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 혜진 Jan 09. 2019

4-3. 음주운전.

그놈의 회식이 화근이다. 회식을 마치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음주운전을 했고 어느 날 ‘운이 없어서’ 단속에 걸린 것이다. 이주 대행업체와 계약서를 쓰면서 수속 진행 중에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와  범죄기록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건성으로 들었다. “음주 운전하지 마세요. 책임 못 집니다 ”라는 말에 “음주운전 안 하겠습니다” 했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두 달 전쯤 음주단속에 걸린 것이다. 


남편은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것을 처음부터 김 미영 씨에게 알린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혼자 수습을 하려고 했다. 수속 대행을 맡긴 업체에 상황을 얘기했고 어떻게든 도와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음주운전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경각심을 심어줬어야 하는데  대충 설명하고 말았으니 근무 태만 아니냐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랬더니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돈이 몇백만 원 필요하다고 했다. 서슴없이 돈을 건넸다. 곧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이 돌아왔다. 당황스러워 이주 업체에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 물었다. 이주 업체의 설명은 경찰청 범죄기록 발급 시스템이 바뀌는 바람에 도와주기로 했던 경찰관이 손을 쓸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경찰청 기록 보관 시스템에 접근해서 범죄 기록을 경찰관이 타이핑해서 발급해줬다. 발급해주는 경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내용을 바꿔서 출력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중앙 시스템에 있는 내역을 그대로 출력해야 하고 발급한 내역이 기록되고 보관도 된다. 그러니 함부로 기록을 바꿀 수도 없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경찰청 범죄기록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나도 그 상황을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어서 알만한 내용이었다. 


이주 업체 사장들과 오래전부터 같이 골프를 치는 경찰관이 한 명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그의 관할 지역은 경기 북부 어느 외곽 동네였다. 이주업체 사장을 통해 소개받은 고객이 그 경찰관을 찾아가면 ‘해당 사항 없음’이 찍힌 범죄 기록 회보서를 발급해줬다. 고객이 이주업체에 전달한 돈은 그 경찰관에게 갔을 테고 이주업체 사장들은 그 경찰관을 깍듯이 모셨다. 캐나다 투자 이민 수속으로 몇천만 원씩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데 고객이 범죄기록 때문에 영주권을 못 받는다면 커미션도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고객의 범죄기록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을 테고 이민 대행사 사장들은 백방으로 끈을 댔을 것이다. 


그 경찰관은 투자 이민고객만을 위한 보험 같은 존재였는데 김 미영 씨 남편이 통사정을 하니 그 방법을 시도를 해본 듯하다. 그런데 그나마 운이 따라주지를 않았나 보다. 그 경찰관 하나만 범죄기록 회보서를 조작한 것은 아니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살던 투자이민 신청자가 본인의 고향인 지방 어느 곳에서 범죄기록을 발급받아 온 적이 있다. 그 고객과 처음 상담차 만났을 때 음주운전 기록이 두 개 있다고 했다. 하나는 2년이 넘은 것이었고 하나는 2년 이내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캐나다 이민국에서 <실효형 포함된 범죄기록 회보서>를 요구하지 않을 때였으니 2년 이상 된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2년 이내의  음주운전 기록은 영주권 수속에 문제가 되었다. 그 내용을 설명했더니 고객은 범죄기록 회보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고객의 서류를 샘플로 보여줄 수  있었지만 꺼림칙한 마음에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은 범죄기록 회보서를 출력해줬다. 고객은 그것을 보면서 “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출력해준 것과 비슷한 모양의 범죄 기록 회보서를 들고 돌아왔다. 고객의 이름 주민번호가 기입돼있었지만 범죄기록에는 ‘해당 사항 없음’ 뿐이었다. 


고객은 으쓱한 표정으로 “알아서 해온다고 했잖아요” 했다.  당연히 그 고객은 연방 투자이민 프로그램으로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 그런 고객이 몇 명 더 있었으니 그 당시만 해도 능력껏 공문서 위조가 가능했던 것 같다.  불과 10년도 안된 얘기니 지금이라고 해서 같은 일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세상에는 용케도 먹을 것을 찾아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능력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못하는 게 바보'인 나라니까. 김 미영 씨는 남편의 ‘그 일’을 어젯밤에 알았다. 그리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하필이면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는 PA day (한 달에 한 번 공립학교 선생들의 교육이나 회의 등이 있는 날. 그날은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간다.)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던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의 음주 측정치는 0.1이 넘어서 벌금도 어마어마하고 면허도 취소된다고 했다.  무슨 벌을 받든 상관없는데 영주권 수속이 문제다. 이제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제 전화 통화하면서 화가 나서 차라리 어디 가서 죽어 버리라고 했어요. 음주운전을 하지 말던가 걸리지를 말던가 걸렸으면 뉴스에서 듣는 것처럼 음주 측정을 피해서 차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가던가 아니면 어떻게든 해결을 하던가. 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선생님 소리 듣던 사람 입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전화해서 방법이 있을 테니 찬찬히 생각해보자고 달랬어요. 남편도 일 저질러 놓고 얼마나 후회하고 있겠어요. 남편은 술을 적게 마시면 음주운전을 안 해요. 그런데 더 많이 마셔서 만취 상태가 되면 꼭 음주운전을 해요. 참 이상하죠? 술을 많이 마시면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더 용감 해지나 봐요. “   


김 미영 씨는 잠시 소리 내서 웃는 시늉을 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소리만 경쾌했다. 엄마의 웃음소리에 대기실에서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이 우리 쪽을 돌아봤다. 아이들은 대기실을 등지고 앉아 있는 웃는 엄마의 들썩이는 등만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웃으니 좋은 일 인가 싶었겠지.   


“ 한국은 술을 적당히 마시지 못하는 나라예요. 마셨다 하면 죽기 직전까지 마셔요. 마시기 싫어도 마셔야 하죠.  그것 때문에 여러 번 싸웠는데 결국 그놈에 술 때문에 이런 사고를 치네요. 계획하지 않은 둘째가 생긴 것도 그놈의 술 때문이죠. ” 


김 미영 씨는 고개를 숙이고  괜한 말을 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튼, 인터넷 카페 같은데 찾아보니 그 정도면 영주권 못 받는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얘기하는 내내 상당히 격앙돼 있었으니 이 대목쯤에서 대성통곡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김 미영 씨는 얘기를 다 친 후 울지 않았다. 그리고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방법 없습니다. 영주권을 포기하시거나 미국은 음주운전 같은 범죄기록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니 미국 영주권 신청을 고려해보시거나…”   


단호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다른 업체에서 수속 중인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기 싫었다. 실속 없이 시간만 낭비한 꼴이었다. 


“제 예기를 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보고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어요. 실장님... 제가 애들하고 같이 죽겠다고 하면... 제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짐작이라도 하실까요?"   


김 미영 씨는 한참 동안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울음을 참는 것이다.   


"애들한테도 못할 짓이잖아요. 미국은 생각 안 해봤어요. 일단 애들이 여기를 너무 좋아하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시도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미국도 생각해 볼게요. 다른 길을 알려주세요. 아이들 학비를 생각하면… ”   다른 길. 남편은 최소 5년 이상은 캐나다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없었다. 5년 이후에 복권 신청을 해서 사면을 받고 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할 수 있지만 5년 동안 이민법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고 영주권 신청을 철회해야 하니 학비 면제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종이책 구입이 어려운 분들은 카카오 페이지에서 전편을 읽을수 있습니다. 

https://page.kakao.com/home?seriesId=53903017




이전 16화 4-2. 영주권 신청자 자녀 학비 면제 프로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