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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랑 Oct 07. 2023

세일러문과 나쁜 어른들

정말이지, 아이의 사고방식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걸까요?

저는 세일러문만 보면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고요.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2011년, 영국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어떤 일에 집중했을 경우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상이 높은 확률로 일어난다는 거예요. 이 재밌는 현상은 ‘부주의 귀먹음(inattentional deafness)’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부주의 귀먹음’과 비슷한 실험이 또 있지요. 1992년 미국에서 있었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입니다. 실험 참가자에게 농구 경기 영상을 보며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고 한 실험인데, 패스에 집중한 참가자들은 농구 선수 사이로 지나가는 고릴라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것으로 인간의 뇌가 주의를 주지 않는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현상이 입증되었어요. 이 실험은 꽤나 유명해서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세기말이 다가오는 90년대 후반, 세일러문에 빠져버린 제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혜성처럼 세일러문이 나타났고, 아이들은 열광했습니다. 태양계의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세일러 전사들, 다양한 사연을 품은 미형의 악당들, 화려한 변신과 필살기, 그리고 미래와 우주를 넘나드는 거대한 드라마! 세일러문은 보통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라이벌 만화였던 웨딩피치로 빠져나갔지만, 세일러문은 압도적으로 시리즈가 길었습니다. 웨딩피치의 방영 종료 후, 모든 아이들이 세일러문으로 규합되었습니다.


세일러문의 방영시간을 저녁 6시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늘 저녁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때면 놀이터에 나가 직접 세일러 전사가 되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세일러 비너스의 역할을 너도나도 하려고 했지요. 참고로 저는 세일러 마스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까맣고 긴 머리가 멋있었거든요.


놀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파트 경비실이 있었는데, 경비실 벽에는 크고 동그란 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세일러문 방영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아이들은 꼼꼼히 시계를 보면서 놀았지요. 그리고 때가 되면 헐레벌떡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일러문의 방영시간이 유감스러웠습니다. 세일러문을 절반쯤 보고 나면 저녁식사가 시작되었거든요.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저녁식사는 어길 수 없는 중요한 일정입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의 너그러움 덕에, 저녁식사 동안 거실의 티비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소리라도 듣는 것에 감사해야 했지만 어린 맘에는 그것도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귀를 최대한 티비가 있는 거실 쪽으로 기울이며 밥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게 먹었지요.




세일러문은 나름의 시즌이 있는 만화였습니다. 시즌의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극의 몰입도는 깊이가 달라졌습니다. 세일러 전사들이 죽을 때도 있고, 미래의 지구가 사라질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면 극적인 전개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일러 전사들이 암흑공간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던 날이었어요. 어린 저는 브라운관에 빠져들어갈 듯이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번개에 맞듯 세일러문의 세상에서 끄집어내졌습니다. 어머니의 분노가 내려쳤기 때문입니다.


“밥 먹으라고 했잖아! 왜 엄마 말을 무시하는 거니?”


고개를 돌려보니 분노한 어머니 뒤로 이미 다른 가족들이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식사에는 거실 티비가 꺼졌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어머니와 작은 방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도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작은 방이 체벌실이 된 7살 때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습니다. 몸이 자라났고 멧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하는 작은 방은 전처럼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방에 들어간 후, 어머니는 화가 나신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저녁식사 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책을 볼 때도 어머니를 무시했고, 숙제를 할 때도 어머니를 무시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더는 못 참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작은 방의 시간을 버티며 제 억울함을 계속 소명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점점 작은 방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과 기력이 닳았습니다. 결국 저는 울면서 어머니의 말을 무시했음에 사죄드렸지요.




어머니께서 말하셨듯, 제 눈과 귀를 막은 것은 세일러문뿐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주차장 구석에 숨어있는 고양이도, 모래 놀이터에서 발굴한 전복 껍데기도, 어느 날의 빨갛고 커다란 달도 제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어른들을 무시했다며 혼이 났어요. 제가 어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정말로 제가 모르는 척했는지 끊임없이 저를 의심했습니다. 내면의 갈등은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빨리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했습니다. 저는 내적 갈등을 직시하고 탐구하는 대신에 ‘어른들은 억지를 부리는 나쁜 사람’이라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란 것도 어렴풋이 알았지만 혼란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막상 도망을 치고 나니 뜬금없던 결론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도망친 ‘나쁜 어른들’이라는 결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들에 대한 감사를 주었습니다. 나쁜 어른들이 저를 대가 없이 양육해주고 있었으니까요. 나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집에서 재워주고, 밥을 먹게 해주는 고마운 어른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아량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쁜 사람들에게 양육된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근본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언제고 양육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작은 방을 다녀와서 듣는 ‘사랑한다’는 말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과 기분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요. 티비나 소설에 나오는 쫓겨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기분이 틀어지면 저 아이들처럼 제 생존도 위험할 테니까요.


저는 눈썹과 머리카락을 뽑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저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불안장애의 일종인 ‘발모벽’이란 것을 머리를 뽑지 않게 된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만약 어른들이 나쁘다는 결론으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인지상태와 제 말을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에 대한 충돌로 ‘어른이 나빠’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입장을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던 어머니의 입장이라도 물었다면요?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의 어머니를 상상합니다. 어린 둘째를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긴장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요. 저희 집은 할머니가 성격이 강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많았어요. 거기에 소중한 딸까지 자신을 무시하다니,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게다가 그것을 훈육했더니 아이가 거짓말로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때는 지금처럼 오은영 박사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육아에 대한 지식이 대중화되기 전이지요.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저라도 알아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부모님 앞에서 어린 딸에게 무시당한 어머니의 심정을 먼저 위로했다면 상황이 달랐졌을 거예요. 마음을 가라앉힌 어머니가 제 말을 믿어주실지도 모르지요. 어쨌거나 소통의 여지가 생긴다면 저는 어머니에게 부탁했겠죠.


"정말 죄송하지만 잘 듣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저를 톡톡 건드려서 불러주세요. 저는 결코 어머니를 무시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애초에 저녁식사 준비를 도와드리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회사에 가신 아버지를 빼더라도 5명의 식사를 어머니 혼자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저는 세일러문에 정신을 팔 것이 아니라, 수저라도 놓으면서 어머니를 도와드렸어야 해요.


제가 어머니에게 관심과 배려를 먼저 표현했으면, 어머니도 저를 신뢰하셨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소통하며 살았을 거예요. 서로에게 상처도 주지 않았을 거고요.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주의력 부족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저를 ‘톡톡’ 건드린 후 말을 걸면 되었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제 특성을 이해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듣지 못할 때면, 제게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셨지요. 저는 그런 어머니가 정말 좋았어요.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실 때면 세일러문도 포기하고 식사 준비를 도울 정도로요!


어머니는 다른 어른들에게도 제게 다가가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어른들은 제가 듣지 못할 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하게 다가와주셨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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