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제가 딛고 있던 신의 세계는 인간의 역사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결국 저를 ‘모태신앙’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태신앙’은 어머니의 태중부터 신앙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저처럼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 신자의 삶을 사는 사람을 ‘모태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께서는 결혼 후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를 보내주신다면 하나님의 아이로 키우겠다고요. 기도가 응답받았는지 어머니는 저를 낳습니다. 기도 속에 태어난 하나님의 아이는 신앙 속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스탠다드한 교회 커리큘럼을 거쳤습니다. 어린이집 대신에 교회 선교원에 다녔지요. 교회의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를 차례로 거쳤습니다. 찬송을 배웠고, 여름 성경학교에 갔어요. 성가대를 했고, 겨울에는 성탄절 연극을 했지요. 하나님을 찬미하는 법과 예수님께 기도를 올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교회에서 배우는 것들은 재밌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저를 설레게 했지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주님의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습니다. 음악은 어떤가요! 주를 찬미하는 음악은 클래식부터 CCM까지 끝없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구절들도 기억납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물이 바다 덮음과 같이’,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어린 제게 기독교의 세계는 아름다웠습니다.
동시에 기독교의 세계는 엄격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지옥에 간다고 했거든요. 세상에나,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요. 다행히도 가족들은 모두 교인이었습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친척들도 교회나 성당을 다니셨거든요. 삼촌 중에서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제 동생도 저와 같은 수순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을 좋아했지만, 만화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때는 2000년대 초였습니다. 온갖 세기말을 그린 만화들이 여전히 많았지요. 어느 날 교회에 만화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본 전도사님이 저를 혼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지옥에 간다. 그건 사탄이 만든 거야!”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사탄이 만화를 그렸다는 걸까요? 만화책의 작가 후기에는 허리가 아팠지만 독자들을 생각하며 힘냈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작가가 사탄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도사님이 말한 ‘사탄’과 ‘지옥’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첫 의문이었습니다.
싹튼 의문이 콩나무처럼 자라난 곳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보다 훨씬 컸던 중학교 도서관에서였죠. 저는 도서관에서 성경 이야기 책을 찾았습니다. 아름다운 주님의 사역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도서관의 성경 이야기 책은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 교재와 달랐습니다. 처음 보는 이상한 말들이 적혀 있었어요. ‘성경의 출애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수 세기 후에 쓰인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현재의 성경 구성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해졌다.’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미가 아닌 인간의 역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크고 구체적인 역사가요!
학교 수업시간에는 세계사를 배웠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쓰인 사건들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마다 기독교 신앙으로 만들어진 제 세계는 부서졌습니다. 더 이상 교회의 가르침은 제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죽기 전 부르짖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외쳤지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저는 예수보다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늘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이 아예 사라졌으니까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은 저 같은 대중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일 뿐이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의 여름 성경학교를 끝으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예수님께 기도할 수 없었거든요. 물론 믿음이 적어도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등부 아이들의 절반은 친목을 위해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이유로 교회를 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성탄절에는 동생의 연극을 보러 교회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동생이 좋았으니까요.
저는 계속 지식을 배웠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제가 살던 신앙의 세계가 부끄러웠습니다. 비논리적인 행위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신앙을 부정하니 제 삶을 모두 부정해야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저는 있지도 않은 하나님에게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왜 당신은 존재하지 않아서 당신을 믿은 나를 비참하게 하나요?'
갈 길을 잃은 분노가 제 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없으니 분노의 대상은 스스로의 어리석음 뿐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공격하는 데에 점점 지쳐갔습니다. 신을 잃은 상실의 고통도 계속 깊어졌습니다. 저는 이 상태에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간절히 분노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 배의 방향키를 돌리는 것 같은 처절함으로요. 제가 도망친 곳은 저를 ‘모태신앙’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저를 모태신앙으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부모님입니다. 왜 부모님은 중동아시아에서 기원된 종교를 이 나라에서까지 믿고 계신 걸까요? 부모님을 교인으로 만든 건 부모님의 다른 가족들입니다. 왜 그들은 인간의 발명품인 신에게 눈물로 찬미한 걸까요? 아니, 애초에 기독교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인류는 기독교가 인간의 입맛에 맞게 편집된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그 속에 매달려 있는 걸까요?
기독교를 싫어하자니 인류 문명 절반을 싫어해야 하더군요. 이번 도망의 길도 쉽지는 않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가 편협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장례식 때 한달음에 달려와 도와준 사람들은 교회 분들이었거든요. 그리고 교회에서는 각 지역별로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만 했던 저보다는 훨씬 사회공헌적입니다.
기독교라는 체계가 인간의 발명품이면 뭐 어떤가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있는걸요. 제 어렸던 생각처럼 쓸모없는 존재였다면 기독교는 진작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안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주체는 체계보다는 인간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체계에서든 인간이 구성원이기에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하니까요.
만일 한 조직 내에서 지나치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조직은 자연스레 도태되겠지요. 설령 그렇게 되어도, 그 조직이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 기여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움직일 것이고, 그 속에 미움은 들어갈 필요도 없는 거겠지요.
제가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
기독교 혐오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지나치게 신앙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생각했기에 조금의 틈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 편집을 인간이 했다거나 성탄절을 로마인들이 정했다는 것에 상처받은 거죠. 하지만 결론을 유보하고, 더 공부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기독교가 인류를 위해 기여한 멋진 일들도 함께 배울 수 있었겠죠.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하나님을 믿는 이유를 직접 여쭤보지 않았어요. 제 마음대로 부모님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지요. 하지만 부모님은 어른이니 제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이미 알고 계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갖고 계셨겠죠. 그렇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당신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대화가 있었다면, 어쩌면 좀 더 오래 교회를 다녔을지도요.
만약 교회를 가지 않게 되더라도 이런 생각의 과정을 차분히 거쳤다면 세상의 절반을 미워할 일은 없었을 거예요. 도리어 종교를 통해 인간이 갈구하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깊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세계관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을 배우면서 제 세계관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넓어진 세계 속에서 인류의 무궁한 발전에 감동하며 저는 성장했습니다.
작은 세상을 미워하며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배우며 자랐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