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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랑 Oct 18. 2023

에필로그 - 도망을 마치며

저는 제가 좋아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첫 문장입니다. 회피형 인간인 주인공 요조는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가 많습니다. 종국에는 회피하며 살아온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평했죠.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요조라는 인물이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동족혐오였을 거예요. 저도 회피형 인간이었거든요.




저 역시 인생의 크고 작은 순간에서 도망치며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도망친 기억이 무수히 많지요. 저는 도망의 기억 몇 개를 골라 글로 적었습니다. 당시의 제 모습을 직시하여 묘사하고,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선택의 가능성을 덧붙여 보았지요. 이것은 기억을 날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날조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도망이 부끄럽지 않아요. 과거에 대한 직시는 과거를 이해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더라고요. 나름대로 도망치는 와중에도 노력하며 살긴 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현명하지 못했지만, 기특했습니다. 더 이상 저를 탓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제가 고맙습니다. 도망친 덕분에 배우게 된 것도 많으니까요. 그때마다 배운 것들 덕분에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의논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제는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도망의 파편들이 모여,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가 좋거든요. 그러니 과거의 도망은 소중한 기억입니다.



만약 저처럼 과거 때문에 힘든 분이 계시다면,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분명 당신의 과거가 소중해지는 날이 올 거예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날이 제게 왔듯이, 당신에게도 분명 올 것입니다.


만약 현재진행형으로 자책하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껏 자책하세요. 어차피 억지로 자책하지 않는 건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자책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자책도 쌓이면 나름의 통찰과 교훈을 남기니까요. 그 교훈을 찾으신다면 오늘의 당신에게 고마워할 날이 올 거예요. 분명 그럴 거예요.


누구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지금 제 마음은 무척 가볍습니다. 후회나 부끄러움을 한껏 떨어내서 그런가 봅니다. 꽤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의 마음도 가볍고 상쾌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하루를 기분 좋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도망은 홀로 외로웠지만, 날조는 여러분 덕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 도망사(史)의 날조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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