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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랑 Oct 16. 2023

경솔한 첫 취업의 대가

조급하다고 함부로 취직하면 안 되는 이유

저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로 도망치다시피 입사했습니다.


직장을 구할 때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한 거죠? 그런데 이것도 모르는 골 때리는 사회초년생이 있었답니다. 물론 제 이야기입니다.




4학년 2학기가 되자 다들 취업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취업 스터디를 시작하고 면접용 정장을 샀더군요. 동기들은 자신만의 성실하고 반짝이는 대학 생활을 증명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죠. '취업 뽀개기'라는 다음 카페에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저는 취업 준비를 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습니다. 대외 활동도 없었고, 어학 점수도 간신히 평균점이었어요. 구직 사이트를 아무리 둘러봐도 제 스펙으로는 지원서조차 내지 못할 곳 투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학점이 걸렸습니다. 제가 회사라도 저처럼 학점이 낮은 사람을 원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방만했던 지난 세월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취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살펴봤습니다.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도 있었고, 창업을 위해 청년창업지원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예술가가 되겠다며 진로를 이탈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졸업하자마자 결혼할 거라는 사람도 있었죠. 어느 쪽도 제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사회 진출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도태되는가 싶었지요. 인생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수심이 가득 찬 채, 구직 사이트를 하릴없이 살피다가 하루하루가 끝났어요.




그러던 중 한 회사를 발견했습니다. 스타트업 회사였고, 직원은 4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월급도 무척 적은 곳 같았지만, 그곳의 지원 조건은 희망적이었습니다.


학점 무관


요즘은 신입 채용 시에 학점을 많이 보지 않습니다만, 당시에는 학점을 보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이력서를 넣고 면접까지 봐서 합격했습니다.


동기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았지요. 연봉도 낮고, 경력을 쌓아 이직하기에도 불리한 회사였으니까요. 동기들은 다시 생각해 보라며 저를 말렸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을 1년씩 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덜컥 결정하면 안 된다고요.


동기들의 말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 애들만큼의 스펙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상황을 모릅니다. 열심히 살아온 동기들과 이리저리 회피하며 살아온 저는 근본적인 출발지점이 달랐습니다.


저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로 도망치다시피 입사했습니다.




첫 직장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직장 내 인간관계 등 다른 요소는 힘들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업무는 방문 CS였습니다. 입사할 때 들었던 대표님의 말씀과는 전혀 달랐죠. 저는 회사 소유의 태블릿과 교통카드를 들고 매일 5, 6명의 고객을 직접 찾아가 제품 상담을 했어요.

다행히도 고객들은 좋은 분들이었어요.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설명을 잘 들어주었죠. 그러나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소화해야 하는 긴 이동 시간에 지치기도 했고요.


직장 생활은 원래 힘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장인이 되니 모두가 이토록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근무한 지 반년쯤 지나자 체중과 목소리가 크게 줄었습니다. 월급은 정말 작아서 알바만 할 때보다도 통장 액수가 줄었습니다. 매일 있다시피 한 야근까지 하고 나면 너무 지쳐서 자기 계발을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점점 지능도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대표님은 위축된 저에게 유감을 표했습니다. 젊은이가 패기 있고, 씩씩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야 성과도 잘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표님 나이가 지금의 저와 같네요. 그때의 저는 얼마나 어렸던 걸까요?


어렸던 저는 이 모든 것이 버거웠습니다. 점점 심장박동이 크고 빨라졌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면 시야가 어지러웠습니다. 갑자기 힘이 빠져 넘어진 적도 많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영락없는 공황 장애입니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던데, 궁지에 물린 저는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튀었어요. 갑자기 절에 간 것입니다. 모태신앙 출신인 제가 교회도 아닌 절에 갔다고요!


다니기 시작한 절은 지금의 회사처럼 스타트업 상태였습니다. 이제 막 간판을 단 조그마한 곳이었죠. 가족 같은 분위기의 신도님들은 저를 반기시면서도, 얼마나 힘들면 젊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냐며 위로하셨죠.


어느 날 회사 대표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던 젊은 주지 스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를 위한 상담 시간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주지 스님은 당장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사회생활이 힘든 것은 맞지만, 저를 상처 줄 정도로 힘들면 안 된다면서요.


저는 주지 스님과 신도님들의 응원으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침 집과 가까운 회사에서 구인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스타트업 회사와는 반대로 아주 오래된 회사였습니다. 저는 정성껏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날이 잡혔습니다.


희망이 생기면 기운이 차려집니다. 당당해진 저는 이직 면접을 위해 출근을 하루 쉬겠다고 대표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은 당돌한 요청을 수락해 주시면서 떨떠름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세상을 몰라. 이직은 쉬운 게 아니야. 그렇게 좋은 데서 너를 왜 뽑겠니.


다행히 이직에 성공했고, 저는 작고 힘들었던 회사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첫 직장의 근속 기간은 1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만약 첫 취업을 도망치듯 해버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30대가 되고 나니 점점 제 자신을 알게 됩니다. 제 특징 중 하나는 일의 '재미'를 무척 중요시한다는 거였어요.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저는 재미만 있다면 월급이 적거나, 업무강도가 높아도 신나게 수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일할 때는 자연스럽게 성과도 따라왔고요.


그러니 첫 직장은 괴로웠던 이유는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연봉 때문이 아니라, 제가 재미있게 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입사지원서를 쓰기 전에, 제 자신에 대한 이해를 우선해야 했습니다. 제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어요. 설령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더라도요.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몇 달의 시간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는걸요. 스펙이 나쁘다는 과도한 불안함 때문에 조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제 낮은 스펙으로는 그곳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차피 조건이 나쁜 회사에 취직할 거라면, 그중에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업종이나 직무를 찾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제가 재밌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신중히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취업 시즌이 되자, 매일 식은땀이 났습니다. 저는 스펙이 낮았서 구직이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오랜 준비 기간 끝에 흥미 있는 업종의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월급도 작고 야근도 많았지만, 재미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커리어를 쌓고 더 좋은 회사에 이직까지 성공했답니다.



저는 재미있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진작 깨달았다고 기억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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