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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랑 Oct 10. 2023

쟤는 왜 잠만 자니?

흔한 여고생 이야기

현실은 게임과 달리 공략집이 없었습니다. 유일하고 완벽한 엔딩이 없었다고요! 그래서 저는 잠으로 도망쳐버렸습니다.


평소처럼 아침 조례 시간에 실컷 졸다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교단에 바로 붙은 맨 앞자리의 짝꿍이 제게 속삭였습니다.


“너 담임 우는 거 못 들었어?”

“담임이 울었어?”

“자는 척이 아니라 진짜 자는 거였구나. 이번엔 좀 심했다.”


저는 머쓱하게 상황을 물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조례 말씀을 하시다가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속상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대요. 담임 선생님의 진심에 다른 아이들도 많이 울었다네요.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도 저는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짝꿍의 질책 어린 눈초리에 무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떡하나요. 저도 자고 싶어서 잔 게 아니었다고요.




걸어서도 갈 수 있던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정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방법은 지역마다 다양하다고 합니다. 제가 살던 지역은 뺑뺑이로 고등학교가 배정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친했던 오타쿠 친구들은 대부분 중학교와 가까이 있던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저만 멀리 뚝 떨어지게 되었죠. 고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도 서로 같은 중학교 출신들이 많았어요. 저만 친구를 처음부터 새로 사귀라는 미션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네 아이들과 카풀을 해서 등교했습니다. 카풀 차량을 운전해 주시는 분은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셨어요. 부모님은 제가 먼 학교로 가는 것을 걱정하시다가, 우리 동네의 다른 애들은 어떻게 등교하냐며 펄쩍 뛰시더니 카풀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이들은 항상 차를 타자마자 잠들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부모님께서 깨워주셨지요. 어머니는 자주 혀를 차시며 한창때 애들이 병든 병아리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한 등교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7시나 8시였던 것 같아요. 등교를 하면 0교시 자습시간, 조례시간, 수업시간을 거칩니다. 오전 수업 내내 졸다가, 점심을 먹을 때는 잠깐 눈이 떠집니다. 친구들은 남은 점심시간에 운동장 산책을 하자고 했지만 저는 잤습니다. 그다음 수업시간에도 자주 졸았지요.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면 밤 10시입니다. 야자 시간에는 정말 편안하게 잤습니다. 그래서 야자가 끝날 쯤에는 정신이 맑아집니다.

집으로 갈 때는 배차간격이 20분인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절반쯤 가다 보면 중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진학한 학교를 지나갑니다. 거기에서 중학교 때 친구들이 버스에 타기도 했습니다. 상봉의 순간이었죠. 그럴 땐 하교 버스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쩍했습니다.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합니다. 긴 하루 끝에 교복을 벗고 맞이하는 진짜 자유시간의 시작이지요. 이 시간을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저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컴퓨터를 켭니다. 게임을 할 시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PC게임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나 팔콤에서 나온 RPG 게임들을 좋아했지요. 가까이 사는 막내 고모가 일본에 자주 가셔서 게임을 사다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오타쿠 겸 특별활동 일본어반 출신이기 때문에 공략집을 보면 일본 게임도 할만했습니다. 저는 보통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제가 없으면 게임 속 세상은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걸요. 막중한 사명감을 짊어지고 있었죠.


그나마 공부를 한 시간은 주말이었습니다. 단짝 친구의 성화 덕분에 주말 자율학습 이후에 도서관에 갔거든요. 저는 도서관과 잘 맞았는지 집중이 잘 됐습니다. 다행히 성적은 그럭저럭 유지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많이 졸아도 선생님께서 봐주신 이유는 성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께 성적은 학생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였을 테니까요.




이런 저도 학교에서 자지 않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전 세계인의 축제,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렸으니까요! 저와 제 친구들은 매일 흥분 상태였습니다. 토요일 새벽에 한국 vs스위스 경기를 지역 축구장에 가서 응원관람을 한 기억이 납니다. 심판의 편파판정에 우리는 분노했고, 분노를 분출하기 위해 경기장 주변 쓰레기를 주으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멋진 여고생들이라며 사진을 찍어가서 짜증이 났었죠. 차라리 쓰레기를 같이 주워주면 더 좋았을 것을요.


더 이상 대한민국의 경기가 없게 되자, 월드컵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대거 탈락했습니다. 월드컵에 신난 아이들은 단 3명이 남았습니다. 인자기를 좋아한 아이와, 발락을 좋아한 아이와, 메시를 좋아하던 저였죠. 우리는 이탈리아 아주리 군단의 우승까지 월드컵을 즐겼습니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상하고, 탈락한 선수들의 기사를 스크랩했지요. 2002년 월드컵만은 못해도 제게는 끝내주는 월드컵 시즌이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자, 저는 다시 잠이 듭니다. 더 이상 재밌는 것이 없었는걸요. 선생님들은 가끔씩 제 짝꿍에게 물었다고 해요.


“쟤는 왜 맨날 잠만 자니?”


짝꿍은 알 도리가 없었겠죠.




지금 돌이켜 보면, 잠은 제 도피처였습니다.


저는 학교가 싫었거든요. 갑갑한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아침부터 밤까지 있는 자체가 싫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3년간 버텼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리고 중학교 때 친구들은 대부분 같은 학교로 진학해서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데 저 혼자 떨어진 것도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중학교 때 애들처럼 마음을 열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월드컵 때 몇몇 아이들과 친해져서 다행이죠.


이런 제 기분을 부모님과 나눌 수 없어서 싫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시간은 등교시간 정도인데 그때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대화를 하기도 어색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렵고,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는 정반대인 게임을 좋아한 것 같아요. RPG게임은 정확한 스토리와 엔딩이 있습니다. 공략집을 보고 하나씩 진행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주인공의 동료들과 가까워지는 것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공략집을 보면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대화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게임은 언제나 해피 엔딩입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완결된 이야기는 아름답게 회자되지요. 실수를 해버리면 오랫동안 구설수에 남는 현실과는 달라요.




영원할 것 같은 갑갑한 고등학교 생활은 수능이 끝나자 달라졌습니다. 0교시도, 야자도 없어졌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봤습니다. 교복 치마 안에 따뜻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어도 선생님들은 눈감아 주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학교에서 자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여유로워진 틈으로, 이제야 반 친구들을 제대로 보게 된 것 같았습니다.


등교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반 친구들이 마지막을 기념하는 롤링페이퍼를 돌렸습니다. 아이들의 수만큼의 종이가 순서대로 지나갔습니다. 저는 짧은 기억에 의존해 정성껏 적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건강해.’

‘SS501 꼭 만나길 바랄게.’

‘밴드 동아리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어느덧 제 이름이 적힌 종이도 돌아왔습니다.


‘너 진짜 많이 자더라. 대학 가면 자지 마!’

‘네가 맨날 자느라 같이 못 놀아서 아쉬워. 대신 싸이월드에서 보자.’

‘그렇게 잤는데 수능 안 망해서 다행이야.’


저는 롤링페이퍼를 보며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다들 제가 많이 잤단 얘기를 하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반 친구들이 적어준 롤링페이퍼가 고등학교 생활의 엔딩 스크롤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롤링페이퍼를 곱씹으며 제가 잃은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라는 적응하기 힘든 현실에서 잠으로 도망친 대가로, 저는 롤링페이퍼에 적을만한 추억을 만들 기회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처럼, 고등학교 시절은 인생에서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쉽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제가 고등학교 시절,
잠으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 깨어있는 것이 어색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두루두루 다 알고 지내는데 저는 그 틈을 파고들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잠만 자던 와중에도 친구가 되어준 아이들이 있었는걸요. 제가 용기 내서 말을 걸면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을 거예요.


반 아이들과 친해질수록, 함께했던 일들이 더 생동감 넘치는 추억이 되었을 거예요. 야자 시간에 몰래 떡볶이를 사 오거나, 신입 선생님을 놀릴 깜짝 파티를 준비할 때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했겠죠. 성적 때문에 울던 애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토닥여줄 수 있었을 거예요. 10대의 마지막을 동고동락한 그 애들의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성적도 조금 오르지 않았을까요? 공부한 것에 비해 수능은 잘 보았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니 조금 더 공부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맨날 자는 애가 아니라,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로 보였다면 공부하라는 독려를 받았을지도 몰라요, 그랬다면 입시지원 상담도 신경 써주지 않으셨을까요?

물론 이런 희망적인 예상과 달리 교우관계나 성적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 해도 제가 3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성취감만은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날조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했어요. 친구들을 사귀고, 수업시간에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하루종일, 매일같이 이어지는 갑갑한 고등학교 생활이었지만 인생의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이니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반 아이들과 돌린 롤링페이퍼는 지금도 제 인생의 보물입니다. 매 순간 노력했던 제 모습에 대한 반 아이들의 목격담이 가득 적혀있었으니까요.



저는 최선을 다했던 고등학생이었다고 기억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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