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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Jan 09. 2019

2-2 토론토 너구리, 영이

세상의 모든 장사꾼이 그렇듯 실속 없는 고객은 정중히 돌려보내는 것이 현명하고 작은 이득이라도 있을 것 같은 고객은 실력을 과장하고 신뢰에 친절을 덧입혀 그이를 내편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항상 이득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끔은 시간낭비인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길게 보내기도 하고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한다. 이민자의 삶이 팍팍하고 외로운 데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버거운 일이 꼬리를 물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나서서 도와줄 든든한 누군가를 찾거나 편안하지 않은 삶을 하소연할 만만한 누군가를 찾기 마련이고 나는 간혹 그들에게 ‘그 누군가’가 되는 것을 마다 할 수 없다.     


몇 년 전 그 아이도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를 찾아 내 사무실에 왔다. 영이는 그때 고작 열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옛날 너구리 라면 광고 카피처럼 오동통한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아이지만 만날 때마다 나를 당황시켰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던 너구리가 무심히 힐끗 쳐다볼 때 마주친 그 눈빛을 가진 아이였다. 그날은 멀끔하게 생긴 남자도 같이 왔다. 배우자 초청을 하겠다고 했다. 영이는 몇 개월 전부터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캐나다는 나이가 어려도 써주는 사람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영이도 편의점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페스트 푸드점 같은 곳에서 일 을 하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수입이 너무 적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일자리를 소개하지는 않는다고  돌려보냈지만 몇 번 더 비슷한 이유로 찾아와서 푸념인 듯 체념인 듯 제 얘기를 하다 갔다.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화장을 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었으니 딱 그 또래 아이들의 차림새였다. 하지만 지능이 낮은 아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푼수 없이 수다스러웠다. 어떤 때는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산전수전 다 겪고 막장까지 흘러 들어온 촌부 같기도 했다. 수치스러울 법 한 이야기를 목욕탕 사우나에서 동네 아줌마 수다 떨듯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쏟아 낼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했다.


언제나 평일 이른 오후,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학교는 왜 안 갔는지 물었더니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한다는 투로 “ 안 가도 돼서 안 가요. 그래도 졸업을 할 거예요”라고 했다. 영이는 영주권자다. 몇 년 전 영이네 가족은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 캐나다에 왔다. 그런데 부모는 캐나다에 사는 동안 불화가 끊이지 않더니 영이의 아빠가 먼저 가족을 두고 혼자 한국으로 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도 두 살 터울 남동생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영이만 남았다. 영주권이 있으니 학비를 낼 필요도 없고 요령껏 세금 보고를 하면 영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수당을 받을 수도 있다는 계산을 했다. 큰돈 안 들이고 유학 보낸 셈 치자며 영이만 남겨두고 간 것이다.


부모들이 한국에 가서 이혼했다는 얘기를 남동생에게 들었지만 영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부모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캐나다 생활을 즐기면 됐다. 문제는 영이가 9학년이 될 무렵부터 시작됐다. 들쑥날쑥 보내오던 생활비가 어느 날부터 확연히 적어지더니 급기야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 간간히 오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한인 단체나 교회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거들기 좋아하는 어른들은 캐나다 정부에 도움을 받아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캐나다 정부에서 영이의 상황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웠다. 한국으로 쫓겨나거나 고아원 같은 데로 끌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모와는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다. 영이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소문으로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한국의 학교에 가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 간다고 해서 캐나다보다 풍요롭거나 편안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부모도 영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가끔 엄마가 전화 너머로 “힘들면 한국으로 들어오라” 고 했지만 그 말속에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고 했다. 렌트비를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자취하는 돈 많은 유학생 언니 오빠들 집에 얹혀살기로 했다. 먹고사는 일의 대부분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쩨쩨하게 굴지 않는 사람’을 찾아서 형편 닿는 대로 옮겨 다니면서 살았다. 어떤 오빠 집에는 강아지도 있었다. 영이는 강아지가 좋다고 했다. 언니 오빠들은  영이를 좋은 차에 태워 여행도 데리고 갔고 맛있는 것도 사줬다.


언니 오빠들이 자주 데려가는 한국 밥집을 가장 좋아했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잠시 머물렀던 한국인 홈스테이에서 나온 후 항상 그리운 한식은 먹어도 먹어도 맛있었다. 어느 날 영이에게 그 언니 오빠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더니 노스욕 중심가에 학교 몇 곳의 이름을 대면서 언니 오빠들이 그 학교 학생이거나 졸업생들이라고 했다. 광역 토론토에는 토론토 다운타운을 기점으로 남북을 관통하는 영 길(Yonge Street)이 있다. 토론토 지하철 1호선은 그 영길 선상의 노스욕 (North York) 지역  핀치 길(Finch Avenue )까지 이어진다. 다운타운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닿는  마지막 종착역  인근에는 한글 간판이 빼곡한 한인 타운이 있다. 노래방, PC 방, 당구장, 한국식 중식당, 냉면, 불고기, 갈비를 파는 고깃집, 감자탕 집, 부대찌개 집, 한국식 튀김닭, 매운 떡볶이집 등등 한국에 가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한국 음식점이 즐비하다. 한국 책을 팔거나 빌려주는 서점도 있고 크지는 않아도 있을 것은 다 있는 한국 마트가  2~3백 미터 간격으로 네 곳이나 있다. 유학생들을 위한 학원도 있고 한국 스타일 팥빙수집, 떡집, 빵집도 있고  최근에는 한국 화장품 가게가 몇 군데 생겼는데 중국인들이 주 고객인듯하다. 운전교습소도 있고 어느 은행에 가든 한인 직원 한두 명씩은 상주하고 있으며 변호사나 법무사 부동산 업자, 보험회사, 한인이 운영하는 치과, 정신과나 산부인과도 있고 한국인 약사가 있는 약국까지 그야말로 한국하고 별다를 것 없이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한인 타운이다. 노스욕, 영엔 핀치(Yonge & Finch) 지역에 살면 영어 한마디 못해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고 경제사정만 허락한다면 짜장면, 탕수육을 비롯한 돼지고기 김치찜이며 순두부찌개 같은 전통적인 한식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2018년 4월. 어느 지질히도 못난 백인 남자가 미니밴을 인도로 몰아 질주하면서 한인 3명을 포함한 십여 명을 치어 사망케 한 사고가 있던 곳도 하필이면 이 지역이다. (여성 혐오 때문에 저지른 범죄였고 경찰 총에 맞아 장열 하게 전사해  찌질이들의 영웅이 되고 싶었던 범인은 저보다 약한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루저’가 되어 법정에 세워졌다. 미국 경찰이었다면 범인의 소원 대로 길거리 한가운데서 범인을 총살했겠지만 점잖은 캐나다 경찰은 범인을 생포했다. )   영이는 그 동네를 친구들과 기웃거리다가 유학생 언니 오빠들 무리에 끼게 되었다. 그들은 주로 칼리지를 다니거나 휴학 중이거나 간혹은 토론토 대학이나 욕 대학 같은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중에는 월세 2~3 천불짜리 (2~3백만 원) 콘도에 살면서 벤츠나 BMW 같은 고급차를 몰고 영이에게 잠자리 제공은 물론 밥값이며 생활비까지 별 부담 없이 베푸는 누가 봐도 잘 사는 집 자제인 통 큰 재력가도 있었고 같이 어울려 다니기는 하지만 단독 주택 지하방에 살면서 주머니 사정을 항상 걱정하는 자칭 흙 수저 언니 오빠들도 있었다. 사는 모습은 제각각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달랐지만 같은 고등학교나 인근의 비슷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인 유학생들이었다.


종이책 구입이 어려운 분들은 카카오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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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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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전편을 읽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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