸 구걸하고 있었다는 걸, 결코 진정한 의미로 동동이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는 걸 깨달으니 수치스러웠다.
너무 많이 자아성찰을 하다 보니 피곤해져서였는지, 요가를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쩌다가 나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창피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사랑을 구걸했어도 괜찮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렇다고 동동이 걔는 그렇게 슬금슬금 도망가 버리다니. 동동이도 나만큼 어설펐구나. 내가 불안했던 것도, 혼란스러워한 것도, 자꾸만 동동이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것도 나의 맥락 안에서 모두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감정이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같은 마음이었을 테고, 그런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이상하게 뚝딱 거리는 것 역시 당연하다. 동동이가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나는 충분하다. 동동이는 사랑할 점이 무수히 많은 사람이지만, 나도 동동이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이다. 내가 두렵고 겁이 나서 동동이에게 나의 좋은 모습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은 건 실수였다. 근데, 실수는 할 수 있다. 동동이는 동동이의 이유가 있었고, 나에게는 나의 이유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에 버금가는 공포회피형 애착유형인 동동이를 만나서 너무 늦지 않게 배웠다. (배웠다는 거지 마스터 했단 말은 아니다.) 남이 나를 변호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내가 나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 주고, 변호하고, 대변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상하지 않아, 나는 모자라지 않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재미있고, 매력적이야. 그리고, 너 역시 그래.
나에게, 모두에게, 기회가 된다면 동동이에게도 진심을 다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말로 말고, 나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와 시선 하나하나에서 이 마음이 묻어나게 하고 싶다. 근데 어떻게 하는 걸까? 그 부분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 녀석 기특하고 대견해. 쓰담쓰담. 앞으로 나를 잘 변호해 주는 사람이 되자.
생각이 많아서 인생 살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글이라도 많이 쓰려고요. 누구나 생각에 시간을 쏟아붓지는 않기 때문에, 저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깨달음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구독하고 종종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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