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그렇게는 안 하면서
“그래서 배우는,
스스로가 solid 한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손에 잡히는 것.
내게는 그것이 practice 였다.
(2022.11.05 나의 메모장에서)“
감정적인 열심보다 물리적인 원리
‘팩폭’은 불쾌하다. 아프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아픔 못지않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내 태도가 지금까지 ’만년 주연 지망생‘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는 진짜로 내가 해야 할 노력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있었다.
노력과 연습에는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 ‘는 ’감각’ 이상의 것이 필요한 것이다. ‘열심’은 어쩌면 감정적으로 판단되어 과대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평가할 때, 감정적인 열심보다는 원리에 기반한,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모니터링(monitoring)과 피드백을 기준으로 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떻게 연습하고 노력하고 ‘열심’을 기울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유효’한 과정을 만들어 줄 것인가는 각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레시피와도 같지 않을까?
요리도 그렇게는 안 하면서
어쩌면 연기를 ‘요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요리의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 재료에도 수십, 수백 가지의 요리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이 간다.
그만큼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리재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요리도구들에 대해서, 다양한 조리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요리를 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가지고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며, 그에 맞는 요리법을 매칭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사실 요리에 있어서 아주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필요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기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나를 포함한 수많은 배우들이 어떤 하나의 ‘메소드’ 즉 ‘방법론’에 ‘정답’이 있으리라 여기고 그 ‘하나’만을 찾아 헤매거나 ‘하나’만을 파헤치려는 경향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요리사로서 요구받은 요리가 ’튀김요리’라면 ‘튀기기’ 기술을 익혀야 할 것이고 ‘찜 요리’라면 ‘찜’ 기술에 능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로서 만나게 되는 작품, 인물,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프로덕션과 스테프 그리고 작가와 감독들은 우리가 아는 요리의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하며 서로가 추구하는 바가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재료, 한 가지 요리, 한 가지 조리법만 연마하고 있는 요리사처럼 하나의 조리법으로 모든 요리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아무리 그것에 ‘장인급’으로 자신 있을 만큼 열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할지라도 끝끝내 ‘왜 이것이 저 요리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인가’ 하며 낙담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하나를 가지고 ‘먹고사는 배우’도 많지만 말이다.
‘연습’에서 붕어빵의 팥만큼 중요한 것
‘진짜 연습’은 ‘연구’로써 완성된다. 그리고 ‘연구’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질문들로 시작을 할 수도 있겠다.
- 스스로의 솔직한 실력과 인성을 갈고닦을 나만의 도구 즉, 기술적/정신적 ‘Tool’이 있는가?
- 있다면 무엇인가?
- 그것이 정말로 유효한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이바지하고 있는가?
-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의 주제를 하나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있는가? 무엇인가?
- 없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찾을 것인가? 배울 것인가? 만들 것인가?
막연하고 답이 없을수록 더욱 질문하고 직면해야 나의 ‘노력’이 유효하게 적용되어 ‘성장’이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다음은 내가 막막하다는 이유로 연습에 손이 가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묻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질문들이다.
- 내가 하기로 한 일(연습, 촬영, 오디션 등)들이 무엇 무엇이 있지?
- 우선순위를 정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가장 나중에 해도 될 일은 무엇이지?
- 이 일(연기)을 어떻게 해내고 싶지?
- 그 목표점을 위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렇게 묻다 보면, 여전히 만리 앞 천리 앞은 막막해도 지금 당장 내가 한 걸음 걸을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생긴다. 신기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